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카스테라

누구나 눈물 젖은 카스테라를 품고 산다.

by 양양이

우리나라 최고의 개그맨 MC, 신동엽의 유튜버 채널 "짠한 형"에 가수 비비가 게스트로 나온 편을 보게 되었다. 우연히 보게 된 짧은 에피소드에서 강한 울림이 있었다. 간략하게 그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신동엽은 어려서 5,6살쯤에 유치원에 너무 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집안 형편상 어머니는 그를 유치원에 보낼 수 없었고, 울며 떼쓰는 아이에게 엄마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우유와 카스테라를 사주셨다는 이야기였다. 신동엽은 어린 그때도 이렇게 계속 울고 떼를 쓴다고 해도 유치원에 갈 수 없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주는 눈앞에 우유와 카스테라를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계속 울었다면, 어차피 유치원도 못 가고 카스테라도 못 먹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바꿀 수 없는 현실에서 그저 좌절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금 내 손에 들려진 카스테라라도 먹겠다는 마음. 오늘의 최선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비비가 공황장애를 겪고 너무 삶이 힘들었을때 왜 자신은 늘 떼만 쓰고 그 카스테라도 못 먹었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 신동엽의 카스테라를 생각하며 공황장애를 이겨냈다고 했다.


나에게도 어릴적 그 카스테라가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언니는 6학년이었고, 4학년때부터 줄곧 걸스카우트를 하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나도 4학년이 되면 할 수 있겠지 라는 기대에 늘 벅차있었는데, 집안 사정상 두 명 다 동시에 시켜줄 수는 없었다. 나는 언니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5학년이 되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4학년 그때는 걸스카우트를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목이 메어서, 눈물을 삼키며 밥을 꾸역꾸역 먹었던 적이 있다. 더 이상 엄마에게 떼를 쓸 수는 없었다. 일부러 시켜주지 않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를 내지 않고 밥을 먹으려 했지만 그게 잘 안됐다. 밥을 먹으면서도 눈물이 뚝뚝 흘렀다. 다행히도 엄마 아빠는 5학년이 되자, 미안하셨는지 걸스카우트 장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세트로 사주셨다. 언니에게는 사주지 않았던 꼭 필요하지 않은 장비까지 다 사주셨다. 그때 산 빛바랜 걸스카우트 침낭이 아직도 우리 집에 있다. 정말 없는 살림이었는데, 참 많이 노력해 주신걸 알아 감사했다.


가끔 살아가다 보면, 절실하게 원해도 갖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이 세상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공평하지 않다. 그건 태어났을 때부터 출발선이 다르기도 하고, 각자 가진 재능과 가치의 차이, 노력의 여부가 다르다. 행여나 그런 것들이 같다 해도 상황과 현실은 언제나 공평하지만은 않다.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황들. 내 상황과 환경은 나 스스로 컨트롤할 수가 없다.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에 원망의 목소리를 높이게 되면 인생은 처참히 불행해진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것들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자기 객관화 같은 것들. 내가 지금 놓여있는 위치나 상황 판단이 빨랐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쉽게 놓으면서 살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랑 친했던 친구는 나와 매번 달랐다. 항상 위를 바라보는 친구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곳을 언제나 꿈꿨다. 그러면서 늘 망연자실을 반복했다. 자기가 가진 것에는 만족을 할 줄 몰랐다. 우리는 그 친구에게 조금 더 현실적으로 살라고 말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내가 어느 위치에 가나 있기 때문에 그 높은 곳만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늘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 친구와 완전히 반대되는 케이스였지만 가진것에 만족하지 못하다는 것은 똑같았다. 나는 인생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만의 미션 깨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쉬운 것들을 골라서 했고, 작은 것부터 시작했더니 내가 현재 이뤄내고 가진 것들을 하찮게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의미로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내가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평범한 회사에 다녔고, 그래서 스스로 이룬 것에 자신이 없었다. 늘 금방 이루는 일들이었고, 그것에 금세 실증을 느꼈다. 그런 것들은 정말 별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내가 이룬 것들에 대해 쉽게 말하고 다니곤 했다. 그런 것들을 말하지 않고서는 정말 하찮은 나를 아무도 몰라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겸손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겸손할 만큼의 뭐가 없는 사람인데 나도 할 수 있으면 너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의아했다. 하지만 이것도 나의 착각이었다.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나에게 하찮다 생각되어도 다른 사람이 열렬히 원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 스스로 하찮다고 생각한 것으로부터가 오류였다.


살면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거의 없다. 내가 노력으로 가질 수 없는 상황들 현실들에서는 놓아 줄줄 알아야 한다.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볼 필요도 없고, 또 나처럼 내가 가진 것을 하찮다 여길 필요도 없다. 결국에는 자신이 가진 각자만의 카스테라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지금 내가 가지고 이룬 것에 대해 만족을 알아야 그 속에 평안함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무심코 살아간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렇게 갈망하던 내일" 이었다는 말이.

행복하지 못한 오늘을 살고 있다면 스스로 되물어 보자.


당신은 당신의 카스테라에 만족하는가.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쥐고 있는 이 하찮은 카스테라가 어쩌면 다른 이가 열렬히 원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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