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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 Aug 09. 2023

#9. 구겨진 셔츠 때문에

그것이 인생이라면, 다시 한번 더!

 최근 들어 싫어진 게 많아졌다. 빨래해서 구겨진 흰 셔츠가 싫다. 세제로 조물조물하고 나서 온수로 빨래를 돌려도 완전히 하얘지지 않는 목덜미 부분이 싫다. 다리미가 없어서 정장 입을 때 구겨진 셔츠를 대충 입고 나가는 내 모습이 싫다. 다리미를 하나 사야 하나 생각하다가 고작 흰 셔츠 하나 때문에 돈을 투자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나의 재정 상태가 싫다. 옥탑방 침대에 누워 구겨진 셔츠를 보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는 나 자신이 갑자기 너무나도 싫어져서,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나도 이렇게 멋없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내 탓이 아니라고, 누군가가 시킨 거라고, 나는 지금 엉망진창이라고, 나는 밑바닥이라고, 게임 리셋버튼 누르듯 다시 시작하게 해달라고 울며불며 떼쓰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용암 끓듯이 솟아올랐다가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이러한 자조는 카타르시스를 일으켜서 좋아

 어릴 때 마트에 가면 맨날 떼를 썼다. 배고프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화려한 요술봉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사진을 보면 거의 다 울고 있는 사진이나 입에 먹을 것 물려놓은 사진, 아니면 요술봉 든 사진들 뿐이다. 그런 아이가 커서 사회화되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살고 있으니 이게 정상적일 수 있느냐 이 말이다.

 이러한 적당한 자조를 안정제 삼아 다시 차분하게 생각한다. 나는 대체 왜 힘든 걸까? 좋은 글이 써지지 않아서 힘들다. 누군가에게 좋게 평가받고 싶어서 힘들다. 동창 모임에 나가서 나의 근황을 얘기하는 것이 힘들다. 좋은 날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빠의 말을 듣는 게 힘들고, 낡은 셔츠 입고 다닌다고 안쓰러워하며 잔소리하는 엄마의 눈을 보는 게 힘들다.

결국은 셔츠가 문제인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뒤 셔츠를 대충 손으로 팡팡 턴다. 조금 눅눅해진 셔츠를 입고 몸으로 셔츠를 다리며 방 청소를 시작한다.

 ‘머리카락과 먼지는 쓸어도 쓸어도 어쩜 그렇게 매일 쌓이는지.’

 방바닥에 머리카락을 안 보려면 머리를 다 밀어버려야 하나. 대머리가 되면 비듬도 없으려나. 그래도 머리는 있는 게 낫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방을 청소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 사이로 먼지들이 춤을 추며 일렁인다. 들이마시지 않으려고 먼지들과 함께 춤을 추며 생각한다.

 ‘쓸어도 쓸어도 내일이면 또 먼지가 쌓이겠구나.’

 그럼 내일도 또 청소를 해야겠지. 오늘의 먼지를 쓸고 닦고 비우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구나. 며칠 동안 쌓인 마음의 먼지를 토해내고 나니 오늘의 마음가짐은 깨끗해졌구나. 그래, 그렇다면 내일 또 더러워질 나의 마음을, 내일은 내일의 방법으로 청소를 해보자. 매일매일 쓸고 닦고 비우자. 그것이 인생이라면, 다시 한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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