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바다 - 모든 물질의 필수 불가결한 상호작용, 그리고 사랑
본 글은 개인적 사유와 해석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학, 철학, 종교의 언어를 빌려 표현하지만 사실이나 절대적 진리와는 무관합니다. 그저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정리하는 글입니다.
본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화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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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은하와 우주와 양자, 그리고 인간의 DNA까지 빛의 바다에서 지금 우리는 나선형 뫼비우스 형태의 파도에 올라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연속적인 공간의 상호작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누구라도, 풀 한 포기라도, 바람 한 줌에 사라질 안개도 모든 사건은 연속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발현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각자의 삶은 그래서 허무하지 않고 너무나 소중한 우주적 연결에 한 흐름입니다. 우리가 태어났고 존재했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관계를 맺고 연속적인 상호작용을 했다는 것. 그 자체가 우주에서 모든 물질이, 그리고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우주적 양자가 되어 어떤 한 흐름에 함께 끊어지지 않고 상호작용했다는 것은 결코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내가 양자의 파동에너지에서 입자로 가둬져 복잡계에서 연결되며 인간으로 살아갔다는 것. 그리고 살다가 죽어서 다시 양자의 파동에너지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허무하지 않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과 결과는 같은지 모르지만, 그 삶의 과정을 품고 다시 양자의 파동에너지로 돌아가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720도 입자의 스핀과 같은 원리입니다. 0과 무한대는 등가로 표현되는 것과 같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아예 없었던 것과 내가 살아갔고 존재했으며 상호작용을 했고 다시 존재가 흩어지는 것은 우주적으로 결과는 같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정보가 없었던 것과 많은 정보를 품었다 사라지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것은 즉 존재의 정보는 0이 아니라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나의 작은 존재가 우주에서는 영향력이 미비할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있었음에 우주는 작은 양자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반드시 말이죠.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허리케인을 부를 수 있다는 원리와 같습니다.
부처가 모든 것을 해탈하고, 열반에 올라 다시 공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허무의 언어가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모순을 겪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선을 정의하려면 악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모순이 인생에서 한꺼번에 발현되지요. 오직 고차원적으로 진화된 인간만이 모순을 이해하고 그 모순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삶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순을 이해하는 존재라는 것은 굉장히 고차원적 존재라는 것을 뜻하니까요. 고도의 지능인 인공지능조차 모순을 이해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처럼 삶이라는 연속적인 관계의 상호작용이 없는 인공지능이 모순을 이해하고 그 모순을 잘 정제해서 살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모든 것을 효율로 정리하면 그만일 겁니다. 하지만 진짜 인간의 물리적 삶은 모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어느 쪽으로 얼마나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내고 모순을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삶을 직접 살아가는 참여자로서 그 책임을 떠안고 살아갑니다. 그 책임은 다음 세대로 연결되는 상호적 관계를 갖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풀 한 포기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지요. 자연적으로 그 풀 한 포기도 우주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그 모순 속에서 너무 과한 몰입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죠. 탐욕과 이기심에 눈이 먼 자는 반드시 그릇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탐욕과 이기도 필요하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모순 속에서 적절히 절제를 하며, 각자만의 가치관의 중도를 지켜야 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불필요한 존재는 없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지난날 과거의 연속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이자, 또다시 새로운 세대의 연결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어떤 존재라도 우주적으로 볼 때 지나가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우연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필연적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삶에서 그 어떤 사건과 경험은 불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시련을 주었던 환경과 경험들도 모두 나를 바로 세우고 만드는 경험에 과정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 어떠한 것도 불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더 소중하고,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결합해 나를 만드는 과정이지요. 이 모든 과정이 합쳐져 결국 죽음에 이를 때 나라는 존재를 완성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이 모든 모순과 과정을 깨닫기에 삶이 너무나도 짧다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삶을 감사해하며 그 삶을 깊게 생각하고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사유할 시간이 너무 짧지요. 심지어 인류는 대부분 먹고 살아가는 생존의 문제에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습니다. 매 순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바쁘고 그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깊은 생각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삶이 고단하고 고통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돼요. 한 번에 그 고통을 지우고 싶은 생각에 구원이라는 개념도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해 편안해지고 싶다는 마음은 늘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죠. 우리는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어요. 시간은 사건의 연쇄적인 상호작용은 가만히 있을 때도 늘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이라는 파도에서 멈춰서 생각해 볼 시간이 많지 않았을 뿐입니다. 물이 흘러야 생명력을 유지하듯이 우리도 늘 바삐 흘러가기에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한 순간적 구원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삶을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하과 실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변화하고 스스로의 삶을 구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종교가 믿으면, 혹은 사랑하면 또는 교리를 깨달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결과를 말함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와 과정을 말하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지요. 종교에서 신의 존재는 늘 내 마음속에 있기 마련입니다. 신은 어디에나 있으며, 그중에서도 내 마음속에 가장 깊이 자리 잡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겠지요.
잠깐이라도 멈추고 밤하늘을 바라본다면, 그 생각의 시간을 잠시라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는 무엇일까. 우주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존재하고, 왜 의미를 만들어 낼까.라고 말이죠. 저는 그것을 생각해 보았고 이렇게 글로 정리해 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이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의 존재를 정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정의를 올바르게 하고 삶을 소중히 여기며 더 잘 살아내기 위함이었죠. 시간은 공간의 연속된 상호작용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과거도 미래도 제 생각 속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몸으로 체험하고 살아가는 순간은 지금 밖에 없습니다. 매 순간 우리는 지금만 살아가고 있지요. 이 지금이 너무나 소중한 이유입니다. 지금 내가 맺는 모든 관계와 상호작용이 미래의 우주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고, 더 작게는 나의 인생을 만들고 있습니다. 숨이 차도록 멈출 수 없는 연속적인 관계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단 한순간도 허투루 살 수 없게 합니다. 우주는 인간에게 그런 복합적이고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찰나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순식간의 모든 순간의 선택이 바로 나를 만듭니다. 나를 관계한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아무리 작더라도 생태계에 영향을 주며, 거시적으로는 지구의 궤도와 태양계 그리고 은하의 방향에 영향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아무리 미비하더라도 말이죠.
삶은 우주적인 책임감을 가지게 합니다. 나의 존재는 내가 무슨 일을 하냐에 따라 나의 인생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나를 주변으로 감싸는 모든 물질과 상호작용을 말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무심결에 한 행동과 말이 얼마나 우주적 큰 책임감을 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차원적인 생명체로써 고차원적인 책임을 안고 살아갑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아름다움과 경의로움도 느낄 수 있지만 그만큼 큰 책임감 안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사랑의 방향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그저 남녀, 가족 안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는 세상의 책임감 즉 엔트로피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고차원적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잠시나마 그 엔트로피를 잊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을 말합니다. 고차원적 존재에게만 허락되는 네겐트로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많이 고달프고 고통스러우면서 동시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갑니다. 0부터 무한대의 에너지를 모두 느끼고 받아들이며 살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행동에 반영하는 존재는 인간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이 마냥 악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냥 이기적일 수 없고 마냥 탐욕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기적인 사람조차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탐욕스러워진 사람은 과시할 다른 누군가가 없다면 탐욕에 눈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함께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감정과 상황과 사건 모순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나 혼자이고 상호작용할 관계가 없다면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의 모든 행위는 사실 사랑받고 싶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허무의 바다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찾고 있고, 채울 수 없는 어떠한 결핍에 헤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모르는 이 가 그 사랑을 알고 채우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그렇기 때문에 태어난 어린아이에게 애착을 형성하며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알게 해줘야 합니다. 어린 생명체들이 소중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지요. 자신에게 베푼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학습합니다. 아주 어린아이의 세상은 온통 가족뿐입니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 차있죠. 어릴 때는 부모보다 아이가 부모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세상은 세상밖으로 열려 있지만 아이는 부모가 전부이기 때문이죠. 이것은 인간이 가장나약하게 태어나는 이유라고도 생각합니다. 이상하리 만치 가장 똑똑하고 고차원적인 생명체인 인간은 태어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체에 대한 식별도 먹고 자는 것도 할 줄 모르죠. 어린아이가 우는 이유는 잠을 드는 방법도 먹고 삼키는 것도 잘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태어나기만 하죠. 하지만 정확하게 아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으로 돌봐주는 존재는 바로 알아보죠. 그 존재가 없다면 자신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왜 이러한 방식으로 진화하게 되었을까요? 너무 똑똑해서 너무 이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더 있다가는 엄마 뱃속을 탐닉할 만큼 똑똑하니까요. 그럼 엄마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완전히 모르는 상태로 태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포유류는 태어나자마자 걷기라도 하고 사물을 구분하게 태어납니다. 하지만 인간만이 그렇지 못하고, 보호해 주는 보호자가 없으면 절대 생존할 수 없는 구조를 띕니다. 가장 진화한 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사랑, 즉 애착으로 형성된 돌봄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사랑을 태어날 때부터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하는 듯하죠. 다시 인간의 어른은 사랑으로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사랑을 가르쳐야 하는 운명적 관계가 연속되죠. 우리는 사랑을 몰라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혼자서도 괜찮다고요. 하지만 전혀 아닙니다. 사랑을 위한 사랑에 의한 고차원적인 동물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모르는 인간은 인간관계에 질서를 무너트립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고차원적 윤리적 질서를 지켜야만 인간관계가 유지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고차원적인 질서입니다.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엔트로피(무질서)를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생존에 꼭 필요한 에너지입니다.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와 사랑은 이토록 중요합니다. 잠시 마음에 스쳐가는 그런 감정이 아닙니다. 무질서로 가는 우주 속에서 질서 있게 살아가게 해주는 가장 고차원적 에너지입니다. 사랑을 아는 이는 기게스의 반지를 꼈을때 조차 사랑의 방향으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아무도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양심으로 사랑을 저버리는 선택을 결코 하지 못합니다.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결코 행동할 수 없겠지요. 그것도 아니라면 또 다른 사랑을 위한 선택을 할 뿐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사랑을 하도록 진화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높은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필연적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그리고 이 우주 속에 질서가 무엇인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이란 생존의 고통 속에서 사랑으로 발현되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복잡계의 가장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복합적 구조를 가진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겪는 이 모순의 삶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며 우주의 연속된 상호관계를 어떻게 완성시킬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방향으로 늘 선택을 한다는 것. 선의 방향으로 삶을 조금이라도 이끌 수 있는 것. 그것만이 무질서한 세상을 바로잡고 질서 정연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구에서 고차원적 진화의 최종 산물인 인간이 나아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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