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YOSHIKI'
https://www.youtube.com/watch?v=DjIMFmLOE_U
지난번 음악소개 글을 게시한 뒤 주변에서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은 한 번 더, 내 가슴속에 오래 간직해 온 음악을 꺼내어 소개해보려 한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로 활동했었다.
함께했던 친구들은 당시 해외 록과 메탈 음악에 꽤 해박했다.
질풍노도의 시기, 강렬한 일렉기타 리프와 심장을 울리는 드럼 비트에 빠져들기 딱 좋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에 더 관심이 많았다.
'팝'이나 '록' 음악은 잘 알지도 못했고, 굳이 찾아 들을 생각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밴드부 친구들은 자신들이 듣던 음악을 하나둘 들려주며 카세트테이프를 건네주기 시작했다.
<스키드 로우, 너바나,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스>
처음엔 그저 시끄럽게만 느껴지던 음악들이
어느 순간부터 내 귀에, 그리고 가슴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살,
수많은 그룹들의 음악을 접하던 중
유독 내 심장을 강하게 붙잡았던 밴드가 있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X JAPAN,
그들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내가 선택한 건 <Say Anything>이다.
X JAPAN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단순히 음악 때문만은 아니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메이크업,
중성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이미지,
화려한 의상과 무대 위 태도까지.
그들의 비주얼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록 밴드'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음악보다 먼저
"이 사람들은 대체 뭐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 존재였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 알게 됐다.
이 비주얼은 그저 인기와 관심 끌어보려는 과장이 아니라,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X JAPAN은 개성이 강한 멤버들이 모여 만들어진 밴드다.
YOSHIKI – 드럼 / 피아노, 리더
밴드의 거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한 중심인물.
폭발적인 드럼과 서정적인 피아노, 상반된 감정을 한 사람 안에 담고 있다.
TOSHI – 보컬
X JAPAN의 감정을 전달하는 목소리.
특히 발라드에서의 절제된 감정표현과 C6에 달하는 고음의 영역대는 밴드의 또 다른 얼굴을 만든다.
HIDE – 기타
사운드뿐 아니라 패션과 퍼포먼스까지,
X JAPAN의 아이콘이라 불릴 수밖에 없는 존재.
PATA – 기타
화려함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던 연주자.
TAIJI – 베이스 (초기 핵심 멤버)
공격적이고 존재감 강한 베이스로 밴드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이름부터 '서태지'의 롤모델이란 소문이..)
〈Say Anything〉은
헤비메탈 밴드 X JAPAN이 보여줄 수 있는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는 록 발라드다.
이 곡에서 '요시키'는 드럼 스틱을 내려놓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리고 그 위에 얹히는 것은
'토시'의, 감정을 끝까지 눌러 담은 목소리다.
이 노래는 사랑의 시작을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균열이 생긴 관계,
상대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진심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의 독백에 가깝다.
"Say anything"이라는 반복되는 문장은
무엇이든 좋으니 말해달라는 요청이자,
침묵 속에서 멀어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는 고백이다.
진실이 아프더라도,
아무 말 없이 끝나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는 마음.
가사는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불안, 상처, 서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관계를 완전히 놓지 못한다.
그래서 이 곡에서 '사랑'은
행복한 감정이 아니라
버티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처럼 그려진다.
후반으로 갈수록 감정은 고조되지만,
끝내 폭발하지 않는다.
울부짖는 대신 절제된 목소리로 남아 있는 이 노래는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같은 X JAPAN의 명곡 발라드인 <Endless Rain>과 비교하면
<Say Anything>의 성격은 더욱 분명해진다.
<Endless Rain>이
슬픔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노래라면,
<Say Anything>은
그 슬픔을 안쪽으로 꾹 눌러 담은 노래다.
전자가 감정을 따라 울게 만드는 곡이라면,
후자는 울음을 참고 난 뒤에
더 오래 남는 노래에 가깝다.
X JAPAN을 이야기하면서
'HIDE'를 빼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1998년, 그의 죽음은
단순히 한 밴드 멤버의 사망 소식이 아니었다.
그 소식은 일본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겼고,
수많은 팬들이 거리로 나와 애도를 표했다.
그의 존재가 음악을 넘어
하나의 문화이자 시대였다는 사실이
그 순간 분명해졌다.
X JAPAN의 발라드는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항상 '상처'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다시 들을수록
더 깊게 파고든다.
18살의 나에게는 막연한 떨림과 설렘이었고,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정확한 기억이 되어 돌아온다.
비주얼에 충격받고,
사운드에 압도당하고,
시간이 지나 가사에 동기화되는 음악.
어떤 음악은,
설명보다 그 시절의 장면으로 남는다.
18살의 나에게 <Say Anything>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