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4
4.
내 생각에 리버풀은 가장 영국적인 도시다. 우리가 떠올리는 영국 이미지는 보통 두 가지다. 킹스맨같은 영화의 그것과 빌리엘리어트 류의 영화에 등장하는 영국이다. 킹스맨이 런던으로 대표되는 이미지라면, 빌리엘리어트는 리버풀 이미지의 영국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보기에 영국은 결코 런던적이지 않다. 내가 경험한 영국은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현대성보다는 과거의 영광이 목가적 풍경들 속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공존하는 미완성의 이미지다. 단언컨대 런던 외에 런던 같은 영국은 영국 어디에도 없다.
리버풀은 아일랜드와의 연락항 역할을 하며 중세쯤 생겨났다. 흑사병과 장미전쟁을 겪으며 쇠퇴했고, 산업혁명으로 다시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20세기 말,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직격탄을 맞으며 다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서 지금의 리버풀은 미래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는 않는 그런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리버풀을 가장 영국적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비틀즈와 축구라는 가장 영국적인 상징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틀즈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리버풀의 축구팀은 리버풀FC다. 1892년에 창단해서 1부 리그 통산 19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를 6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 클럽이다. 잉글랜드 클럽 중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팀이며, 빅 이어The Big Ears Cup를 영구 소장한 유일한 클럽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명문 구단은 리버풀의 쇠퇴와 궤를 함께하며 쇠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가렛 대처가 총리로 있던 마지막 해인 1989~90 시즌을 마지막으로 30년 동안 1부 리그 우승을 한 번도 못했었다. 2019~2020 시즌에 이르러 드디어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것이 리버풀의 새로운 도약을 암시하는 신호탄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영국에 오기 전까지는 당연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최고의 클럽이라고 생각했었다. 박지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맨유와 관련한 책을 써서도 아니었다. 맨유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를 소유한 클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영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가장 좋아하는 클럽으로 리버풀FC을 꼽았다. 내가 살고 있는 요크라는 지역적 특색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요크에선 리버풀보다 맨체스터가 더 가깝다. 얼마 전 요크대학교 식당에서 리버풀FC와 FC바로셀로나의 UEFA 경기를 봤었다. 대학 식당을 마치 극장처럼 꾸며놓고 열렬히 응원하던 요크 대학생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어지간한 팬심에서 나오는 판에 박힌 리액션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아이들의 반 친구들도 리버풀FC를 가장 좋아하는 클럽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내 생각이 완전히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준하의 친구 가족과 식사를 하며 리버풀FC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맨유는 골프팀 같고, 리버풀은 럭비팀 같다는 비유였다. 내 방식으로 해석하자면, 맨유에는 런던 같은 이미지가, 리버풀에는 영국적인 동질감이 느껴진다는 영국적인 유머였다.
크로스비 해안을 빠져나오며 안필드를 내비게이션에 찍는다. 여기까지 와서 안필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 경기마다 60,000여 명의 함성이 터져 나오는 리버풀의 전용 구장은 의외로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주택란 해소를 위해 국가사업으로 지어졌다는 테라스드 하우스Terraced House가 끝도 없이 이어진 주택가 끝에 안필드가 보인다. THE KOP이라는 리버풀FC의 애칭과 구단의 엠블럼이 구장 정면에 큰 현수막으로 걸려 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빌 샹클리Bill Shankly의 동상이 두 팔을 벌리고 관람객을 맞는다. 동상 아래 문구는 그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알려준다. He made the people happy.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샹클리는 2부 리그에서 허우적대던 클럽을 리그 우승과 UEPA컵 우승으로 이끈 인물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4년에는 FA컵까지 우승한다. 돌려 말하는 것이 서툰 영국 사람들의 솔직한 직설화법이 인상적이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Form is temporary, Class is permanent)는 그의 말처럼, 샹클리는 리버풀의 영원한 클래스로 기억되고 있다.
안필드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샹클리 게이트다. 안필드 구장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게이트 옆에 붉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Liverpool Memorial이 보인다. 작은 화분과 꽃다발, 리버풀FC의 상징들이 가득 담겼다. 추모비는 힐스버러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1989년 4월 15일 셰필드 힐스버러 구장, 경기를 관람하던 리버풀 원정 팬들이 갑작스레 한쪽으로 몰리면서 참변이 발생했다. 응원석이 붕괴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사망 96명, 부상 768명의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입석 스탠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합 직전에 한꺼번에 몰려든 리버풀 팬들을 서둘러 관중석으로 들여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진행요원들은 숫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1600명 정원인 입석 관중석에 3000여 명의 팬들을 입장시킨 것이다.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 유럽축구연맹UEFA,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주관하는 모든 대회에서 입석 스탠드는 사라졌다.
아이러니한 사실 하나는 리버풀FC 서포터들의 애칭인 콥kop의 유래다. 원래 콥은 축구 경기를 서서 관람하는 응원 구역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스탠딩 응원은 축구 응원 문화의 원형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고, 더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 처음으로 리버풀FC를 응원하는 조직화된 서포터들이 등장하면서 자신들을 The Kop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더콥은 오늘날 축구 서포터스 문화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요약하자면, 힐스버러 참사는 콥이라는 애칭을 쓰는 리버풀FC의 서포터들이 콥 구역의 입석 스탠드 사고로 참사를 당한 아이러니한 사건인 것이다.
추모비에는 당시 희생된 9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리버풀FC의 엠블럼에 있는 타오르는 횃불도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성화라고 한다. 샹클리 게이트 상단에 조각된 낯익은 황금색 글씨가 뭉클하게 읽힌다. YOU’LL NEVER WALK ALONE. 크로스비 해안에서는 위로의 말이었는데, 여기서는 추모의 말이다. 그리고 엠블럼에 적힌 이 말은 힘을 북돋우는 응원의 말이다. 좋은 말은 이렇게 적재적소에서 살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