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 모르면, 방치하게 된다.

착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사랑받고 싶어서 나를 방치했을 지도.

by 양양이

예전에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나니까 괜찮아.라는 마음이 뿌리 깊게 자리 잡혀있었다. 나를 한 번도 남처럼 배려하거나,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괜찮아 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난 괜찮지 않았다.


20대 때 나는 음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때는 매일이 다이어트였고, 하루에 한 끼만 먹고살았었다. 예쁘고 날씬하고 싶었다. 점심만 먹고 굶은 일이 허다했다. 저녁에 약속이 있으면 점심을 먹지 않았다. 술을 먹을 때도 안주는 먹지 않았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식당에 가거나 술을 마시러 가면 "너 뭐 먹을래?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 늘 "나는 아무거나 괜찮아 상관없어. 너네 먹고 싶은 거 먹어"라고 했다. 그때는 정말 먹고 싶은 게 없었다. 대충 하루 때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기술이 발전해 알약을 하나 먹고 배부르게 살 수 있다면 알약을 먹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음식이 중요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친구들은 더 이상 나에게 뭐 먹고 싶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늘 가장 자기 의사 표시를 잘하는 친구에게 메뉴판이 들려있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은 시간이 지나 내가 음식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나는 여초 회사 취직하게 되었다. 직원 100명이 있다면 80명이 여직원이었다. 그곳에서는 동료들끼리 늘 맛집을 공유하고, 좋은 화장품을 공유하곤 했다. 하루는 같이 일하는 선배가 홍대에 아주 유명한 줄 서서 먹는 곱창집을 데려갔었다. 난 그곳에서 곱창의 진정한 맛을 알아버렸다. 그전에는 소곱창과 돼지곱창을 구분 못할 정도로 음식에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그 홍대에 곱창 체인점에 약속이 생길 때마다 주구장창 가게 되었다. 하루는 그 곱창집이 너무 맛있어서 친구들한테 계속 가자고 졸랐다. 친구들은 놀라워했다. 네가 뭘 먹자고 하다니, 네가 메뉴도 고를 줄 아는 사람이었어? 세상 놀랄 일이네. 라는 반응이었다. 이건 매일 내가 했었던 "너 먹고 싶은 걸로 골라" 라는 말의 결과였다. 사실 나는 친구들을 깊게 배려하거나 한 게 아니었다. 정말 관심이 없었다가 관심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메뉴 선택권은 나에게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곱창을 외쳐도 자주 먹을 순 없었다.


그리고 내가 다니던 회사는 스케줄 근무를 하는 곳이었다. 새벽 6시에 출근하기도 하고, 오후 2시에 출근을 하기도 하는 교대 근무였다. 나는 늘 피곤했고, 생체 바이오리듬이 늘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 같은 성격이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언제나 적극적이었다. 20대 때라 퇴근을 하면 친구들과 늘 어울렸었는데, 나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했지만 친구들의 부름에 늘 응했다. 그때는 친구들이 많기도 했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즐거웠다. 나는 피곤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언제든지 나에게 연락하곤 했다. 그 많은 친구들의 부름에 다 응할 수 없었지만 최대한 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것들은 나에게 화근이 되었다. 에너지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느끼지 못했지만, 피로감이 쌓여 몸이 아파서 쓰러지기도 했고, 몸살에 자주 시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그때는 뭐가 문제인지 잘 몰랐다. 그 많은 친구들은 늘 나를 찾아주었고, 나는 고맙고 좋았다. 하지만 그 많은 친구들을 늘 매번 다 만날 수 없었다. 친구들은 "넌 매번 다른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빠" 라며 나에게 항상 섭섭함을 느꼈다. 슬슬 이런 것들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는데, 쉬지 않고 울리는 카톡, 늘 섭섭해하는 친구들, 몸이 아파지는 나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였을까. 친구가 좋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사람들을 곁에 두었고, 그 친구들에게 모두 사랑받으려 했으며, 그로 인해 결국은 내가 괴롭고 스트레스받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때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시달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당시에 사랑도 이상하게 했다. 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만 만났다. 내가 하는 연애인데,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연애를 할 때 "나를 얼마큼 좋아해 주나"만 기준에 있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하물며 어떤 인성인지 어떤 성격인지, 심지어 외모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늘 연애의 선택지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지도 않은 사람이 만나자고 하면 거절을 못했다. 그가 나에게 열심히 잘해 주시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후회하기도 했다. "나 오늘 누가 고백했는데 거절을 못했어. 그래서 사귀기로 했어"라고 말이다. 친구들은 답답해 하면서 무슨 자원봉사활동 하냐고 까지 물어봤다. "싫으면 싫다고 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 싫었지만, 내가 싫은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늘 내게 정성과 사랑을 쏟아주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때의 나는 연애에 대한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누구든 나를 좋아해 준다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한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다 20대 초중반에 나는 거의 무취향이었던 것 같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늘 선택권을 남에게 쥐어줬었다.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어, 네가 가고 싶은데 가자,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나는 종종 괴로웠다. 분명 나는 괜찮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근데 그때는 내가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남에게 내 인생의 선택권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주면서 왜 괴로웠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나의 취향이 확고하게 생겼을 때도, 나의 선택권을 다시 나에게로 가져오기란 쉽지가 않았다. 여전히 나는 하자는 대로만 하고, 남들이 날 싫어할까 두려워 거절을 못하면서 이대로 나를 잃어갈까 걱정을 했다. 그건 착하고 순종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나를 잘 몰라서 스스로 방치하게 된 결과였을 뿐이었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그것을 나의 인생으로 가져오기까지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괴로워하면서 말이다. 세상에 내가 날 잘 알아도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나까지 자세히 모르면서 잘 살아가기가 힘든 것 같다. 혹여 사람이 너무 좋아서 외부에서 오는 외로움이나, 남들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나 자신을 그저 지워버린 것 지도 모르겠다. 그저 말 잘 듣는 착한 사람으로만 보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절대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나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방치하면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한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을 앞둔 지금은 이런 문제들로 고민하진 않는다. 우리는 이제 서로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또 다른 형태로 종종 다가온다. 죄책감이라는 것이 나를 짓누르기도 한다. 내가 거절을 할 때 드는 죄책감. 그것에서는 자유롭기가 힘들다. 거절을 하는 상대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죄책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나는 내 것을 지키려 거절을 하지만 그것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많다. 나로 인해 저 사람이 상처를 받았으면 어떡하지. 내가 좀 힘들었어도 응해줬어야 할까 하곤 한다. 아직 나에겐 전부 다 풀린 숙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내 삶의 주최가 되어, 나를 지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것이 이렇게나 힘들다. 하지만 분명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것으로 괴로워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 목소리를 내주길 원할 것이다. 나 또한 내 소중한 사람들이 그랬음 하니 말이다. 나를 알고 나를 지키는 것이 곧 나와 내 주변을 지키는 일이 될 거라고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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