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즈 Jan 19. 2022

퇴사,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일하고 싶어서

나는야 타오르는 중인 난로, 어서 장작을 더 달라


도비는 자유예요! 그치만 일이 하고 싶어요!


 지난 12월 31일을 끝으로 2n 년 인생 첫 퇴사를 맞이했다. 2년 조금 덜 되는 시간 동안 눈에 띄게 자랐다. 갓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2년 만에 학다리 같은 닭이 되었다. 미안하지만 아주 잠깐만 자기 자랑 좀 하겠다.


 만 1년 차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담당이 아니던 일, 그것도 매출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일을 갑작스레 맡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걱정은 걱정일 뿐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나는 못하겠다고 말했을 테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보면 새로운 일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내가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구나! 가슴이 뛰는 나는, 걱정하는 나에게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일에 목마른 사람이었구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니 버벅거림 없이 금방  적응했다. 그때부터 스스로도 요령을 쌓기 위해 많이 분석하고 연구하고,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게다가 혼자서 n인분을 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나도 내가 멀티 인간일 줄은 몰랐다. 일을 너무 잘해도 탈이란다,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더 많아진다고. 하지만 정말 요즘 말로 "오히려 좋아!"였다.


 그렇게 내부와 외부, 그러니까 동료와 고객으로부터 쌓인 신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한 해가 가고 연봉협상 시즌이 돌아오기도 전에 월급을 올린 적도 있었다. 게다가 소위 말하는 '일잘러'라는 것이 윗선에도 소문이 났는지, 퇴사 한 달 전 파격 제안을 받았다. 이제 막 만 2년 차에 접어드는 나를, 다리는 길지만 아직 능히 뛰는 요령은 다소 부족한 나를, 팀장으로 승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창사 이래 전례 없는 초고속 승진이었다. 이미 한 달도 이전에 저 퇴사하겠습니다 선언해놓고, 솔직히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직은 어린 나이라서 승진에 큰 욕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막상 겪어 보니 욕심이 나더라.


 그럼에도 결국 예정대로 퇴사했다. 나쁘게 나온 것도 아니다. 서로 웃으며 안녕을 고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마지막 근무를 마쳤다.


하지만 자유는 조금만 즐기고 싶어요






여기 난로에 장작 좀 더 넣어 주세요


 퇴사 이유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였다. 그 새로운 일도 뜬금없이 떠오른 게 아니라, 기존 회사에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보다 세부적인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사실 내 나이 2n 살은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니다. 20대 여러분, 우리에게 불가능한 건 키즈 모델뿐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걱정하지 마시라. 지금 이 나이에 어느 회사에 쌩신입으로 들어가더라도 충분히 부딪칠 수 있는 청춘이다. 그만큼 열정이 불타오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무리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많았어도 나는 더 다양한 의미 있는 일을 원했다. 가보지 않은 곳으로의 무모한 도전이래도 좋다. 여전히 걱정하는 나보다는 가슴 뛰는 내가 이긴다. 그래서 나는, 이 2년 남짓한 시간으로 쌓은 단단한 경험을 식량 삼아 새로운 여정을 떠나려 한다. 떠나보고 싶다. 


 처음에는 1월이 되자마자 바로 이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2월 마지막까지 바쁘게 일을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를 틈틈이 만들어왔지만 아직 구멍이 많았다. 그 상태에서 마음이 조급해지니 하려던 것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2월까지는 푹 쉬면서 재충전도 하고,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했다. 그동안 바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다. 바빠도 할 사람은 어떻게든 야금야금 해내니까. 나도 최선을 다했지만 조금 벅찼다. 게다가 겨우 2년 일하고 좀 쉬어야겠다고? 어느 누군가의 눈에는 '조금만 지치면 금방 그만두는 사람이네'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엄연히 따지면 약 6년 만에 처음 편히 쉬어보는 것이다. 여담으로, 나는 대학시절 4년 정도 음악생활을 병행했었다. 학기 중에는 낮에는 공부, 저녁을 먹은 뒤에는 밤 10시까지 연습실. 방학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실에 틀어박혀 살기를 몇 년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겨 음악을 멋진 취미로 남겨두었다. 그럼 또 방학 때는 공부, 공부. 지루해질 때쯤에 작곡 한 판. 아니면 기타 연주라도. 그러니 방학을 방학답게 푹 쉬면서 보낸 적이 없었다. 방학 때도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무언가에 미쳐 있었다. 그 후 운 좋게 졸업 후 바로 취업까지 성공했으니, 그렇게 새로이 달려온 2년의 시간. 6년간 쉬지 않고 뛰었다. 이제 조금 숨 돌려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다음 글은 '퇴사는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후회한다'라는 주제로 적어보려 한다. 과연, 나는 무엇을 후회했을까?

작가의 이전글 구독자분들을 위한 짧은 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