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보니 어릴 때도 다 알고 있었던 남들의 시선
내가 어릴 적 40년 전에는 어린이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국민학교를 입학하기 전 3년에서 1년 정도 유치원을 다니는 게 다였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빴던 우리 집은 나를 6살부터 유치원에 보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지금 보다도 훨씬 가난했다. 넉넉지 않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어렸지만 그때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하원를 하면 절대 집에 바로 가지 않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처럼 난 그때부터 줄곧 초등학생을 거처 청소년시절,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집에 곧장 가질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 시작이 6살 유치원 때부터였다. 사실 그때 집에 가도 아무도 없었다. 혼자 집에 있어야 해서 심심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일을 하셨고, 두 살 터울의 언니는 국민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 들러 종종 놀다가 집에 돌아가곤 했는데 - 그때는 유치원버스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걸어서 유치원에 가고 혼자 집까지 걸어오고 그랬다.- 그때 알았다. 일을 안 했던 그 친구들의 엄마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집에서 간식도 만들어주고 교육적으로 좋았던 재활용품을 활용한 기발한 장난감도 같이 만들어 준다는 것을. 6살 때였지만 조금 속상했었다. 나도 엄마 아빠가 저런 장난감을 같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생각해 보면 희한한 시스템이었는데, 유치원에서 밥만 제공해 줬었다. 반찬은 각자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했었다. 그래서 유치원에 커다란 전기밥솥이 있었던 게 기억난다. 유치원 점심시간 때 친구들이랑 오래 놀고 싶었던 나는 밥을 아주 조금만 받아다가 금세 다 먹고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에 돌아가면 배가 고파서 울 때도 있었다. 그럼 엄마는 선생님께 전화를 하곤 했고, 그다음 날부터 밥을 아주 남산만큼 배식받았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친구랑 놀 수가 없었다. 먹기 싫었는데도 선생님은 다 먹을 때까지 날 지켜보고 있었다. 깨작거리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서 친구들이랑 못 놀아서 속상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그때는 갱지라고 회색빛이 나는 재활용 얇은 종이가 있었는데, 그곳에 가정통신문을 써서 보냈다. 00년 00월 00일 유치원 뒷동산 소풍이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선생님께서 줬었는데 나는 노느라 까먹고 엄마한테 전달하지 않았다. 뒷동산 소풍의 날이 다가오고 나는 그 사실도 까맣게 잊고는 유치원으로 쫄래쫄래 걸어갔다. 그날 유달리 유치원 앞에 친구들의 손을 잡고 따라온 엄마들이 많았다. 친구의 엄마가 나한테 물었다.
"양양아 오늘 소풍 가는 날인데 밥은 잘 싸왔니? 양양이 엄마는 바쁘시잖아. 오늘은 밥이 안 나오는 날이라 싸 오라고 했었는데..."
나는 머릿속으로 아차! 싶었다. '아 맞다 오늘 소풍 가는 날이었지?' 유치원 시간도 아직 남았고 해서 나는 곧장 집으로 다시 달려갔다. 6살이니 그런 것들을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집에 엄마는 이미 출근을 하고 없었다. 나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밥솥을 열었다. 다행히 밥은 가득 있었다. 그리곤 도시락 통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서랍 깊숙한 곳에 내 눈에 들어온 양념통이 있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계란모양의 3개의 양념통. 예뻐서 엄마도 아껴 쓰느라 아직 새것이었다. 아래는 투명했고, 뚜껑은 각각 세 가지 색깔에 흰색 도트 문의가 그려 있었다. 어린아이가 봤을 때는 최고의 도시락 통으로 보였다. 소풍을 가니 예쁜 새 통에 밥을 담아 가고 싶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양념통이니 사실 어린아이 주먹만큼의 사이즈 밖에 되질 않았다. 고춧가루나 멸치가루 같은 것을 넣는 작은 통이었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빨간색이 제일 예뻐서 빨간통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 가지고 갔다. 가방에 넣고 다시 신이 나서 유치원으로 갔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한테 이 사실을 빨리 알려야지 생각했다. 스스로 도시락을 쌌다는 게 대견했다.
유치원에 도착했고, 다 같이 뒷동산으로 놀러를 갔다. 한참을 놀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 빨간 양념통 밥을 꺼냈다. 친구한테 자랑도 했다.
"너무 예쁘지? 내가 싼 거야!"
친구들이랑 도란도란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이 내 양념통 밥을 보면서 말했다.
"양양아 밥이 너무 적지 않니? 엄마한테 소풍 간다고 말씀 안 드린 거니? 부족하면 옆에 친구랑 나눠먹어"
양념통이 계란 모양이라서 둥근 타원형(?) 같은 모양이었는데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서 내 가방에 있는 동안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 양념통 안에 밥은 이미 동그란 주먹밥 모양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어렸지만 선생님 말에 조금 창피했다. 그러나 기죽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 밥 먹으라고 날 붙잡아 놓고 놀지도 못하게 하는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날 안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엄마가 바빠서 도시락을 못싸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엄마한테 말하는 걸 잊은 것뿐이었다. 난 고작 6살 배기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은 슬펐지만 이내 당당하게 말했다.
" 그런데 저 배 안고파요 이 정도면 배불러요"
그리곤 자존심을 부리면서 친구 밥을 나눠 먹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꼬르륵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배고프다고 그 선생님한테 말할 수는 없었다. 소풍 내내 나는 배고픔을 끝까지 참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오늘의 일을 자랑하듯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오늘 내가 밥 여기에 싸서 소풍 갔어! 잘했지?"
엄마는 놀란 듯이 쳐다봤고,
"아이고 이 작은 통에 밥을 싸가지고 갔어? 그래도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알고 잘 싸갔네 기특해라"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너무 어려서... 그저 엄마한테 칭찬을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한참을 지나도 엄마는 그때 그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내가 가엾었다고 했다. 엄마가 너무 바빠서 미처 잘 챙기지 못했다며 한참 동안을 미안했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몇 번이고 말했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도 끊임없이 그때를 상기하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사실 대견하면서도 눈물 나는 일이었다.
어렸지만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걸 보면, 꽤나 인생에서 인상 깊은 사건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도시락을 싸가서 뿌듯했던 날. 그리고 선생님이 날 바라보던 그 표정. 그때 어렸지만 그 선생님이 날 못마땅해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인생 첫 번째 타인의 시선이었다. 분명 난 어린아이였고 아주 오래되어 사실과는 왜곡된 시선이었을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할 수만 있다면 그때 어린 시절 나로 돌아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정말 잘했다. 대견하다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엄마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아직 자식이 없는 나라도 너무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난다. 우리 엄마는 그때의 나랑 같은 나이, 6살 때 자신의 엄마를 여의었다. 엄마는 엄마도 없이 나와 언니를 키워냈다. 엄마도 그때 고작 20대였다. 그래도 늘 타인의 시선 따윈 상관 않고 당당하고 멋졌던 엄마를 기억한다. 아마도 난 그런 엄마를 닮은 것 같다. 오늘은 집에가서 엄마를 안아줘야 겠다. 고생했어 그리고 너무 고마워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