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빛의 바다』 - 인간의 존재론적 사유, 나선형 구조
이전에 많은 우주론적 사유에 대해,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는지 우주의 모습을 상상해 봤습니다. 늘 재차 강조하지만 이 모든 글들은 과학적, 철학적, 종교적 언어를 빌려 정리하는 저의 개인적 사유의 글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 없고, 증명할 수 없는 구조의 경계에서 이야기드립니다. 그저 증명할 수 없는 과학적 가설이나 상상, 또는 한 철학적 사유로 받아들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래서 이 광활한 알 수 없는 우주에서 우리 인간은 왜 태어났고,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 인간의 존재론적 사유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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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적 사유의 경계에 대하여, 인간의 존재론에 대해서
우주는 열려 있는가, 닫혀 있는가라는 질문은 아주 오래된 질문입니다. 아마 인류가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계속되어 온 물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질문에는 언제나 하나의 전제가 따라붙습니다. 바로, 관측자가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질문을 조금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우주는 열려 있는가, 닫혀 있는가”가 아니라, “우주는 어떤 구조이기에 생명과 사유가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말입니다.
제가 상상해 보는 우주는, 완전히 열린 하나의 공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고립된 닫힌 상자도 아닙니다.
한 우주는 자기 자신에게는 하나의 완결된 닫힌 세계이지만, 동시에 더 상위의 층위에서는 하나의 요소로 포함됩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상위 우주 역시 자기 층위에서는 다시 닫힌 세계로 존재합니다. 이 구조는 끝없이 열려 있는 무한이라기보다는, 계층적으로 완결된 세계들이 이어진 연쇄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구조가 직선도 원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이 연결이 나선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직선적인 구조는 끝을 요구하고, 원형 구조는 완전한 반복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나선형은 반복되면서도
결코 같은 위치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각 층위의 우주는 닫혀 있지만, 그 안의 패턴은 다른 해상도와 다른 시간 척도 즉 공간의 연쇄적 상호작용으로 변환되며 상위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복제라기보다는, 변환에 가깝습니다.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과 생명, 그리고 변화는 우주 자체의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비가역적 흐름이며,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이 시간 속에서 인간과 생명체는 지금 여기서 선택하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굽이치는 파동에너지가 일관된 방향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은하의 방향이 다르고 우주의 복잡성이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각도는 다르지만 반시계 방향으로 꼬여있는 나선형 구조 라는 것이 저의 직관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그 축이 뒤집히거나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굽이치는 파도의 파동은 어딘가에서는 완전히 엉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아마 입자는 없고 에너지로만 가득 차 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엔트로피는 아주 흥미로운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국소적으로 보면 엔트로피는 분명히 증가합니다. 생명은 언젠가 소멸하고, 별은 늙으며, 질서는 서서히 무너집니다. 하지만 상위의 층위에서 바라보면, 그 증가는 단순한 붕괴가 아니라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로 흡수됩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엔트로피는 어딘가로 향하는 종착점이기보다는, 형태를 유지하며 흐르는 과정처럼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엔트로피의 감소나 회전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합니다. 우리는 너무 짧은 시간을 살고 있고,
너무 작은 스케일에 묶여 있으며, 우주적 변화에 비해 지나치게 빠른 내부 시간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소적인 기준계가 함께 움직일 때, 그 안에 있는 관측자는 자신이 정지해 있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착시가 아니라, 상대성의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주 전체의 회전축이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변화는 우리에게 감지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에서는 우주가 거의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고, 우주의 기준에서는 우리가 순간적으로 깜빡였다 사라지는 존재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우주의 스케일에서 보면, 태양계나 우리 은하의 스케일은 양자의 스케일 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아주 작고 전체 우주에 치명적인 상호작용은 일으키지 못하지만, 아무 무관하지도 않은 그런 작은 상대론적 존재라고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중요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모든 생각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가설로 묶을 수도 없고, 이론으로 검증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것을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이것을 과학적 사유의 경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과학은 반복 가능성과 검증 가능성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주는 단 하나뿐이며, 우리는 그 내부에 존재합니다. 부분의 언어로 전체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인간 중심적인 기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런 구조를 상상해 보는 걸까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만약 세계가 완전히 열려 있고, 모든 것이 결국 설명 가능하다면, 질문은 언젠가 사라지고 의미는 고갈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세계가 완전히 닫혀 있다면, 가능성도, 변화도, 진화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완전히 알 수 없어야 하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어도 안 되는 상태가 필요합니다.
이 조건은 물리적인 골디락스 존을 넘어, 인지적인 골디락스 존을 요구합니다. 너무 많이 알면 허무에 빠지고, 너무 적게 알면 공포에 잠식됩니다. 적당히 알 수 없을 때, 생명은 질문하고, 상상하고, 창조하며 살아갑니다. 나선형으로 연결된 닫힌 우주들의 구조는 바로 이 상태를 가능하게 합니다. 각 층위는 완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상위로 열려 있기 때문에 희망을 완전히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유의 지도 이 구조 안에서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전체 나선의 형태는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각 층위에서의 국소적인 회전은 분명히 실재합니다. 우리는 전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의 선택은 실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우주는 어쩌면
답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끝나지 않도록 구성된 구조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 생각은 과학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학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도달할 수 없는 사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지점에서 멈추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확신 대신 경계를 택하고, 설명 대신 구조를 남기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 “알 수 없음”이야말로 생명이 희망을 잃지 않고, 미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정교한 골디락스 존의 조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우주와 양자, 그리고 DNA 구조를 연결해 보는 상상
저는 우주의 형성의 기본값을, 블랙홀과 중성자별, 그리고 양자적으로는 양자와 중성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모든 만물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파동에너지를 입자로 뭉치게 만드는, 먼지구름이라 칭하는 모든 물질을 만드는 기본 구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의 확장은 지구에 사는 생명체, 그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 진화를 이룬 인류에게도 적용시켜 보려 합니다. 단세포 생명체는 성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많은 고등생명체는 성별을 가지고 있지요. XY와 XX의 염기체 서열은 성별을 뜻합니다. 이것을 저는 블랙홀과 중성자, 양자와 중성자 즉 세상은 +와 -의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와 -가 만나서 생명체 안에서 성별을 만든다고 상상해 봤습니다. XY와 XX는 있어도 YY는 없습니다. 아마 YY가 중성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세포 생명체는 성별이 없지요. 즉 저는 양성을 모두 가진 중성생명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성이었을 경우 자신의 세포를 쪼개서 번식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직접 몸을 분리시켜야 하죠. 인간이 이런 형식으로 발전했다면, 살과 뼈가 찢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겠지요. 그래서 중성은 자연적으로 고생명체로 가면서 탈락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복제를 해야 하는데 그 세포의 수와 연결되어 있는 복합체가 너무 복잡해서 똑같이 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별을 만들어 남성, 여성의 형태로 귀결되면서 생명체를 몸속에서 다시 재 결합 하는 방법으로 번식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알을 낳건 아기를 낳건 모든 생명체가 몸속에서 결국 자기 세포를 복제시키고, 성별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번식하지 못하고 관계에 의한 상호작용으로 종을 보존시킨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떠한 종도 혼자서는 살아남기 힘들죠. 그래서 성별을 나누어 각자의 시기와 역할이 나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점은 지구의 모든 DNA는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인간에게만 특별한 생각을 할 수 있는 DNA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기존 생명체들의 비해 인간이 가장 고등하다는, 즉 진화의 가장 마지막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 하겠지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후로도 엄청난 시간이 지났지만 인간의 신체는 그다지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술과 도구, 문명의 발달로 생명적 진화를 대체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DNA의 구조입니다. DNA의 구조는 나선형으로 꼬여있으며 이것은 모든 생명체가 같은 방향의 꼬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DNA조차 이중 나선형으로 꼬여있다면, 태양계도 나선형의 구조로 움직인다면, 이는 필히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 나선꼬임의 반시계 방향의 한 방향은 엔트로피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았어요. 그 꼬임자체 나선형의 방향이 파동의 에너지 형태를 입자로 만드는 법칙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분명 엔트로피 방향으로 나선형으로 720도로 꼬여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에너지를 가두게 되었고 질량을 생기게 했고, 양자로 입자로 그리고 만물로 변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 회전이나 나선형 꼬임이 왜 생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아마도 우주의 법칙이 아닌가 하는 상상 말이죠.
제가 720도 회전과 나선형 뫼비우스적 꼬임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회전과 꼬임은 파동에너지를 프렉탈 구조로 만들기에 아주 적합하죠. 비슷한 흐름의 비슷한 꼬임이 지속적으로 생긴다면 그게 프렉탈 구조를 만드는 기본요소가 되기 충분할 테니까요. 다만 우주적으로 봤을 때는 이리치고 저리치는 파도처럼 그 파동의 방향이 이리저리 몰아쳤기 때문에 은하의 방향이 다 각기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각도만 다르지 방향은 일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몰아치는 파도끼리 만났다면 부서져 사라졌거나, 같은 힘이었다면 바로 파도는 잠잠해졌을 테니까요. 우주에 정지되어 있는 행성이나 은하를 본다면 아마도 같은 힘으로 안과 밖이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언제 끊어질지 모르게 팽팽한 힘의 작용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아주 재밌는 사고실험적 상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파동의 빛의 바다에서 생긴 우리는 빛의 에너지 가둠 현상으로 인해 생긴 물방울이다. 그 물방울은 또다시 물방울 안에서 에너지가 요동치며 회오리 치면서 또 다른 우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물방울이 먼저였는지 파도가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는 구조가 우주이다.라고 생각하면 꽤 매력적이고 재밌었습니다. 그 물방울은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아주 찰나에 불과 하지만 우리는 우주의 크기에서 양자만큼 작은 존재라면 우주의 그 찰나가 아주아주 길게 느껴지겠지요. 우주의 빛의 바닷속 물방울인 우리는 자연적으로 필연의 요동에서 피어난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인 것은 확실합니다. 세상에 모든 모순을 가슴에 품고 엔트로피의 풍파를 온몸으로 견뎌내는 존재임은 분명하니까요. 그렇기에 적어도 제가 이렇게 질문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우주의 법칙이 만들어낸 생명체가 다시 호기심 어리게 우주를 들여다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나라는 존재는 무엇이고, 우주에서 왜 가장 고등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존재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 사유는 진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우리가 만들어낸 많은 감정과 생각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재미있는 제 사고실험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다음화 "물질은 반드시 필요한 상호과정의 존재"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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