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끼리 부담 주는 거 아니다

오랜 친구들과의 이야기

by 양양이

나는 오래된 친구들이 많다. 39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살았다 자부하는 일은 좋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거의 15년에서 25년 정도는 된 친구들이다. 가장 친한 친구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함께 해왔고, 그 이후로는 대학생 때 만났던 친구들,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도 이젠 더 이상 동료라고 말하기 어렵다. 전부다 나의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10대 20대, 그리고 30대를 같이 걸어온 친구들이다.


예전부터 줄곧 나와 친구들이 자주 하던 이야기는 "친구끼리 부담 주는 거 아니다"라는 말이다. 여기에 부담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금전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한다. 우리는 어릴 때 만났고 다들 자신의 일을 찾으면서 각자의 연봉과 돈벌이에서 격차가 났다. 사업에 성공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백수가 되어버린 나 같은 친구도 있는 법이었다. 곧 40을 앞둔 우리는 사실 세월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금전적으로 달라졌고, 사는 동네나 사는 방식이 모두 달라졌다. 친구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친구도 있고, 해외에 나가 사는 친구도 있으며, 각자 맡은 바와 하는 일도 모두 달라졌다. 그래서 사실 만나면 대화가 잘 통하는 부분도 있지만 달라진 삶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로 다르지만 여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서로 그 달라진 모습을 존중 해준 다는 것이다.


종종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술 한잔 하게 될 때면,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친구가 한번씩 쏘기도 하고, 서로 돌아가면서 돈을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더치페이를 하자고 한다. 서로 계산대에서 오늘은 내가 낼게! 라며 실랑이를 벌이면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친구들끼리 부담 주는 거 아니다" 하면서 말이다. 여기에 우리가 오랫동안 친구를 유지하는 비결이 담겨 있다. 1차원적으로 돈을 돈 그 자체로 본다면, 맞다 친구들끼리 금전적인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음이 가장 크다. 돈을 빌리고 갚고는 서로의 자유이지만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다면 곧 잡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나의 철칙은 친구들과 금전적인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더 이상 그냥 돈이 아니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친구가 마음을 표현한 것이고, 나도 그 마음을 다시 되돌려 주고 싶어진다. 그렇게 지속되면 오고 가는 길이 복잡해질 때가 많아 서로 부담과 불편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냥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 오히려 편해진다. 그 누구도 누가 다음에 내지?라는 자잘한 고민조차 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래서 언제든 만나고 싶을 때 서로 아무 꺼릴 것 없이 만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의 부담도 있는데 바로 서로에게 할애하는 시간이나 노력이다. 그것은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는데서 부터 지킬 수 있는 일이다. 이제 자신의 가정이 생긴 친구들과 자신만의 삶이 다들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시간을 내거나 노력을 서로 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차고 넘쳐도 과도하게 시간을 내거나 노력을 해주는 친구는 이제 서로 달갑지 않게 되었다. 서로의 삶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과도한 것은 이제는 서로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공감과 위로는 해 줄 수 있지만 서로 인생에 참견을 한다든지 침범을 한다든지의 일은 더 이상 없어지게 되었다. 오히려 오랜 시간 연락을 서로 하지 않았을 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잘 살고 있겠지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고, 가끔 잘 살아있나 생존체크를 위한 연락 정도 할 뿐이다. 그러다 또 시간이 맞으면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이런 느슨함이 우리의 관계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워지는 일이기는 하나, 사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자연스레 정리가 되면서 진또배기 친구들만 남아 있게 된 이유도 크다.


10대 때는 친구가 없으면 죽는 줄 알았고 친구가 인생의 전부였다. 그리고 20대가 되면서 친구는 나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영혼의 단짝 같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바쁜 30대가 되면서 서로의 인생을 응원해 주는 지지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 없는 존재가 되었다. 어릴 때는 친구에게 많은 인생을 할애한 만큼 그 기대치가 정말 컸다. 내가 원할 때 함께 있어주지 않거나, 나를 전적으로 응원해 주지 않는 기분이 들면 그렇게 섭섭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우정도 다른 빛으로 변하게 되었다.


친구와 나 사이에 선이라기보다는 친구의 인생과 나의 인생에서의 선이 생겼다. 각자의 인생의 속도와 방향과 가치관이 달라졌다. 그걸 우리는 서로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나오면서 깨닫게 되었고, 적절한 선을 지키게 되었다. 그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이제는 우정이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이 되었고, 그저 서로의 길을 묵묵히 응원하는 것이 진정한 우정의 형태가 된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서로의 인생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저 아 그렇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속상했겠다 혹은 잘됐다 정도의 반응으로 그친다. 그저 옆에 있으면서 들어주는 리스너의 자세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인생에서 부담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지내는 게 사실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 더 친구들의 의중을 살핀다. 서로에게 뭐가 좋은지 보다 불편한 것은 없는지부터 살핀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먼저 꺼내지 않는 이야기를 불쑥 묻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믿고 기다려준다. 이제는 더 이상 많은 말이 필요 없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아직도 사실 가끔은 서로를 실망시키고 섭섭하게 느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냥 그쯤에서 다들 넘어간다. 그런 일이 있었어도 사실 사이를 멀어지게 할 정도의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며칠 지나고 나면 금세 잊어버린다. 영원한 것은 없어서 또 이런 느슨함 앞에 언제 스르르 멀어질지 모르는 친구들이지만, 세월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완급 조절을 하는 것뿐이다.


서로의 거리를 지켜주는 것.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그리고 서로의 인생을 응원해 주는 것. 그게 "친구끼리 부담 주는 거 아니다"라는 말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 이제 30대를 넘어서 40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또 다른 우정의 형태인 셈이다. 보이는 곳에서든 그렇지 않은 곳에서든 "네가 늘 잘 지내길" 바라는 친구의 마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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