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인생이라면, 다시 한번 더!
최근 들어 싫어진 게 많아졌다. 빨래해서 구겨진 흰 셔츠가 싫다. 세제로 조물조물하고 나서 온수로 빨래를 돌려도 완전히 하얘지지 않는 목덜미 부분이 싫다. 다리미가 없어서 정장 입을 때 구겨진 셔츠를 대충 입고 나가는 내 모습이 싫다. 다리미를 하나 사야 하나 생각하다가 고작 흰 셔츠 하나 때문에 돈을 투자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나의 재정 상태가 싫다. 옥탑방 침대에 누워 구겨진 셔츠를 보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는 나 자신이 갑자기 너무나도 싫어져서,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나도 이렇게 멋없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내 탓이 아니라고, 누군가가 시킨 거라고, 나는 지금 엉망진창이라고, 나는 밑바닥이라고, 게임 리셋버튼 누르듯 다시 시작하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떼쓰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용암 끓듯이 솟아올랐다가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어릴 때 마트에 가면 맨날 떼를 썼다. 배고프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화려한 요술봉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사진을 보면 거의 다 울고 있는 사진이나 입에 먹을 것 물려놓은 사진, 아니면 요술봉 든 사진들 뿐이다. 그런 아이가 커서 사회화되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살고 있으니 이게 정상적일 수 있느냐 이 말이다.
이러한 적당한 자조를 안정제 삼아 다시 차분하게 생각한다. 나는 대체 왜 힘든 걸까? 좋은 글이 써지지 않아서 힘들다. 누군가에게 좋게 평가받고 싶어서 힘들다. 동창 모임에 나가서 나의 근황을 얘기하는 것이 힘들다. 좋은 날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빠의 말을 듣는 게 힘들고, 낡은 셔츠 입고 다닌다고 안쓰러워하며 잔소리하는 엄마의 눈을 보는 게 힘들다.
자리에서 일어나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뒤 셔츠를 대충 손으로 팡팡 턴다. 조금 눅눅해진 셔츠를 입고 몸으로 셔츠를 다리며 방 청소를 시작한다.
‘머리카락과 먼지는 쓸어도 쓸어도 어쩜 그렇게 매일 쌓이는지.’
방바닥에 머리카락을 안 보려면 머리를 다 밀어버려야 하나. 대머리가 되면 비듬도 없으려나. 그래도 머리는 있는 게 낫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방을 청소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 사이로 먼지들이 춤을 추며 일렁인다. 들이마시지 않으려고 먼지들과 함께 춤을 추며 생각한다.
‘쓸어도 쓸어도 내일이면 또 먼지가 쌓이겠구나.’
그럼 내일도 또 청소를 해야겠지. 오늘의 먼지를 쓸고 닦고 비우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구나. 며칠 동안 쌓인 마음의 먼지를 토해내고 나니 오늘의 마음가짐은 깨끗해졌구나. 그래, 그렇다면 내일 또 더러워질 나의 마음을, 내일은 내일의 방법으로 청소를 해보자. 매일매일 쓸고 닦고 비우자. 그것이 인생이라면, 다시 한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