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 우리는 여전히 구조되지 않는다
문득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3년 전, 어느 신문 기자에게 보냈던 메일 한 통을 발견했다. 처음엔 단순한 정리였지만, 그 메일을 보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과거의 그날로 다시 끌려 들어갔다.
그 메일은 당시 구독 중이던 신문기사 속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가천대 길병원 엄중식 교수님의 인터뷰 기사에 반응하여 보냈던 것이었다. 교수님은 기사 말미에 이렇게 질문했다.
"재택치료자의 증상 악화뿐 아니라 집 안 내 안전사고, 응급질환 발생 등 각종 비상상황에 대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 문장을 본 순간, 나는 머뭇거림 없이 이렇게 답했다.
"대응할 수 없다고요." "정말로,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나와 딸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치료 중이었고, 아내는 자가키트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증상으로 보아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도 아마 걸렸을 거라고 우리는 짐작했고, 그러던 중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나 싶던 어느 날 저녁 8시경, 아내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었지만 코로나증상으로 기도가 붓고 좁아진 상태에서 가래가 기도에 협착되어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고, 그저 몇 분이면 도착할 줄 알았던 구급차는 구급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무려 40분 뒤에야 도착했다.
그 40분 동안 나는 아내가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력하게 숨을 유도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정말 아내를 잃는 줄로만 알았다. 그 기억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도착한 구급대에게 "지금 같은 상황이면... 그냥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냐"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너무도 냉정하고 무서웠다.
"병상이 없습니다. 코로나 양성이어야 검색이라도 할 수 있고, 그래도 뺑뺑이 돌다 겨우 받아주는 곳을 찾는 실정이에요. 응급이어도... 그냥 그렇게 응급차에서 사망하시는 분들이 지금 현실입니다."
그 말은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너무나 비현실적이며 공포스러웠다. 마치 이 나라가, 우리가 알던 국가의 역할을 다 내려놓은 듯한 무기력함. 길의 한복판에 발가벗겨 내던져진 것만 같았다.
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그날 이후로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아프지 마세요. 절대 위급한 상황 오게 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못 한 채 죽음을 지켜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이 나라에선 정말 그럴 수 있습니다."
구급대원과 콜센터 직원들의 무심한 말투, "기다리세요 거참~ 지금 알아보고 있잖아요~" 같은 반응은, 내 절박함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관심처럼 느껴졌고, 나를 더 분노하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확신하게 됐다.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채 울부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3년이 지난 오늘, 나는 그날을 떠올리며 다시 소름이 돋는다.
당시보다 지금이 과연 나아졌는가? 병상 인프라가 확충되었는가? 시스템이 개선되었는가?
아니다. 오히려 의료현장은 더욱 공백 상태다. 집단 진료 거부 사태, 필수과 의사 부족, 병상 수 축소, 응급 이송 시스템 붕괴... 모든 지표가 더 악화되었을 뿐이다.
지금도 뉴스에서는 여전히 구급차가 병원을 찾아 수 시간씩 헤매고, 응급실 앞에서 손도 못 써본 채 생을 마감하는 일이 반복된다.
싱가포르에서는 코로나가 다시 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시절의 악몽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상상이나 공포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다시금 나는 묻게 된다.
정말로 '각자도생'만이 정답인 세상인가?
국가의 시스템이 나를, 우리 가족을 보호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조심스레 던져본다.
"지금, 우리는 정말 안전한가?"
[이 글은 2022년 3월, 모 신문기자에게 보냈던 실제 메일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