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언제나 네 뒤에서 걸을꺼야"
드디어 붙었다.
쉰의 나이에, 수차례의 낙방 끝에.
20대 시절 이미 여러 번 도전했다가 끝내 이루지 못했던 공직의 꿈.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그 문을 통과했다.
대한민국 공무원. 그 쉽지 않은 길의 끝에 내가 서 있었다.
스스로가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이 시간을 위해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나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세상과의 소통 창구였던 글쓰기마저도
한동안 멀리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의연한 척했지만 목표를 천명했던 주변에 나를 증명해내야 했기에
그 안에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결과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누구의 도움도 아닌, 맨땅에 헤딩하듯 오롯이 혼자 버텨내며 만들어낸 결과였기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껏 자랑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서는
"그 나이에 공무원이라니..." 하시며
어안이 벙벙한 듯하셨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장 자랑하고 싶었던 대상은 따로 있었다.
내 딸.
이 나이에도 아빠는 여전히 도전하고 있었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것.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날 저녁, 가족이 함께한 식탁에서 딸은 문득, 한 번도 꺼낸 적 없던 말을 했다.
"나, Y대학 의대 갈 거야."
잠시, 식탁 위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딸. 목표는 크게 가져야지. 할 수 있지."
그날 밤, 아내와 나는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 내가 괜한 부담을 준 건 아닐까.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안긴 건 아닐까.
다음 날, 나는 딸과 함께 동네의 작은 산에 올랐다.
작은 산이었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은 산행이었다.
딸은 나보다 한참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꼬맹아, 아빠랑 같이 좀 가자~"
내 말에 잠시 뒤돌아보던 아이는 이내 다시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서서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제, 아빠의 조금은 과했던 자랑을 아이 마음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괜히 미안해졌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아이에게 짐을 하나 더 얹어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율아,
부담 갖지 말고,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그저 지금처럼만 살아가면 된다.
무엇보다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아빠는 그것으로 충분하단다.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산길을 올랐다.
이 작은 산도 이렇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네가 걷고 있는 이 길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험한 인생의 여정이
앞으로 너의 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과 예고 없이 찾아오는 내리막 사이에서 너는 몇 번이고 숨이 차고,
때로는 멈춰 서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혹여 네가 지치고, 넘어질 것 같은 순간이 오더라도 아빠는 늘 너의 뒤에서 함께 걸을 테니까.
보이지 않아도, 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길 위에 서 있을 테니까.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함과 함께 어딘가 짠한 마음이 밀려왔다.
네가 지금 오르고 있는 길이 힘들고 지칠지라도, 아빠는 늘 너의 뒤에서 함께 걸을 거다.
언제나 네 편이 되어주고, 네 힘이 되어줄 거다.
그러니 믿고, 네가 가고 싶은 그 정상까지 묵묵히 걸어가렴.
그날,
내 마음속에는 조용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