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보같은 사람 노무현

by 김종현

아버지 손에 끌려 시청에 가서 촛불을 들고 그분을 추모한게 벌써 16년이 됐다.


그땐 멋모르고 가서 손에 촛불을 들고 절을 하며 그분을 추모했다.


대학교를 가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그분의 책과 다큐, 생전 어록을 본 후에야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행동을 하셨고 어떤 철학을 갖고 정치에 임하셨는지를 알게 됐다.


나는 그분하면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통령의 눈높이는 국민 여러분의 눈높이와 같은 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남대문 시장에 자갈치 시장에 동성로에 은행동에 금남로에 찾아가서 서민 여러분과 소주잔 한잔을 함께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한 대통령이 되고자 합니다.”


[사진출처=유튜브 청와대 사람들 MBC 다큐 영상 캡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리키는 사람은 2002년 대선 당시 강원도 삼척에 거주하며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에게 정치후원금을 보낸 할머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원도 삼척에 거주 중인 할머니신데 기초생활보호대상자다. (수급비) 돈을 한푼한푼 모아 나한테 보냈다"며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비치된 할머니 사진을 쓰다듬었다)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집안이 가난해 학교를 1년 쉬고 장학금이 걸린 상고에서 부산 유학을 했다. 돈이 없어 잠을 잘 곳을 마련하지 못해 야간상점 지킴이 근무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대학교는 꿈도 꾸지 못했고 형의 조언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혼자서 학비를 벌며 법전을 읽고 사법고시에 9번 도전했다.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이 당시 만났던 사람이 훗날 청와대 민정수석이자 든든한 오른팔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 된 문재인이었다.


당시 노무현은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승률도 높고 사건도 많아 수입도 괜찮았다.


그런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꾼건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였다. 전두환 정부가 책을 읽고 사회 시국 상황을 논의하던 모임을 ‘반국가단체’로 낙인찍어 재판을 받게 했다. 그는 이 재판에서 부림사건 피해자 변호인을 맡았고 ‘어처구니 없고 말도 안되는 이유와 명분으로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국가와 사회의 현실’에 분노한다.


이후 인권변호사로 변신해 사회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다. 당시 제1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는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재야 인물을 뽑고 있었다. 김영삼 총재에 발탁된 노무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구가 아닌 부산 동구에 출마할 의지를 밝힌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사진출처=와디즈]


당시 부산 동구 국회의원은 전두환 신군부의 핵심 허삼수였다. 고등학교 동창들도 그를 말렸다. 힘들지 않겠냐는 말에 노무현은 단호하게 답한다.


“야 이 신군부 정권의 실세랑 내가 한판 떠야지 누가 뜨겠냐.”


놀랍게도 그는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허삼수를 누르고 당선된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여의도 국회의사당 첫 연단에 선 그는 그가 가진 순수한 철학을 언론과 국회의원이 보는 앞에서 밝힌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게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혹은 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건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우리가 아는 ‘청문회 스타’로서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해 벌인 88년 5공 청문회에선 전두환의 핵심 측근이자 안전기획부장이었던 장세동에게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낸다.


“정치 자금법만 모르십니까”


장세동: “정치 자금법의 일반적인 사항은 알지만 세부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정치자금법에 관한 규정도 모르고 어떤 정치자금이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도 모르는 안전기획부장에게 이 나라의 안전을 맡겼습니까. 증인은 그랬다고 생각합니까”


장세동: “그렇게 인신공격은 하지 마시고”


“인신공격이 아니고 증인이 오늘 그 답변을 회피하는 것이 매우 불성실한 답변(태도)이기 때문에 묻는 겁니다”


참 말로 인해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은 그였다.


검사, 언론과도 치열하게 다퉜다. 언론인과 대화를 하면서도 강한 발언을 쏟아냈던 노무현은 검사와의 대화에선 속감정을 여과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이쯤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기득권과 싸우고 평범한 서민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의 기대만큼 응해주지 않았다. 대통령 시절 그에게 담배를 얻어 가 옆에서 피운 사람이 있을 만큼 그는 권력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오늘날 시민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건 단 하나다. 진심으로 국민을 위해줄 수 있는 사람, 정치인을 원하는 것이다. 진심있게 대하는 것과 가심으로 대하는 건 천지차이라는 말이 있다. 진심으로 국민을 대하고 생각하고 전심으로 일하는 정치인이 우리 시대 얼마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임지는 자-책임지지 않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