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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Dec 16. 2021

어머니는 반드시 태어날 운명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도

 오늘은 외할머니 말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언젠가, 명절 연휴 끝무렵이 되어 큰 외삼촌댁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어머니, 조수석에는 나, 뒷좌석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가족끼리 모였으니 이야기 주제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흘러갔다.


 "우리 막내가 제일 효녀야."


 어머니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는 이 집안의 넷째이자 막내다. 위로 오빠가 둘, 언니가 하나. 이들끼리는 나이 터울이 2~3살로 적은 편이나, 어머니는 셋째인 작은 외삼촌과도 8살 차이가 난다. 큰외삼촌이 대학에 갔을 때 어머니는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이모는 어머니를 거의 업어 키우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가 하마터면 세상의 빛을 영영 보지 못 할 뻔했다.


 1960~70년대는 산아제한 정책이 활발한 시기였다.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나라는 가난에 시달렸다. 입이 많아지면 더 힘들어진다. 다시 말해 입을 줄여야 한다. 최대한.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딸 ·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외할머니께서는 셋째를 낳고서 더는 낳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셨다. 그런데 웬 걸, 넷째가 들어섰다. 그것도 다짐을 한지 족히 몇 년은 지난 후에서야. 요즘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을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였으므로 희망한다면 병원에서 무료로 중절 수술을 해주었다고 한다. 시가지에서 벗어난 시골 자락에 사셨던 할머니는 두 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를 꾸역꾸역 걸어와 병원에 가셨다. 무려 세 번이나. 물론 세 번 다 허탕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줄이 길어도 너무 긴 것이었다. 수술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네 번째 방문. 그마저도 줄이 끊이질 않아 포기했다. 외할머니는 그때 새로이 다짐했다.


이 아이는 낳으라는 뜻인가 보다.

 그렇게 외할머니 품 속에서 열 달을 채우고 어머니는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았다. 집안의 귀여운 막둥이가 탄생했다.


 어머니는 형제와 나이 터울이 크다 보니 아주 조금의 어색함은 있다고 한다. 나쁜 의미의 어색함은 아니다. 세대차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거창한 단어로 선을 긋기에는 다소 애매한 그런 감정.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에게 꼬박 존댓말을 쓴다. 그래도 오히려 다투는 일 없이 서로 조심하기 때문에 사이가 아주 돈독함은 틀림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외할머니께서 어머니를 가장 효녀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네 형제 모두 비뚤어짐 없이 잘 자라주었고 늘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세 형제와 달리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이었다. 인생의 반 이상을 부모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관점에서 우리 가족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나였다. 어머니는 퇴근길에 항상 그들을 위한 먹거리와 과일을 샀다. 이건 이래서 싫네, 저건 저래서 싫네, 그들의 취향까지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 연금 등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막둥이는 이제 집안의 만능 해결사이자 기둥이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외할머니와 함께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할아버지는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꼬박 납골당에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여전히 퇴근길이면 할머니를 위한 반찬을 두 손 가득 사들고 집을 향한다.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인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딸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아주 조금 슬프기도 했다.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 없을 뻔했다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다 난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테니.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를 곱씹을수록 어머니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종종 어머니께 해맑게 말한다.


"엄마, 나는 나이만 먹었지 아직 철부지야."


 그렇지만 멋진 딸이 되고 싶다. 아주 느리더라도 한 발 한 발 오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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