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니 나도 모르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깝게 느껴지는 과거 인연들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고백했어야 하나? 아니면 고기를 먹었어야 했나? 한창 TV 프로그램에서는 첫 데이트에 고기를 먹는 게 좀 더 고백 성공률을 높인다고 했다. 또 고층빌딩이나 산처럼 비교적 높은 곳에서 마음을 전하는 게 성공확률을 높인다고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난 전혀 반대였다. 컴컴한 지하 술집들만 골라 어묵탕, 부대찌개, 소주, 맥주, 호박주, 죽통주를 곁들여 먹고 나서 고백하고 들이댔다. 그런데도 성공했다. 내 맘이 전달된 것이다. 어차피 연결될 인연은 되는가 보다 했다. 시간이 좀 지나니 호감을 얻는 기술로 미러링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말 그대로 거울 보듯이 그대로 따라 하는 거다. 상대가 턱을 괴면 나도 따라 턱을 괴고, 상대가 커피를 마시면 나도 내 잔을 드는 그런 방법이다. 이 정도는 이제 일반 상식쯤으로 통한다. 그래서 다들 애써 미러링을 하거나 슬그머니 피하기도 한다. 심지어 미러링을 하나 안 하나 상대에게 신호를 쏘기도 한다. 인간 심리에 관한 정보가 늘어나면서 이렇게 상대를 평가하고 재보는 방법도 제법 다양해졌다. 이제는 MBTI까지 추가로 동원된다. 타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면 각광받기 마련이지만 글쎄 조금은 피곤한 느낌도 있다. 어째 점점 더. 어쨌든 보물찾기 같은 이런 호감의 증거 찾기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최초의 자극은 아마도 시각 정보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리고 목소리와 후각적 정보를 통해 그 사람을 하나의 공감각적 형태로 기억한다. 물론 여기까지가 예선이라면 본선에서는 그 많은 감각을 뒤로하고 나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대화 주제와 '우리'가 됐을 때 할 수 있는 가능한 좋은 상상을 최대한 자극해야 상대의 마음속에 내가 저장된다. 함께 있을 때 우선 즐거워야 하고, 시간이 흘러도 제법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나름의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렵다. 어쨌든 함께 있을 때 말이 끊이지 않고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성사확률은 배가 된다. 재미와 유쾌함, 이게 핵심인 것이다. 그렇지만 철저히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이다. 왜냐면 개인차가 정~말 많이 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건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아니지만, 말한다 해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청중의 반응이 전혀 달라지는 뭐 그런 것과 유사하다. 원래부터 갖고 있던 개인의 성격이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제련된 형태이기 때문에 그렇다. 예를 들어 노잼이라 불리는 사람은 노잼의 바운더리 안에서 자신만의 재미와 관점을 어필해야 한다. 그러다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 재미없음이 자연스럽게 재미로 바뀐다. 그러니 오히려 안심해도 된다. 재미는 공유할 수 있는 포인트 즉 사회적 성격이 포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막 외우고, 따라 하고 집에서 연습하는 것보다 가까운 사람을 한 번 웃겨보는 경험이 아주 중요하다. 그럼 얼추 해결된다. 물론 엄마는 안된다. 동생이나 누나는 괜찮고 형이면 더 좋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지하에서 있었던 그날을 떠올려보면, 상대방과 나는 호감은 있었지만 막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차차 말이 통하고, 다양한 관심사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되면서 상대에 대한 일종의 인지적 호감이 생긴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미 예선전을 거친 우리에게 갑자기 서로에 대한 뜨거움을 느끼게 하는 결정적 순간이 생긴다. 바로 싫어하는 누군가에 대한 불쾌한 정서를 공유하게 된 순간이다. 막 형성될까 말까 하는 '우리'라는 감각에 특정인이 내뿜고 있던 불쾌감은 우리를 잇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 사람이 하던 행동과 말에 담긴 미묘한 불쾌감을 공유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덕분에 우리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 미묘한 감정선, 행동 양식에 대한 서로의 입장도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정말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어릴 때 듣던 명언(?) 중에 특히 나는 이 말을 의아해했다. 바로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TV나 라디오에서 뭔가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면 클리셰처럼 저 말을 인용하는 사람이 가끔 등장했다. 그런데 말이 될까? 서로 보고 확인하고 호감이 생겨야 사랑이 시작되지 어떻게 한 곳을 응시하면서 사랑이 가능해지나. 이건 플라토닉 사랑에 대한 일방적 찬사이자, 일생 솔로의 아쉬움을 대변하는 비겁한 변명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생텍쥐페리는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한 인간일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지하에서의 그 '찐한 연대' 이후로 난 뭔가 저 말을 이해한 것만 같은 착각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랑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그 말 말이다. 그와 난 그날의 어떤 밴드오브브라더스(전우애) 같은 묘한 결합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식당에 가서도, 물건을 살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운전을 할 때도 어쩜 그렇게 우리는 매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신기했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생텍쥐페리가 옳았던 것이다! 고기도 사랑도 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은 꼭꼭 씹으면 가능하다.
(!) 생텍쥐페리가 했다는 저 말, 아주 살짝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사실 사랑에 대한 어록처럼 여겨지는 저 말은 남녀 간의 사랑을 염두에 둔 말로 쓰이지 않았다. 비행기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는 전쟁이라는 외부 상황과 동료라는 내부 결속의 경험을 아래와 같이 자신의 책 『인간의 대지』에 남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우리 바깥에 있는 공동의 목표에 대해 형제들과 하나가 됐을 때 우리는 숨을 쉬게 된다. 그리고 그 같은 경험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곧 사랑이라는 점을 알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