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주 Aug 10. 2023

#10. 하얀 우주를 마주했을 때

화창한 초 여름 오후 3시의 하늘

 오랜만에 다음 웹툰에 들어갔더니 오무라이스잼잼 새로운 시즌이 연재 중이었다.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건조했던 하루의 공기가 조금 달콤해졌다.


 내게도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른 아침 우연히 뜬 시간에 먹는 맥모닝 세트라든지, 갑자기 약속 파토난 휴일의 오후라든지, 화요일마다 연재되는 네이버 웹툰 ‘위아더좀비’와 다음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 그리고 ’화창한 초 여름 오후 3시의 하늘.‘

사랑해요 위아더좀비!

 여름의 초반, 해가 중천에서 자신의 뜨거움을 자랑하는 시간이 지나고 빛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오후 3시의 하늘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시간, 다른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여 술래잡기를 할 때 나는 아파트 현관문 앞에 앉아서 푸른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현관문 앞에서 누가 나오고 들어가든 신경 쓰지 않고 신발주머니를 안은채 현관 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시간만큼은 시공간을 초월한 듯 자유로웠다. 아무런 고민도 아무런 잡념도 아무런 욕구도 없는 그저 무념무상의 시간. 푸른 하늘이 물감을 찍은 듯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시간을 어린 날의 나는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하늘은 이윽고 어둠에 잡아먹혔고, 나는 약간은 울적하고도 황홀한 몽글몽글한 기분을 안은 채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이런 소박한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나인데 빌어먹을 세상 새끼가

 지난주 나의 삶은 온 사방이 하얀색으로 칠해진 텅 빈 공간에 당도했다. 내가 늘 걷던 인생길은 사막, 바다, 혹은 오르막길이나 시원한 내리막길이었다. 땀을 흘리며 걷는 길은 고되더라도 어디론가 향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지난주 도착한 곳은 그저 온통 하얀 공간이었다. 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이 길은 내가 걷고 있는지 아니면 가라앉고 있는지 떠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어느 방향으로 걷는 것인지 헤엄치는 것인지 아니면 멈춰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길에서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쉬는 것. 생의 감각이 살아있는 한 버티는 것뿐이었다. 버티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뿐.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나라는 사람은 이 하얀 공간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 거 같은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내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향해 가고 있었는지 불확실했다. 이 광활한 하얀 우주 안에서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하얀 우주의 먼지가 되어가던 도중, 문득 떠오른 것은 푸른 하늘이었다. 오후 3시의 초 여름날의 달콤하고도 씁쓸했던 푸른 하늘. 그 하늘 아래에서 난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그저 내가 내가 되었던 시간. 내가 나 하나로 충분했던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하얀 우주에서 옅어지며 소실되어 가던 내 모든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흩어졌던 몸의 조각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끼워 맞춰지는 기분.

 ‘나는 살아있구나.’ 그렇다면 걸어야지. 생의 감각이 꺼지지 않은 한 나에게 허락된 이 걸음을 걸어가야지. 이 하얀 우주의 끝에는 무엇이 펼쳐질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또 걸어야지. 앤트맨이 양자역학 공간을 빠져나가듯 나도 이 텅 빈 우주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숨을 쉬며 걸어 나가야지. 푸른 하늘 아래 자유로워지던 나를 기억하면서.

이전 09화 #9. 구겨진 셔츠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