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히 다 헤아리지 못할 그의 최선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즐겨 보았다.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재연해놓은 것도 나에게는 처음 보는 광경이니 신기하기도 했고. 그 시기에 한창 나를 웃고 울게 했던 작품.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덕선아 미안혀. 아빠 엄마가 잘 몰라서 그래. 첫째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둘째는 어떻게 예뻐해야 하는지, 셋째는 어떻게 해야 사람 맹그는지 아빠가 몰라서 그래. 이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자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디.
긍께 우리 딸이 쪼까 봐줘.
아빠와 엄마. 마치 이름처럼 매일 그렇게 불리지만 그것은 이름이 아니다. 호칭일 뿐이다. 부모로서의 책임이 담긴 호칭. 생각해 보면 부담스러운 일이다. 부모가 되는 순간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한 작은 생명체에 책임을 져야 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사처럼 그들도 처음부터 부모가 아니었으니. 아무것도 모른다. 아이가 무엇 때문에 우는지, 기저귀는 어떻게 가는 건지,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먹이면 좋고 또 무엇을 먹이면 안 되는지.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어떻게 타일러야 할지. 아이의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날이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그때마다 그들은 낯선 판단을 내려야 한다.
안방 맨 끝 옷장과 벽 사이 틈에는 나무로 만든 기다란 회초리가 있었다. 늘 그렇게 감추고 있다가도 호되게 혼이 날 때면 그 회초리는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이유로 혼이 났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기 싫었던 건가. 아무튼 한바탕 매를 맞을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고 차라리 이대로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아무 걱정도 아픔도 없을 테니.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어쩌면 그것이 나름대로 최선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내린 판단이었다. 회초리를 휘두를 때면 그도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겠지만. 되려 그가 나보다 더 괴로웠을지도.
무슨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은 오랜 시간 그가 내린 판단의 집합이었다.
“엄마는 네 엄마이자 아빠이기도 해. 너는 아빠가 안 계시니까 엄마가 아빠 몫까지 다해야지.”
그래서 때로는 온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하기도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고민하고 있었구나. 두 사람의 몫을 짊어지고서 오로지 나의 일생을 위해.
자식을 키우는 데에 있어 어떤 방법이 옳은지, 그 정답은 없다. 각기 다른 방식이다. 모두 처음이니까. 과연 맞게 내린 판단인지 그 누구도 답을 제시할 수 없으니까. 정답이 없는 선택을 내린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가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지 나는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보기 전까지 나는 부모로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거라고. 여전히 그렇다. 훗날 부모가 된다고 한들 그 마음을 헤아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다. 내가 그 마음을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자라야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