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난 썰
큰누나가 사는 해방촌 집에 놀러 갔다 왔다. 해방촌은 어디를 가든 남산이 보이고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카페투어도 할 겸 생각도 비울 겸 며칠 머물기로 했다. 작은누나와 함께 크로와상이 맛있다는 카페에서 크로와상과 뱅오쇼콜라 그리고 카푸치노를 시켰다. 우리가 들어오고 나서 옆 테이블엔 외국인 여성분과 아기가 들어와 앉았다. 누나는 아기가 이뻤는지 뚫어져라 보면서 계속 인사를 했다. 아기도 예쁘게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그러다 별안간 갑자기 아기는 울음을 터뜨렸고 아기 엄마는 칭얼대는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카페를 나갔다. 누나가 물었다. “내가 너무 쳐다봤나? 민폐였을까?” 처음에는 괜찮다고 대답하다가 몇 번을 계속 묻길래 말했다. “그렇게 신경쓰이면 쫓아나가서 아이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말을 해.“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겠는가. 이미 던져버린 공을 되돌릴 수는 없다. 볼이든 파울이든 스트라이크든 그 결과는 나의 손을 이미 떠났다. 엎질러진 물. 지나쳐버린 열차. 떠나간 사람. 수정할 수 없는 무대 위의 움직임들. 인생이란 그런 것이었다. 되돌릴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잔인하고도 당연한 순리. 그 당연한 순리 위에서 우리는 또 일희일비하곤 한다. 다행인 것은 오늘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실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곳 해방촌은 이탈리아에 갔을 때를 생각나게 한다. 모아둔 돈을 모두 써서 무작정 날아갔던 3개월의 이탈리아. 그곳에서 난 음악을 배웠고 여유를 배웠다.
처음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여유로움은 내겐 너무 낯설었다. 햇빛이 내리쬐던 3월, 머물던 피아첸차의 집과 거리 곳곳엔 햇살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거리의 카페들은 달콤하게 여유로웠다. 계획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하루. 혼자만의 시간과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 사실 처음엔 그것들이 날 너무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여유로움이 나의 것이 아니란 생각에 자꾸만 불안하고 아팠다. 그렇게 흐린 눈을 하며 생활하던 내게 유학생 누나 N이 말했다. 그 마음들에 너무 사로잡혀서 지금 이 선물 같은 시간을 놓치지 말라고.
실로 눈앞의 피아첸차 광장은 눈부시게 따뜻했다. 감사하게도 숙소도 유학생들이 지내는 집에서 값싸게 지낼 수 있었고 함께 지내는 친구들도 착하고 재밌었다. 젤라토와 파스타는 너무나 맛있었고 모아둔 돈은 점점 사라져 갔지만 유쾌했다. 매일매일이 파티와 축제 같았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햇살을 걷고 여행했다. 내 삶에서 그만한 3개월은 또 없을 것이다.
많이 회복된 채로 한국에 돌아온 나는 거침없이 삶을 항해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종종 또 멈춰 서곤 했다. 늘 불안한 파도 위를 항해하는 배 위의 작은 찻잔. 그것이 나의 그릇이었다. 찻잔이 흐를까 넘칠까 조마조마해하는 위태로운 인생. 참 멋도 없지. 사람들은 앞을 향해 걸어 나가는데 내 안의 작은 아이는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끝이 보이지 않은 거대한 바다 위에서 자꾸만 흔들리며 불안해한다. 담대해져라. 담대해지자. 이탈리아에서의 3개월이 내게 소리친다. 찻잔을 깨버리고 세상을 보자. 작은 찻잔 때문에 선물 같은 지금을 놓치지 마. 세상을 너의 눈에 담고 또 항해를 하자. 돛을 펴고 세상을 향해 또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