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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Dec 19. 2021

겨울에 태어나면 아이스크림 케이크 못 먹나요?

난 얼어 죽어도 아이스크림 케이크인데!

 나는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생일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이유-어머니께서 주장하시는-는 간단했다. 겨울이니까.


"겨울에 아이스크림 케이크 먹으면 왜 안 되는데?"

"감기 걸려."


 떼를 쓰기도 하고 울어도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이쯤 되면 어머니도 대단한 고집이시다. 나의 11살짜리 인생에서 가장 부러웠던 순간은 친구가 최신 핸드폰을 샀을 때가 아니다. 친구가 전학 간다고 서울로 상경했을 때도 아니다. 7월, 사촌 오빠 생일 즈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샀을 때였다!


 그날은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모였다. 2n 년 인생 여전히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는 나는 "케이크 사러 갈 사람"이라는 말에 벌떡 일어났다. 그때만 해도 케이크는 안중에도 없고 콧바람 쐬는 외출이 그저 좋을 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차에서 내리고 보니 아이스크림 가게 앞이 아닌가.


"우리 아이스크림 케이크 사?"

"응. 오빠 생일이잖아."


 그 순간 왠지 모를 억울함이 밀려왔다. 그러니까 오빠는 생일이 여름이니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어도 된다 이거지? 왜 겨울에 태어나면 먹으면 안 돼? 이번에는 머릿속에 '왜 나만 안 되는데'만 가득 찼다. 다음에 내 생일이 돌아오면 그때도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달라는 말에는 철벽 같은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글을 쓰고 보니 지금도 억울하다. 겨울에 아이스크림 케이크 먹는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지 않나. 감기 걸리지 않을 만큼만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면 따뜻하게 무장(?)하고 먹는다든지. 그렇게 열아홉 인생을 보냈다. 차선책은 초콜릿 케이크였다. 하지만 2%, 아니 20% 부족하다. 시원한 맛이 필요했다.


 스무 살 이후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된 이유는 봉인해제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내 돈으로 사 먹을 여유가 생겼으니까. 코흘리개 돈 몇 푼이 아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위해 3만 원을 낼 정도가 되었으니까. 물론 가족이 챙겨준 적도 있다. 어린 날의 내가 그토록 억울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나도 참 단순해서 생일에 아이스크림 케이크 한 번 먹어봤다고 그간 억울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역시 기분 풀 때는 맛있는 음식이 최고다.


 몇 년 전 언젠가 어머니와 대화하다 이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여전히 어머니는 그때는 감기 걸릴까 봐 그랬다며 주장을 굽히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적 감기에 한 번 걸리면 지독하게 며칠을 앓았다. 그래서 어머니 딴에는 더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 지금은 튼튼이가 되었으니 괜찮다. 또 지금은 생일이 아니어도 먹고 싶을 때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좋게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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