커피와 사람의 공통점

by 배준현

"오늘은 포인트까지 해서 커피 한잔 마셔야지." 집 근처 카페로 갔다. 늘 그렇듯 아인슈페너와 달고나라테 사이에서 짧게 갈등하다 다음으로 넘어간다. 사이즈는? 얼음은? 빨대는? 덜 달게? 울창한 질문의 숲을 지나 결국 달고나라테 기본으로 주문한다. 아마도 더 맛있게 먹으라는 의미에서 이처럼 귀찮고 번거로운 주문과정을 도입했을 거라 혼자 생각한다. 인지자원을 당겨 쓴 덕에 달고나라테는 평소보다 더 달다. 그런데 정작 포인트로 주문하고자 했던 애초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몇 개월 전에 정책이 바뀌어서 기존 포인트는 못쓰고 대신 앞으로 스탬프 열 개 적립하면 커피 한잔 무료로 드려요." 직원이 말했다. 아니 그럼 내 포인트는. 못해도 오 천 원은 쌓여있었는데 아무리 간만에 왔어도, 그냥 소멸된다고? 키오스크의 질문은 끝났지만 나의 질문은 계속됐다. 그 많던 포인트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내 포인트는 누가 옮겼을까?


사실 뭘 사고 어디 이용하는데 굳이 회원 가입까지 해야 하나 싶다. 귀찮다. 마트, 카페, 백화점, 온라인몰, 극장, 항공사 심지어 놀이동산까지 거의 모든 곳이 비자발적으로 애플리케이션을 깔게 하고 정보를 입력케 한다. '고객편의와 더 나은 서비스'라는 추상적인 문구아래 나의 구체적 정보들이 '안전하게 입력'된다.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활용하려는 기업의 목적도 이해하지만 때론 강제 업데이트틀 하고, 정책과 제도가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방식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나의 정보가 활용되기보다는 이용되는 느낌이다. (그래봐야 크게 중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고객 만족과 편의성보다는 기업의 통제와 관리가 우선으로 보인다. (아마 포인트 소멸도 부채 정리를 위한 상계처리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은행 잔고를 확인하는데도 광고와 팝업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 단지 액수만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지갑을 여는 과정에 꼭 전단지가 끼어 있는 기분이다. 나의 행위보다 언제나 그들의 메시지와 의도가 우선한다. 도움 되는 내용이라도 이 같은 방식은 적잖이 피곤하다.


뜬금없이 비트코인을 생각했다. 암호화폐 시장은 잘 모르지만 그나마 블록체인은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손해 보기 싫어하는 사람의 본능을 활용한 장부의 공용화 방식이 바로 기술의 핵심이다. 거래 기록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함으로써 거짓으로 장부를 기록해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존 내역을 확인시켜 준다. 다수결의 장점을 활용한 기술이다. 동네 마트에 현금 만원을 들고 가서 우유와 두부 사는데 내가 몇 년생인지, 어디 사는지, 전에 무엇을 샀는지까지 알릴 필요는 없다. 현금 그 자체가 곧 물건을 살 수 있는 신뢰의 징표다. 이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암호화폐를 활용하면 온라인에서도 현금거래 같은 일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물론 지하경제 활성화와 탈세 같은 부작용도 크겠지만 나 같은 일개 시민에게는 귀찮음을 대신해 주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충성을 다하여 같은 브랜드를 이용했지만 돌아오는 게 바뀐 정책이라면 이런 거래 방식도 꽤 괜찮아 보인다. 돈과 물건만 주고받는 것이다. 중간의 번거로운 과정과 피곤한 마케팅적 요소 없이.


커피 한잔 마시려다 블록체인까지 생각하는 내가 좀 쫌스럽게 느껴진다. 뭐 적립금 사라진 게 이번뿐인가. 기프티콘도 여러 번 날렸다. 스타벅스, 이마트, 투썸플레이스, 배스킨라빈스 한 번씩은 날려봤다. 포인트와 마일리지는 될 수 있으면 바로 써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하물며 적립금도 이러한데,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다. 정말 고마워하던 그도, 두 손을 잡고 감동하던 그도 자기감정의 유효기간은 따로 설정하지 않는다. 가끔 나 혼자 서운해할 뿐. 그래도 커피와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중독성을 보인다는 것 둘 다 약간의 쓴맛을 남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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