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거미 소탕 작전
어젯밤 나의 작고 아늑한 옥탑방에 엄지손가락만 한 거미가 찾아왔다. 요즘 날씨가 좋아서 밤에도 잠깐씩 옥탑문을 열고 환기를 하는데 그때 들어왔나 보다. 집 안으로 들어온 나는 주방 쪽에 서있는 거미 씨(Mr.Spider)와 눈이 마주쳤고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에프킬라를 찾으러 갔다. 하지만 작년 여름 이후 벌레를 보지 못해서 에프킬라를 어디에 둔지 기억이 도무지 나질 않았다. 난 대체품으로 헤어스프레이를 들고 와 거미 씨에게 뿌려댔다. 하지만 거미 씨는 헤어스프레이 따위 초저녁의 가랑비라는 듯 날 비웃으며 농락했고, 나는 결국 죽지 않는 거미씨를 휴지 한 다발로 안아서 문밖으로 던져버렸다. 아무리 거미는 익충이라지만 그의 크기와 자태는 나의 정신에 유익할리 없었다. 애써 좋게 생각해 보려 애쓰며 백석 시인의 ‘수라’라는 시를 떠올렸다.
수라 -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내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후략)
거미 씨~ 옥탑으로 돌아오지 말고 밖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동물농장 말투)
작년 여름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몇 달 동안 방치되었던 이 집은 미친듯한 온도와 습도 덕분에 곰팡이와 벌레들의 스팟이 되어있었다. 벌레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나는 어디선가 나프탈렌이 방충작용을 한다는 말을 듣고 다이소에서 사탕크기로 포장된 나프탈렌 덩어리들을 사 왔다. 집에 오자마자 온 집안 곳곳에 나프탈렌을 박아두고 안심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는데, 나프탈렌의 엄청난 향 때문에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처음엔 벌레가 나오는 것보다 내 코를 희생하는 게 낫겠지 싶었다. 그렇지만 참을 수 없게 코를 찔러대는 나프탈렌향에 나는 ‘혹시 내가 해충...?’ 이란 잠깐의 의심과 함께 인터넷을 찾아보니 나프탈렌이 발암작용을 한다고 나와있었다. (아니 근데 왜 시중에서 발암물질을 판매하나.) 나는 눈물을 머금고 새벽에 잠도 못 자고 일어나 집안 곳곳에 박아둔 나프탈렌 덩어리들을 모두 회수했고, 그대로 싸그리 갖다 버렸다. 하지만 나프탈렌 냄새가 집에서 모두 빠지는 데에는 생각보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름엔 에어컨을 한 시간을 틀어야 시원해지고, 겨울엔 옥상바닥에 얼음이 얼고, 대낮엔 오토바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리고, 집 앞 가게에서는 술 취한 아저씨들이 매일 소리를 지르고, 요즘 다시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거미 씨 같은 손님들이 가끔 방문하지만, 난 이 옥탑방이 좋다. 서른이 다 돼서야 그토록 바라던 나만의 공간을 얻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가족들과 살던 그 집이 끔찍이도 싫었다. 엄마아빠가 좋아했던 나름 괜찮은 아파트에 해가 정말 잘 드는 남향의 집이었고, 방을 같이 쓰는 누나들과 달리 따로 내 방도 있었지만, 그 집은 날 너무나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내 방에서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당연히도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이란 공간이 나를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밤이 되면 내 방에는 홍수가 나서 자꾸만 물이 차오르듯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내 방을 가득 채웠다. 나는 내 방 안의 작은 침대에 표류하며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숨을 쉴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아온 나의 공간. 작고 아늑한 나의 옥탑방.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곳에서 옥상바닥의 얼음을 깨듯 절망을 깨고 습기와 먼지를 털듯 우울을 쓸어버려야지. 가끔씩 방문하는 무기력함도 거미 씨를 던지듯 문밖으로 몰아내버려야지. 매일 적는 오늘의 글처럼 희망을 써나가야지. 나의 작고 사랑스러운 옥탑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