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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 Jul 30. 2023

#8. 세상의 두려움 앞에 마주하기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머리끄댕이 잡은 썰

 새벽부터 부스슥하는 소리가 나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잠에서 깼다. 주인집 아저씨가 새벽부터 옥상을 빗자루로 쓰는 소리였다. 덕분에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


 이상한 꿈들을 꾸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무대에 오르는 꿈. 지하철을 자꾸만 잘못 타는 꿈. 그리고 무엇보다 답답한 꿈은 주먹이 상대에게 닿지 않아 쉐도우 복싱하는 꿈이다. 겁이 많은 편이라 살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때려본 적도, 맞아본 적도 없다. 어릴 적 친누나들이랑 싸울 때도 기껏 해봤자 냄비나 서로에게 집어던질 정도지(?) 손찌검을 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꿈에서 싸움이 나면 언제나 내 주먹은 물렁물렁 거리던지 아니면 상대에게 닿지 않곤 했다.


 그런 내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구와 치고박는 싸움을 했던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 두 가지는, 그 상대 아이의 싸움 기술이 꽤나 수준급이었다는 것과, 반면에 나는 알고 있는 기술이 머리끄댕이를 잡는 것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선빵을 맞은 난 상대 아이의 머리를 나름대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 아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사정없이 나에게 펀치를 꽂아댔다. 나는 아파서였는지 아니면 타인에게 맞는다는 것에 놀라서였는지 눈물콧물 다 흘려댔지만 그 아이는 빠이터스럽게 주먹을 휘갈겼다. 한 손은 그 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한 손은 되지도 않는 가드를 올린 채로 울며불며 탈춤을 추며 싸움을 이어나간지 몇 분이 지나자, 반 친구들은 우리들을 (다행히도) 뜯어말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세기의 대결은 끝이 났다. 웃긴 건 다음날 바로 화해하고 웃으면서 친하게 지냈다는 것이다. 연락처는커녕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 이 나를 이길 정도의 녀석이라면 지금쯤 바람의 빠이터가 되어있겠지.

최근에 생긴 취미, 아침에 커피 내려마시기

 20년이 지난 지금 난 맞서는 게 두렵다. 맞선다는 건 부딪힘을 감수하는 것이고, 부딪힌다는 건 아픔을 동반한다. 아픈 건 싫어. 그래서 자주 회피하고 도망치고 웅크리곤 했다. 그래 그러면 선을 긋자. 하지만 내가 그어놓은 선을 간당간당 넘었다 들어왔다 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면서 나를 지킨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된 것. 맞서 싸울 때 난 상처는 금방 아물지만 선 안으로 한 발짝 물러난 방관자이자 주변인으로서의 경험은 끈적이는 액체처럼 다가와 나의 곳곳에 오래 묵은 떼로 남는다는 것이었다. 싸울 줄도 알아야 하는구나. 지킨다는 건 내가 그어놓은 선 앞에 서는 거였다. 두려움과 마주하자. 비겁함을 안전함으로 타협하지 말자. 악당들이 쳐들어올 때 바람의 빠이터마냥 주먹을 휘갈기진 못해도 머리채정도는 잡아보자. 나는 본래 크고, 밝고, 담대하니까.


 주인 아저씨 덕분에 새벽부터 잠을 깬 나는 어젯밤 꾼 답답한 꿈들을 커피콩과 함께 그라인더에 넣고 잘게 으깨었다. 원두 필터에 끓는 물을 붓고, 커피잔에 우러나온 정제된 생각들을 마시며 하루를 또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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