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우울이 왔을 때, 빨리 떨쳐버리는 방법.
어제부터 우울감이 슬슬 몰아 쳤다. 잘 지내다가도 종종 급격히 우울해 지곤 하는데, 오늘이 그랬다. 어제는 잠을 또 14시간이나 잤다. 나도 알고 있다. 잠을 기절하듯이 많이 잔다는 것은 내가 깨어있고 싶지 않을 만큼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까 했지만, 이내 아니야 나 스스로도 나를 구할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난 나를 믿어.
오늘 아침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별일 없이 SNS를 보고 있다가, 상처를 극복하는 법이라든지, 인간관계의 어려움 이라는지 이런 종류에 영상이 나왔다. 내가 굳이 찾아본 것도 아니었는데 줄줄이 그런 내용들 뿐이었다. 그걸 보고 급격히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지난날 나의 과거 상처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1년 전 나는 결혼을 앞두고, 남자친구와 같이 사업을 하면서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파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잦은 싸움과 좀처럼 나아지지 않던 사이는 결국 파국이 났다. 그 마지막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린 같이 식당을 차려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조금도 더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떠러지 앞에 서있었다. 그가 벼랑 밑으로 나를 몰고 가고 있었다. 한계에 다다랐다. 이 사람과 한순간이라도 같이 있다가는 내가 죽겠구나 싶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 돌아갈 거야. 너랑은 단 한순간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
나의 마지막 절규였다. 살고자 하는 외침이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나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마치 야반도주하는 사람처럼. 이 사람이 집으로 돌아와 나를 만류할까 두려워 나는 정말 미친 듯이 짐을 쌌다. 당장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 1초도 지체하면 안 된다는 불안과 공포가 함께 했다. 그는 더 이상 내편이 아니었다.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 조금도 나를 나 자신으로 살게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체국으로 가서 이사 박스를 사고, 미친 듯이 계속 짐을 싸서 화물 트럭을 불러 떠났다. 이런 불안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냥 태연한 척하고 "잘 지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가구고 남겨진 짐이고 집이고 가게고 뭐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고 그 길로 바로 원래 우리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연결돼 있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1년이나 걸렸다. 괴로웠다.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극심한 스트레스가 확 올라왔다. 마음이 서서히 깊은 우물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울컥 무언가가 올라왔다. 나는 얼른 프리다이빙 강사님께 배운 호흡법을 떠올렸다.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기 위한 호흡법이었는데,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만드는 복식호흡이었다. 프리다이빙은 물속에서 하는 요가라고도 하셨다. 나는 얼른 숨을 깊이 마시고 내쉬었다. 여러 번 반복을 했다. 괜찮아. 다 지난 일이야.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이대로는 집에 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따뜻 물로 얼른 샤워를 했다. 이런 부정적이고 우울한 기분을 얼른 날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우울감은 사그라 지지 않았다.
샤워하면서 "지랄하지 마!!!!!!"라고 허공에 대고 외쳤다. 예전에 가수 비비가 안 좋은 생각이 들면 "꺼져라!" 하고 외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나도 같이 따라 했다 "지랄하지 마!! 꺼져 나쁜 생각!" 정말 신기하게 우울감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그리곤 지금 당장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될 만한 책 두권, 류시화의 시집과 석가모니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집어 들고는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혼자 우울에 잠식되기 싫었다. 밖은 이제 제법 시원해졌다. 구름이 뭉게뭉게 하늘이 파랗게 빛났다. 다행이야 날씨가 좋구나.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만약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이러고 있는 걸 봤다면 나는 어땠을까. 이런 우울에 잠식되어 있는 소중한 사람을 내가 옆에서 지켜봤다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 바로 일으켜 세워 집밖으로 데려가거나, 맛있는 걸 먹이거나, 좋은 풍경이 있는 어디라도 데려갔을 것이다. 위로가 되는 말도 잔뜩 해주고 따뜻하게 안아 주었을 것이다. 내 소중한 사람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럼 나는 남에게는 그렇게 발 벗고 나설 거면서 스스로에게는 뭘 해줬나 생각했다. 나도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렇게 아직도 아파하고 있다는 걸 그 누구에게도 솔직히 꺼내 놓을 순 없었다. 내 주위 소중한 사람들을 슬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말한다 한들, 그게 쉽게 위로가 될 리도 만무했다. 그러니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나 스스로 나를 구해야겠다 생각했다.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이 되어 줘야지라고. 지금 듣고 싶은 말, 먹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에 잔뜩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
다 지나간 일이고 넌 지금 정말 괜찮아.
아직 넘어진 부분이 아물지 않아 빨간 살갗에 조금 따끔거릴 뿐이야. 조금 지나면 딱지가 생기고, 그 딱지가 떨어질 때쯤 아무렇지도 않게 될 거야. 살다 보면 넘어지는 날이 한두 번이겠어.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닐 테니까 모두가 그럴 테니까. 괜찮다 싶었다.
어느 날은 소나기가 오고, 장마가 길어지기도 하잖아. 이렇게 밖에 나와 잠시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돌담에 앉아 지나는 풍경을 보면서 쉬어가렴.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날이 생길 테니까.
토닥토닥 나 스스로를 달랬다.
난 나를 믿으니까 괜찮았다.
나는 언젠가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마저 다 걸을 거란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두워 지기엔 햇빛이 밝고 따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