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출근길 신정네거리역을 거쳐 오는데 한 장소가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몇년 전 국내 매장 수 1위를 차지했던 카페베네 매장이 있던 곳이다.
대학생 시험 기간 주말이나 평일 시간이 빌 때 자주 찾아 음료를 마시곤 했는데 추억과 기억의 장소에 ‘매장 영업 종료’ 안내 종이가 붙여졌을 땐 서글픈 감정이 많이 들었다. 편하게 음료를 시키고 앉아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또 없어졌단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가슴 한켠을 눌렀다.
지금은 경영권이 사모펀드사에 넘어가고 완전히 다른 로고와 이미지를 사용하는 이전과 아예 다른 매장으로 변했지만 카페베네는 몰락의 길을 걷는 2016년 전까지 국내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브랜드였다.
2015년엔 전국에 800여 곳의 매장을 운영해 국내서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한 카페 프랜차이즈였을 정도로 국민적 관심과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했다. 카페베네 성장을 일궈낸 인물로 평가받는 고 강훈 전 대표는 당시 청소년들의 롤모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스타벅스를 이길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던 카페베네는 왜 몰락의 길을 걸었을까. 이유를 설명하기 전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전 최고경영자(CEO)가 남긴 말을 들어보자.
지금으로부터 10여 년전 하워드 슐츠는 한국을 방문해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서 강연을 진행했다. 스타벅스 운영 철학과 이념, 경영 방식, 당시 한국서 협력 관계였던 신세계그룹과 인연 등을 막힘없이 얘기했다.
여러 얘기가 오고가던 중 한 대학생이 손을 들고 하워드 슐츠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 세계에서 매장이 가장 많은 프랜차이즈는 스타벅스지만 한국은 카페베네입니다. 한국서 선두자리를 되찾을 전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번역사로부터 질문을 영어로 전달받은 하워드 슐츠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짓더니 느긋한 어조로 답했다.
‘삼성이나 애플이 위대한 기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삼성과 애플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그 업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회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업의 리더십과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시장점유율은 아닙니다. 직원, 고객과의 관계도 살펴야죠. 이 부분까지 고려하면 스타벅스가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외형 확장뿐만 아니라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와 상품, 기획력 등 내부 경쟁력까지 고려하면 카페베네는 결코 스타벅스를 앞지를 수 없단 의미로 해석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업에 있어 절대적 존재인 고객, 협력 파트너와 관계를 중시하고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의미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선견지명이었던 걸까. 하워드 슐츠의 말은 정확히 적중했다.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카페베네에 대해 ‘점포 수는 국내서 가장 많지만 매출은 (그에 미치지 못하게) 적다’고 평했다.
무리하게 가맹점을 늘리다 보니 본사가 전체 매장을 압구정 본점만큼의 음료와 상품, 서비스를 내놓는 곳으로 운영·관리하지 못했다.
고 강훈 전 대표도 ‘점포 수가 관리 가능한 300점포를 넘어서다 보니 커피 맛 관리가 잘 안 된다’는 증언을 남겼다.
‘커피서 약 탄 맛이 난다’거나 ‘한약 맛이 난다’, ‘너무 쓰다’는 혹평이 잇따랐고 심지어는 ‘카페베네는 카페 분위기 등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맛으로 가지 음료를 맛있게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는 평이 있을 정도였다.
음료 맛도 평이 안 좋았지만 카페베네 고객이 그보다 더 최악으로 꼽은 건 직원 불친절이었다.
철저한 서비스 교육 후에 직원을 사업장으로 배치해 본사 경영 철학인 ‘커피가 아닌 문화를 팔라’를 실천하게 하는 스타벅스와는 달리 카페베네는 직원 대부분이 고객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다는 평을 너무 많이 받았다.
지금도 최악의 카페 직원 서비스 접대 사건으로 거론되는 ‘녹차빙수 사건’은 그 단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모님을 모시고 경기 부천 모 카페베네 카페로 간 손님이 녹차빙수 3개를 시켰는데 완전히 꽝꽝 얼려져 숟가락으로 퍼먹을 수 없는 빙수가 나와 항의를 한 사건이다.
빙수가 나오기 전과 후에 직원이 보여준 태도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카페베네는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사과 메시지를 남겼다.
지나친 외형 확장에 골몰한 나머지 사업 자체 경쟁력, 내실을 다지는데 실패한 카페베네는 2014년 기준 1500억 원에 달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업 경영권이 사모펀드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겪었다.
새 주인도 카페베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5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2018년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됐다.
현재는 회생 절차를 마무리하고 새 로고와 브랜드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의 외형 확장에 대해 뭐라 하고 싶진 않다. 그에 걸맞는 사업 경쟁력과 책임을 진다는 전제 하에선 말이다. 점포를 100군데든 1000군데든 만 군데든 확장하면 그 브랜드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온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모든 곳에서 본점과 똑같은 맛과 서비스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확장된 외형만큼 내부 경쟁력을 키우는 균형 잡힌 경영 철학이 없다면 그 기업은 언제 도산해도 이상 없는 ‘속 빈 강정’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