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열린 파리올림픽이 최근 스포츠 면이 아닌 경제·사회면에 자주 등장한다. 사회면엔 금메달을 딴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배드민턴협회 부조리 폭로가 주로 나오고 경제면엔 메달을 딴 선수들에 기업이 포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나온다.
안 선수 폭로 내용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기에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 이번 글에선 제외한다. 대신 ‘스포츠와 경제’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신체적 능력을 요구하는 스포츠에 경제학이 어떻게 개입될 수 있겠냔 질문을 할 수 있지만 사실 ‘경제’를 빼고 스포츠를 얘기할 순 없다. 21세기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올림픽을 예로 들자. 올림픽이 끝나면 조직위원회가 가장 먼저 따지는 것 중 하나는 ‘흑자 여부’다. 올림픽 개최 준비에 들어간 비용을 기업 후원과 마케팅, 중계료 등으로 다 뽑아 먹었는지 여부를 들여다 본다.
역대 대회 중 흑자를 봤다 알려진 올림픽은 1984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과 1988 서울 올림픽,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4 릴레함메르 올림픽이다.
릴레함메르의 경우 흑자도 봤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휴양지로서 매력을 전 세계에 알려 대회 후에도 짭짤한 관광 수입을 올렸다.
우리나라 서울은 전쟁 후 폐허와 잿더미밖에 남지 않았단 국가 이미지를 완전히 바꿀 수 있었다.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도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를 통해 완전히 날렸다.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대해 ‘굶어 죽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소리만 들은 공산국가에 경제발전을 이룬 모습을 보여줬고 이는 노태우 정부 ‘북방외교’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참고로 북방외교는 우리나라와 공산국가간 수교를 추진하고 북한과 미국·일본간 수교를 돕는 정책이다. 냉전 시대 종식에 목적이 있다.
적자를 냈다 알려진 올림픽은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과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2004 아테네 올림픽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은 대회 후에도 외신들이 주목할 만큼 적자 폭이 컸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을 당시 재정 악화 이유 중 하나로 올림픽 개최가 거론됐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MBC W 제작진이 아테네 현지를 방문해 올림픽 개최 후유증과 시민들 반응을 취재·보도했다.
아테네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선 과반이 넘는 시민들이 올림픽 경기장을 폭파시키고 싶다 답했단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 과정서도 경제는 빼먹을 수 없다.
제일 극단적인 경우는 심사위원을 매수해 표를 돈으로 사는 것이다. 2002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당시 미국은 일부 IOC 위원에 막대한 뇌물을 줬고 일부 위원들엔 미국 영주권이 제공되는 일자리를 알선했다.
당시 IOC 부위원장이었던 김운용 IOC 부위원장은 해당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다. 차기 IOC 위원장 선거서도 자크 로게 위원장 후보에 밀려 탈락했다.
우리나라도 개최지 선정 과정서 경쟁국의 경제적 압력으로 불이익을 본 적이 있다.
2014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당시 우리나라 평창은 러시아 소치와 2파전을 벌이며 마지막까지 치열한 유치전을 펼쳤다.
노구의 몸이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IOC 총회가 열린 중남미 과테말라시티 총회장을 직접 방문해 마지막까지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참고로 고 이건희 회장은 1996년부터 타계 전까지 IOC 위원으로 활동했다.
최종 브리핑선 직접 연단에 서 “우리에게 역사를 바꿀 기회를 주십시오.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남북간 벽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고 발언했다.
애초 우리나라는 1차 투표서 과반을 얻어 유치를 확정한단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역전패. 1차 투표서 소치를 앞질렀던 우리나라는 2차 투표서 역전을 허용하며 개최에 실패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나라가 1차 투표서 과반을 얻을 거라 자신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유치위원과 당국자들은 IOC 위원을 일일이 만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중 ‘평창을 지지하겠다’고 답한 IOC 위원이 과반을 넘었단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개최지 선정 막판 유치전에 참가한 푸틴 당시 러시아 부통령은 동유럽 IOC 위원들에 러시아 소치 지지를 부탁했다. 이 중엔 우리나라 당국자와 접촉한 IOC 위원도 있었는데 이 위원도 푸틴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내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푸틴 부통령은 동유럽 IOC 위원들에 ‘러시아 소치를 지지하지 않을 경우 동유럽에 공급하는 가스와 천연자원을 완전히 끊겠다’며 반협박을 했고 이에 굴복한 동유럽 IOC 위원들은 러시아 소치에 투표했다.
‘올림픽으로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 남긴 말이다. 지구촌 화합의 장으로 발돋움한 올림픽은 오늘날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꿈꾸는 최고의 무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규칙과 스포츠맨십을 지키며 경기 후엔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완벽한 경쟁의 장’이다.
인류가 추구한 ‘완벽한 경쟁의 장’에도 21세기 오늘날엔 돈이 개입된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스포츠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 돈이 개입되는 것까지 뭐라 할 순 없다. 그러나 나중엔 넘지 말아야 할 ‘스포츠 무대’에도 돈이 개입되지 않을지 우려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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