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도보 알바 후기
배민 알바를 시작했다. 물론 도보로. (면허 없음, 자전거도 없음) 어플을 켜고 배달 피크타임에 번화가를 걷다 보면 ai가 배달을 지정해 준다. 배달을 수락하면 지도가 안내해 주는 방향으로 포켓몬고를 하듯이 목적지를 향해 걸으면 된다. 지정받은 위치에서 배달음식을 픽업하고 지정받은 위치에 배달음식을 갖다 놓는다. 아주 간단명료하다. 배달이 잡히지 않을 때에도 그저 걸으면 된다. 배달이 잡힐 때까지 걷고 또 걷고 걸어간다.
요즘은 걷기에 날씨가 참 좋다. 봄이라 햇살도 따뜻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서 여름이나 겨울에 비해 걷기가 아주 수월하다. 햇살이 거리를 비추고 거리에는 예쁜 꽃들이 펴있다. 혼자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일하고 싶은 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 것 말고도 도보 배달 알바의 장점은, 걷다가 봄 거리에 핀 꽃들 특히 라일락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일락은 벚꽃과 달리 눈에 띄게 피지는 않지만, 길을 지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그 향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낸다. 라일락 향을 맡으면 난 신난 강아지처럼 코를 들이밀곤 한다.
그렇게 강아지처럼 산책하던 도중 내가 간과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나는 지금 산책하러 나온 게 아니라 일하러 나온 것이었단 점과 봄에는 내가 걷기에 좋은 만큼 사람들도 배달을 안 시키고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특히 도보로 배달할 정도의 가까운 거리의 배달은,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엔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잘 잡히지 않는다. 큰일이다. 점심시간 배달 피크타임에 한 시간을 넘게 번화가를 돌아다녔는데 배달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또 걷는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걷다가 쉬고 싶은 곳에서 쉰다. 쉴 곳도 내가 정해서 쉰다. 평소 가보지 않은 공간도 호기심에 가본다. 그러다가 결국 도저히 콜이 잡히지 않아서 카페에 들어와 쉬기도 한다. 소금빵과 분노의 커피를 들이켜다 보니 배달이 하나 지정된다. 목표지점이 생긴 나는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서둘러 나와서 또 걷는다. 신난 강아지처럼 또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겨우 잡힌 배달 한 건을 마치고 또 걷다가 결국 멈춰 서서 집으로 돌아온다. 어쩌다보니 졸지에 두 시간 동안 동네 산책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잠시 동안 다른 알바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불로소득을 꿈꾸는 나이 30세. 로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를 외치는 나이 30세. 멈춤은 잡념을 낳는다. 잡념은 tv 위에 쌓이는 먼지처럼 내 머리와 눈 위에 쌓인다. 머리는 지끈지끈하고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와 자꾸만 자고 싶다. 구름이 하늘을 덮듯이 잡념은 몸과 마음이 흐려지게 한다. 그래서 일어나서 다시 걷는다. 멈춤을 멈춘다. 집청소를 하고 설거지와 빨래를 해야지. 산다는 것이 배달처럼 눈앞에 목적지가 늘 주어지면 좋겠지만 그 생각도 내려놓고 또 걷는다. 걷는 것은 참 고되지만 심장이 뛰는 한 멈춰서는 안 된다.
무용 시간에 배웠다. 모든 동작은 멈춰있으면 안 된다. 정지 동작일 때에도 에너지든 힘이든 눈빛이든 무엇인가는 계속 멈추지 않고 흘러야 한다. 쉼 없이 흘러야 한다. 그러니 일어나서 걷고 계속해서 또 걷자. 멈추지 말고 흐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