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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Dec 23. 2021

제사상에 베개가 왜 나와?

어린아이의 발칙하고 엉뚱한 행동

 제삿날이 다가오면 외할머니는 며칠 전부터 분주히 야채를 데치고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그날이 되면 왠지 모르게 아침부터 사뭇 집안 분위기가 달랐다.


 “오늘은 제삿날이니까 우리는 할아버지 방에서 자야 해.”     


 어머니와 나는 가장 큰 안방에서 잠을 잤는데, 제삿날이면 그 방에서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 하루만 조그마한 방에서 자야 했다. 이상하게도 꼬마는 그것이 좋았다. 같은 집인데도 누워 있으면 안방과는 다르니 새롭기도 하고. 게다가 할아버지 방은 안방의 반절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어머니와 둘이 누우면 꼭 맞는 크기라 오히려 아늑했다. 심지어 방 냄새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물론 잘 시간이 되었다고 순순히 잠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자야지, 잘 시간 됐어.”     


 어머니가 몇 번이나 어르며 말해도 나는 기어코 제사 지내는 것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잠과 싸웠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음식을 준비하셨고 할아버지는 정장으로 말끔히 갈아입고서 제사상에 놓을 지방을 쓰고 계셨다. 나는 자정이 다 되도록 졸린 눈을 겨우 뜨고 버텼다. 그러다 문득 장판에 새겨져 있는 넓은 격자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항상 저 자리에서 절을 하시던데, 그러면 알아보기 쉽게 표시를 해드려야겠다!’     


 열 살짜리 꼬마의 발칙하고도 엉뚱한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우선 몸길이만큼이나 기다란 쿠션을 가져와 가운데에 놓았다. 그리고 양 옆으로 베개를 하나씩 두었다. 그러니까 제사상을 보고 서 있는 방향에서 ‘ㄷ’ 자를 왼쪽으로 90도 돌린 모양이었다. 또 혼자 제사를 지내면 외로우실까 내가 가지고 있는 인형들도 그 주변에 줄줄이 늘어놓았다. 이제 저 사이에서 할아버지가 제사를 하시겠지? 어린 나는 뿌듯함까지 느꼈더란다. 항변하자면, 마냥 철없는 장난 정도가 아니었던 게, 베개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칼각(?)을 맞추었다. 인형을 늘어놓을 때도 혼자 아주 진지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당연히 칭찬이 아닌 꾸중이었다. 베개를 왜 저기 두었냐며 한 마디씩 하고는 그것들을 금방 치워버리셨다. 나는 시무룩해졌다. 지금 와서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앞으로는 제사를 지낼 때 베개를 두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제사는 장난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어린 나의 순진함을 조상님도 귀엽게 봐주시지 않았을까? 그래도 예정 시간대로 제사는 시작되었고, 나는 할머니와 문턱 너머 바닥에 앉아 눈을 꼭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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