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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위대했던 항구도시

리버풀 2

by Han Karl

영국에서의 첫 여행 _ 리버풀 2


2.

폰트 아래 1층은 식당이다. 점심시간을 넘겨 한산하다. 여유를 갖고 메뉴를 꼼꼼히 본다. 문구 하나에 눈이 모인다. 어른 메뉴 하나를 시키면 키즈 메뉴 하나가 공짜란다. 횡재 맞은 기분으로 피쉬앤칩스와 생선살 스테이크를 주문하다. 볶은 버섯이 올라간 밥과 완두콩을 얹은 스파게티가 따라 나온다. 롯데리아 감자튀김보다 열 배는 굻은 감자튀김은 덤이다. 영국은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대단한 나라다. 어떤 식당이든 아이들을 위한 키즈 메뉴가 있다. 심지어 맥도널드에도 다양한 키즈 메뉴가 있어서 신기했었다. 테이트 리버풀에서 알버트 도크를 바라보며 2인분 가격으로 4인분의 만찬을 즐긴다. 커피까지 우아하게 마신다. 몸도 마음도 든든해진 우리는 미술관에서의 나른한 오후를 즐길 준비를 마친다.


2. TATE Liverpool.jpg TATE Liverpool


테이트 리버풀은 템즈 강변의 테이트 런던을 제외하고 영국현대미술관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하지만 뉴욕의 MOMA 같은 모던함을 기대하면 낭패 보기 일쑤다. 테이트 리버풀은 빅토리아 시대 창고 건물을 개보수한 미술관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면화와 커피를 담은 묵직한 자루들이 쌓여있던 자리를 피카소와 마티즈 그리고 잭슨 폴락의 그림들이 차지하고 있다. 낯선 공간 속 예술 작품의 결합이 신선하다. 창고 출신의 테이트 리버풀이 가진 최고의 참신함은 창이다. 커다란 창 너머로 리버풀 항구의 풍경을 시원하게 담고 있다. 아마도 커다란 창의 처음 목적은 창고 속 먼지를 환기시키는 것이었겠지만, 지금은 미술관에 걸린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창 아래에는 잠깐 감상을 멈추고 단단해진 종아리를 주무르는 휴식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감상과 쉼을 반복하며 테이트 전층을 돌아다닌다. 마티즈를 감상하느라 잠깐 놓친 아내와 아이들을 발견한다. 폭이 10미터는 넘는 잭슨 폴락의 작품 앞에 세 모자가 작품만큼 긴 의자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약간의 전율을 느낄 만큼 아름답다. 앵글 뒤에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도 앵글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눈 앞에서 보는 거장의 대작에는 그림책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강렬한 아우라가 있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그렇지 않고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이런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향유한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준하와 준서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라면서 그 흔한 벽낙서도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제법 그럴듯하게 그림 감상을 즐긴다.


미술관의 마지막 코스는 기념품 코너다. 준하는 잭슨 폴락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폴락 작품집을 오래 감상한다. 문제는 작품집을 바닥에 놓고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직원 아가씨는 일찍 그런 준하의 모습을 포착했었다. 이미 나와 눈인사를 나눈 사이다. 직원은 끈기를 가지고 기다린다. 준하가 책을 선반에 올려놓는다. 직원은 그제야 먼지를 털고 책을 제자리에 진열한다. 나는 한번 더 눈인사를 한다. 괜찮다는 눈인사가 돌아온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과 이심전심을 나누고 테이트를 나선다. 다음 주 금요일부터 내년 2월까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전이 열릴 거라는 포스터에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테이트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 게다가 영국의 11월은 해가 짧다. 원래 계획했던 비틀즈스토리와 머지사이드 해양박물관을 모두 볼 시간이 없다. 다수결로 비틀즈스토리를 결정한다. 리버풀로 오면서 비틀즈 음악을 줄곧 들었었다. 준하준서도 꽤나 괜찮았던 모양이다. 나도 내 주위의 몇몇처럼 숭배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비틀즈를 좋아한다. 테이트부터 이어진 회랑 끝에서 오른쪽 모퉁이를 돈다. 비틀즈스토리의 간판이 보인다. 비틀즈라는 이름값에 비해 형편없는 인공구조물에 잠깐 당황한다. 우리나라 중소도시의 나이트클럽 간판과 꼭 닮았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오랜 경험주의 전통의 결과라며 애써 이해해보려다가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는 궁시렁이 저절로 나온다. 비틀즈의 모든 것이 있다는 안내 책자의 호객 문구를 읽으며 계단을 따라 출입구가 있는 지하로 걸어 내려간다.


2. Beatles Story.jpg Beatles Story


오디오 가이드를 하나씩 받아 들고 관람을 시작한다. 비틀즈스토리는 일종의 박물관이다. 리버풀 노동자 가정 출신의 젊은이들이 전 세계적 성공을 거둔 이야기가 재료다. 멤버들의 고등학교 시절과 밴드 결성 후 처음 공연했던 캐번 클럽 시절, 미국 진출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시절 등이 시간 순서대로 공간을 구분해서 전시되고 있다. 매튜 스트리트와 캐번 클럽은 비틀즈가 활동을 시작하던 1961년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재현된 캐번 클럽에선 하루 몇 차례씩 커버 밴드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비틀즈스토리에서의 최대 발견은 비틀즈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존 레논은 Beetles(딱정벌레)라는 단어가 갑자기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철자를 BEAT-les로 바꿔봤는데 나쁘지 않더란다. 음악을 연상시키는 BEAT-les라는 말장난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런 말장난으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무언가를 결심할 수 있는 청춘의 치기가 부럽다. 이후 비틀즈는 1964년 미국에 진출하자마자 1위부터 5위까지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다. 엘비스 프레슬리 음악의 세례를 받은 리버풀의 밴드가 엘비스의 나라 미국을 점령한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British Invasion(영국 침공)이라며 대서특필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것은 은유적 수사가 아니라 정확한 팩트였다. 그리고 비틀즈는 존 레논의 말처럼 예수보다 유명한 밴드가 되었다.


비틀즈 이야기가 끝나는 마지막 공간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 유명한 <Bed In> 퍼포먼스 사진이 한쪽 벽면에 걸려 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3월 20일, 오노 요코와 결혼한 존 레논은 그들의 신혼여행지인 암스테르담의 힐튼 호텔로 기자들을 초대한다.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기자들의 인터뷰에 답하며 전 세계에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3일간 전한다. 자신들의 결혼에 쏟아진 전 세계의 이목을 반전과 평화를 알리는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사실 비틀즈는 19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를 제대로 향유한 그룹이다. 냉전이라는 우울하고 무겁고 칙칙한 시대 상황에서 행복하고 가볍고 밝은 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화끈하게 충족시킨 그룹이 비틀즈다. 따라서 Bed In 퍼포먼스는 자신들이 성취한 성공의 메커니즘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가치의 심벌인 셈이다. 존 레논과 다른 멤버들과의 불화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호사가들은 오노 요코 때문에 존 레논이 이상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학 시절에 마르크스에 대한 존 레논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상당한 통찰을 담은 그의 생각에 연신 고개를 끄떡인 이후로 그를 좋아했었다. <Imagine>을 들을 때마다 마르크스를 떠올렸던 것도 그때부터다. 철학과 신념이 없는 사람의 말과 행동은 금세 탄로 나게 마련이다. 흔히 존 레논을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기한 68혁명의 상징이라거나 신좌파로 불리는 지식인 그룹의 상상력 그 자체였다는 말을 듣는다. 그를 우상화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생각은 없지만, 철학과 신념을 가진 단단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갑자기 68혁명의 구호 하나가 떠오른다. 30대 이상은 아무도 믿지 말 것! 나는 서른 살이 뭔가를 자꾸 규정하기 시작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규정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유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혁명의 구호가 아프다.


11월, 영국의 짧은 해는 벌써 아일랜드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다. 알버트 도크에 붐비던 사람들도 어둠 속으로 모두 사라졌다. 머지사이드 해양박물관 앞을 지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리버풀이 위대한 항구도시로 위상이 드높던 시대 이야기와 바다를 풍미하던 옛날 뱃사람들의 엄청난 모험 이야기를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다는 해양박물관을 건너뛴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들쳐 메고 어둡고 낯선 밤길을 헤치며 숙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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