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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현 Oct 20. 2024

국제관계로 본 견제와 균형

주말뿐만 아니라 종로 기업 기자실 출근 시 점심시간마다 자주 이용하는 인사동 찻집서 조용히 국제 기사를 읽던 중 오랜만에 기사로 나온 단어를 봤다.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력(RCEP).


미국 주도 경제 블록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력(TPP) 대항마로 뜨며 문재인 정부 당시엔 RCEP과 TPP 중 어느 곳을 가입해야 하는지를 두고 연일 정치권과 언론 입씨름 도마 위에 올랐었다.


TPP를 제안한 이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2016년 TPP 비준 추진을 포기하고 후임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참여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없던 일이 됐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야당인 공화당 의원 설득에 나설 정도로 TPP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중국도 시진핑 주석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RCEP 조속 발효를 요구하고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회원국에도 참여를 요구했다.


도대체 RCEP과 TPP가 뭐길래 한때 양국 정상들은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다른 나라에 참여를 요구했던 걸까.



RCEP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 역내 무역자유화를 위한 협정이다. 각 국가의 경제 제반 상황을 고려해 단계·점진적 개방을 추진한다. 2020년 11월 15일 이들 국가가 협정문에 서명함으로써 체결됐다.


상품과 서비스, 투자 시장을 개방하고 지식재산권과 전자상거래·중소기업 관련 규범 수준을 높여 참여국의 새로운 경제적 기회 창출에 기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쉽게 풀어쓰자면 ‘서로간 불신의 장벽을 낮춰 경제 교류에 투입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더 자유롭고 활발히 교류·소통하잔 것’이다. 무역 관세를 낮추는 게 대표적이다.


TPP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칠레, 페루가 참여한 ‘높은 수준의 포괄적 자유화를 목표로 한 경제 협력체’다.


예외 없는 관세 철폐를 추구하며 양자(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이상으로 높은 수준의 포괄적 자유화를 목표로 한다.


TPP를 반대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며 미국은 2017년 1월 23일 TPP를 탈퇴했다. 트럼프는 TPP를 ‘재앙’이라 표현하며 반드시 탈퇴해야 한단 입장을 피력했다.


이후 일본 주도로 포괄·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가 추진됐고 우리나라도 참여했다.


국제 경제 협력체 대리전 핵심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다.


어느 한 국가 세력이 일방적으로 강해지면 다른 국가의 세력과 영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한 대리전을 전개하는 것이다.


미국-소련 냉전에 이은 미국-중국 신(新) 냉전 시대로 불리는 지금 양국은 세계 패권을 쥐기 위한 대리전을 전개하고 있다. 가장 치열한 분야가 바로 반도체다.


정보화·글로벌 네트워크 망 구축으로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21세기 필수품으로 떠올랐다. 두 기기에 핵심적으로 들어가는 부품이 반도체다.


특별한 조건서만 전기를 통하게 하는 반도체는 필요한 곳에 정확하게 전류를 흐르게 하는 핵심 부품으로 손바닥만한 작은 기기서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가장 적확하게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국무회의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보인 뒤 ‘내가 가진 칩과 웨이퍼, 배터리, 광대역 모든 것은 인프라다.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배하려는 공격적 계획을 갖고 있다. 반도체·배터리 분야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중요 산업군서 경쟁국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좌시하지 않겠단 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중국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냈다. 2022년 미국 주도의 반도체 생산·공급망 협력체인 칩4를 만들어 주요 생산국인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참여를 압박했다. 중국은 배제됐다.


중국은 칩4에 대해 ‘자국 견제용’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우리나라서도 메모리 반도체 수출 74.8%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서 영향력이 감소할 수 있단 우려가 나왔다.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재직한 이창양 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는 당시 칩4 참가 관련 취재진 질문에 “전략적 차원서 국익을 고려해 어떤 나라를 배제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발언했다. 중국 반발을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국가 간 대리전은 경제서도 치열하게 전개되지만 안보로 가면 더 치열하게 전개된다.


대표 사례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전개된 냉전이다. 미국과 서유럽이 주축이 돼 참여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와 소비에트 연방(소련)과 동유럽 국가가 참여한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간 대리전은 ‘전쟁만 안 일어났을 뿐 웃는 가면 뒤에서 총과 핵으로 서로를 견제한 것’이라 표현할 수 있다.


지금도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옛 소련 연방의 일원이던 우크라이나가 독립 후 나토에 가입하려는 것에 대해 러시아가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터진 전쟁이다.


동유럽 권역으로 자유 진영 세력 확대를 우려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하며 발발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믹타(중견국 협의체, MIKTA, 멕시코·인도네시아·대한민국·터키·호주)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중견국 위치에 서 있다.



기업으로 따지자면 중견기업급으로 볼 수 있다.


어떤 한 국제적 사건에 대해 강대국·열강만큼 목소리를 낼 순 없지만 특정 두 세력간 대리전서 캐스팅 보트(결정적 의결권)를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최근 국제 외교 행보만 봐도 우리나라가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걸 알 수 있다.


공산권 국가인 쿠바와 수교하고 러시아, 중국과 관계를 중요시한 게 대표적이다.


동맹국 미국과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발전을 논의하는 등 자유우방과 관계도 중요시한 것도 참고할 만하다.


자유우방과 연대를 중요시 해 일제 강제징용, 위안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이에 대한 견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비판 여론에 무관심하거나 경청하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나름 선방한 외교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여진다.


현 정부뿐만 아니라 차기 정부도 견제와 균형이란 원칙을 잘 지켜 균형 있고 안정적인 한반도 정세를 꾸려 나가길 바란다.


6·25 전쟁 당시 남한으로 피난 와 온갖 고생을 겪으며 아버지를 키운 할아버지께 전쟁의 참상을 들으며 자란 손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진심으로 하는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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