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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 Jun 14. 2023

#1. 목요일은 만들기 시간인데?

유치원에서 대가리 빵꾸났던 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제법 멋스러운 유치원 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지금도 없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개인 텀블러(a.k.a 엄마가 싸준 얼린 물병)를 사용할 줄 알았으며, 목요일마다 있던 만들기 수업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학예회 때 엄정화의 'Festival‘을 센터에서 출 정도로 인싸였다.


 당시 유치원에서 제일 핫했던 것 중 하나는 하원 시간 직전에 다 같이 모여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TV에 가까운 앞자리에 앉을 수 있을지가 아이들의 화두였다. 하루는 패트와 매트를 상영해 주었는데 그날따라 자리싸움에서 진 나는 거의 맨 끝자리에 앉게 되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하원 시간이나 빨리 다가와라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하원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나는 패트고 나발이고 현관문으로 잽싸게 뛰어나갔다.

당시 그들의 인기는 지금의 뽀로로 못지 않았다.

 TV 앞자리는 뺏겼지만 유치원 버스 자리는 1등으로 차지하겠노라 마음먹은 나는 현관으로 맹돌진했다. 그때의 기상과 기개는 고구려인의 그것과 맞먹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만 앞만 보고 돌진하던 나는 옆쪽에서 달려오던 옆반 고구려인 후보생을 미처 보지 못했고 패트와 매트의 한 장면처럼 우리의 대가리는 사선방향으로 공중에서 상봉했다. 나는 추진력을 받아 그대로 날아가서 현관 앞에 있던 입간판에 머리를 아주 세게 박았다.

왼쪽이 매트, 오른쪽이 패트.

 고민이라고는 어떻게 하면 패트와 매트를 더 앞자리에서 볼 수 있을까 뿐이던 어린 시절, 고통이란 것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식할 새도 없이 나는 선생님들에 의해 유치원 앞 소아과 병원으로 옮겨졌고 엄마는 전화를 받고 놀라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오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를 몇 바늘 꿰매고 엄마를 끌어안자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엄마의 품에서 이 세상이 제법 안전하다고 느낄 때쯤, 엄마는 당분간 유치원 가지 말고 집에서 쉬자고 말했고 나는 울음을 그치며 말했다. “내일 목요일이라 만들기 시간인데?”

너넨 맨날 부딪혀도 멀쩡하더라?

 다행히 그 이후론 몸을 꿰맬 정도의 큰 상처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하지만 마음에는 자주 상처가 나곤 했다. 마음이란 것도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몇 바늘 꿰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상처 난 부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뿐.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끔 상처가 더 깊어질 때가 있다.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사람은 만나지 말걸.‘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자꾸만  상처 입힌다. 그렇게 기억의 바다에 침잠해 가다가 문득 유치원 시절에 당돌할 때가 있다. 그리고 제법 멋스러웠던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툭하고 튀어나온다.


 그래서 난 마음에 생채기가 날 때마다 종종 그때를 떠올린다. 머리에 반창고 하나 붙이고 유치원에 나와 목요일의 만들기 시간에 집중하던 그 아이를 떠올린다. 머리에 난 상처 따위 아무렇지 않은 듯 해맑게 웃던 그 아이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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