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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 Jul 23. 2023

#7. 채도 높은 것들

에그타르트 알바를 시작했다

 결국 배민커넥트를 때려치우고(4화 참고) 에그타르트 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아침 오픈 타임에 카페문을 열고 오븐을 예열한 뒤 타르트를 굽는다. 매일 새롭게 근사하게 구워지는 에그타르트를 보고 있으면 창고에 금은보화를 보는 알리바바의 도둑들의 마음처럼 근사한 보물을 보고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금고를 채우듯 에그타르트를 선반에 진열하다 보면 내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괜히 부자가 된 느낌이 든다. 사실 대단한 작업은 아니고 그저 만들어진 제품을 오븐에 구워 내놓는 것뿐이지만, 재즈를 틀고 커피를 내리고 몰래 에그타르트를 하나씩 빼먹다 보면 삶의 채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살 빼야되는데 구우면 하나씩 맛보게 되는 마성

 나라는 사람이 이 작은 카페 안에서 또 새로운 역할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의 삶은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색깔과 다른 그림체일 것이다. 캐드 프로그램처럼 정교한 체제 안에서의 내 인생은 어딘가 불편한 모양의 삐죽하고 튀어나온 마감되지 않은 선이겠지만, 도화지 안에서라면 조금은 삐뚤고 그을린 선일지라도 내 삶도 조화로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대학가 모퉁이에 있는 이 작은 곳에서 혼자 일하다 보면 내가 이 가게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묘한 안정감이 든다.

채도 높은 맑은 하늘

 난 채도가 높은 것들을 사랑한다. 막 구워진 황금색 에그타르트를 사랑하고 구름 없이 쨍한 맑은 하늘을 사랑한다. 햇살에 비친 녹음들을 사랑하고 밤에조차 찬란한 봄꽃들을 사랑한다. 반면 채도가 낮은 것들은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태양이 구름에 가린 회색빛 거리라든지, 비 한 번 시원하게 쏟아내지 못하는 미적지근한 하늘, 해가 들지 않는 골목,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내가 과연 흐린 날도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올까? 미적지근한 나도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올까? 오븐에 넣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근사하게 구워지는 에그타르트처럼, 흐린 날에도 나라는 사람 자체로 채도 높은 빛을 내는 그런 날이 오기를 한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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