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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Place

리버풀 3

by Han Karl

3.

숙소에 딸린 작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리버풀 외곽의 숙소는 조용하고 아늑했다. 영국에서의 첫 장거리 여행에 긴장한 탓인지 침대에 몸을 눕히자 곧바로 피곤이 밀려들었었다. 덕분에 새벽녘 새소리에 일찍 잠을 깬다.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간다. 숲에 쌓인 아담한 공간 주위로 새벽안개가 잔잔하다. 아침 산책을 즐긴다. 방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신다. 아직도 아내와 아이들은 꿈 속이다. 여행 동선을 살핀다. 오늘 첫 방문지는 크로스비 비치Crosby Beach다. 숙소와 가깝다. 약간은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은 거리다.


크로스비 비치는 순전히 내가 원해서 가는 곳이다. 아내와 나는 여행 스타일이 완전히 반대다. 아내는 무난하고 대중적인 관광지에서 한가롭게 즐기며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나는 특이하고 특별한 곳을 더 선호한다. 우리의 만날 수 없는 여행 취향은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서로 빈정이 상하는 경우를 종종 만든다. 내가 여행지와 방법은 정하지만, 아내의 최종 재가를 얻어야 하기 까닭이다. 어느 날 아내는 나에게 두 가지 큰 가이드를 주었다. 하나는 대중적일 것, 다른 하나는 어트랙션이 있을 것. 나 혼자만 좋은 곳은 안되고, 아이들을 위한 충분한 배려를 하라는 지침이었다. 쉽게 공감되는 지침이지만 나로서는 마뜩잖다. 유명 관광지 여행은 시간이 없는 관광객들의 여행법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영국의 생활자가 아닌가? 좀 더 영국인스러운 여행지와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만만치 않은 논리를 들이민다. 내 고집을 아는 아내는 타협안을 제시한다. 여행 중에 한 곳은 내가 자유롭게 정하는 곳을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리버풀 여행에서는 크로스비 비치가 바로 내가 바랐던 그곳이다.


언젠가 석양이 비치는 크로스비 해안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기다리는 해변가에 미동도 없이 서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사진 밑에는 이런 설명이 달려 있었다. 안토니 곰리Antony Gormly라는 작가의 Another Place라는 작품이며,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형상은 쇠로 사람을 본떠 만든 조각상이고, 이런 쇳덩이 인간이 3.2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가 전체에 100개가 넘게 서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진은 낯선 공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나를 이끌었다. 더불어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안토니 곰리는 The Daily Telegraph가 선정한 영국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4위로 꼽힌 유명 작가였다. 영국에서의 첫 장거리 여행지를 리버풀로 삼은 것도 어쩌면 크로스비 비치에 대한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리버풀 여행을 준비하며 크로스비 비치에 다시 꽂힌 나는 18세기에 세워진 리버풀 시청사와 산업혁명 관련 박물관, 19세기의 각종 공공 건축물, 20세기에 만든 영국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 성당 같은 리버풀의 주요 관광지는 다음 기회로 미뤄버렸다.


3. Crosby Beach.jpg Crosby Beach Playground


아침 출근 시간을 피한 덕분에 크로스비 비치는 심리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진다. 해안가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엄청난 풍광이 차창으로 들어온다. ‘우와’하는 탄성이 절로 터진다. 끝도 보이지 않는 잔디밭, 그 너머로 고요한 바다, 그리고 옅은 구름을 담은 파란 하늘이 공간을 민주적으로 나눠가졌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식상한 수사 말고 달리 떠오르는 적절한 표현이 없다. 그림 한가운데 턱 하고 놓인 놀이터 하나가 공간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나무 펜스로 구획을 만든 놀이터는 족히 축구장 크기다. 나무로 만든 놀이 기구들이 큼직한 공간을 듬성듬성 채우고 있다. 마치 잔디밭과 바다와 하늘 위에 둥둥 떠있는 것 같다. 곰리의 작품은 아직 흔적조차 찾지 못했는데도 이미 이곳이 Another Place 같다. 세상 가장 멋진 놀이터에 감탄하는 사이 아이들은 벌써 그 속에 들어가 있다. 햇빛에 가늘게 비치는 아이들의 실루엣만으로도 세상 즐거운 감정이 묻어 난다. 작은 잔디밭 언덕에 가려 보아지 않던 반듯한 인공 연못을 지나 놀이터로 향한다. 백조와 이름 모를 야생 조류들이 한가롭게 연못 위에 떠 있다.


곰리의 작품이 있는 또 다른 장소를 찾아 해안가로 걸음을 옮긴다. 해안으로 가는 길은 영화 <노킹온해븐스도어Knockin’ On Heaven’s Door>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이 바다로 향하던 그 길을 닮았다. 잔디밭과 바다 사이에 숨어있던 크로스비 해안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는 영화와는 다르다. 격렬하게 부서지던 파도는 없다. 갯벌같이 끈적이는 모래사장이 길게 이어진다. 흡사 서해바다 같다. 낡고 오래된 기다란 나무 선착장이 바다로 곧게 뻗어 있는 것을 빼고는 딱 그렇다. 내가 꽂혔던 사진 속 크로스비의 웅장한 이미지는 현실에 없다. 눈 앞의 크로스비는 비장한 이미지다. 크로스비 해안에서 보는 안토니 곰리의 쇳덩이 인간들은 자연 앞에 한없이 왜소한 존재다. 뻘밭에 발을 묻고 듬성듬성 박힌 조각상들은 아일랜드 해 너머를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다. 절반은 바다로 들어갔다. 몇몇은 무릎, 몇몇은 가슴, 수면 위로 머리만 빼꼼 내민 이들도 있다.


3. Another Place.jpg 'Another Place' by ANTONY GORMLEY


안토니 곰리는 주로 인간 형상을 테마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다. 자신의 신체에 석고 붕대를 두르고 본을 떠 거푸집을 만든다. 곰리는 그렇게 찍어낸 스스로의 형상을 도시나 전원 풍경 속에 세워두는 것을 좋아한다. 크로스비 해안의 쇳덩이 인간들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들은 모두 그의 분신들이다. 분신들은 한결같이 바다 저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Another Place는 이곳, 여기가 아니라 저 바다 너머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쇳덩이 인간들의 행렬은 망망대해 저 너머에 있을 다른 어떤 세상을 갈구하는 종교의식 같기도 하다. 이들은 1997년부터 이렇게 서있다. 녹슨 피부 위에는 따개비들이 덕지덕지 붙었다. 수십 년 동안을 바다와 공기 속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 이곳의 그들은 그야말로 고통의 세계에 있다. 매일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형벌 이래로 내가 아는 가장 모진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사진 속 크로스비 해안은 해질녘이었다. 그 시간에 이곳을 찾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인지 모른다. 화창한 날씨에 정오를 향하는 시간에도 해안은 황량하고, 쓸쓸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슬픈 해안가를 아이들이 달린다. 가능한 멀리 있는 쇳덩이 인간을 찾아 뻘밭을 노닌다. 나는 아이들을 쫓아 앵글에 아이들을 담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옷이 반쯤 젖은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에게 돌아간다. 마침 바닷가를 산책하는 사내에게 가족사진을 찍어달라고 청한다. 사내는 굳이 멀리 있는 한 쇳덩이 인간에게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사내가 지목한 쇳덩이 인간은 나체가 아니다. 스카프 같은 것을 두르고 있다. 사내는 리버풀의 수호신이라며 이 쇳덩이 인간과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만히 수호신을 본다. 쇳덩이 인간이 두른 것은 리버풀FC의 응원 깃발이다. 순간 깃발에 적힌 문장을 보고 무릎을 친다. You’ll never walk alone!(넌 결코 혼자가 아니야!). 크로스비 해안의 묘한 분위기와 이렇게 절묘하게 어울리는 문장이 또 있을까.


예술이란 대상을 낯설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뻔한 사고방식을 뒤트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카프를 두르고 리버풀의 수호신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 쇳덩이 인간은 더 이상 곰리의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역할은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을 깨뜨릴 재료를 제공하는 일이고, 그로부터 뭔가를 깨뜨리는 것은 예술을 소비하는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누군가는 뻘밭에 이런 작품을 설치하고, 누군가는 거기에 생각지도 못한 의미를 더하고, 또 누군가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이것을 소비하는 모든 과정이 예술인 것이다. 예술은 이런 사소한 흔들림으로 일상과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예술은 그래서 위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맨 처음 이 뻘밭에 이 슬프고도 애달픈 쇳덩이 인간을 깊이 박을 생각을 한 안토니 곰리는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인가! 더불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저마다의 Another Place로 만드는 이곳은 또 얼마나 위대한 장소인가!


아이들이 리버풀의 수호신이 된 쇳덩이 인간에게 안경을 씌웠다가 옷을 입혔다가 포즈를 흉내 낸다. 준하준서에게 쇳덩이 인간은 또 하나의 색다른 장난감이다. 아이들에게 예술이니 감상이니 하는 것이 무에 중요하겠는가? 그냥 즐거운 한때로 오늘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크로스비 해안가 끝에 있는 건물에 아침 햇살이 튕겨져 반짝인다. 건물은 UFO처럼 납작하고 날렵하다. 스테인리스 같은 재질의 외관이 호기심을 끈다. 산책하는 또 다른 이에게 저 건물을 묻는다. 피트니스 센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UFO를 닮은 모던한 건물에 대한 호기심을 얼른 접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한다. 뭐든 궁금한 것은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다. 시간도 아끼고 체력도 아끼는 좋은 여행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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