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보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나로 사는 게 중요하다
나는 어릴 적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사실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다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공부만 치우쳐서 했다. 국어, 문학과목을 좋아했고 세계사를 좋아했고 한국지리를 좋아했다. 수학은 너무 싫었다. 나에게는 그저 알 수 없는 숫자와 기호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그래서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고 대학 때는 할 수 있는 공부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놀기를 더 좋아했다.
대학교 1학년 내내 학사 경고를 받았다. 학교가 충남 아산이라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도 학교에 잘 가지 않았다.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게 더 좋았다. 나는 파티걸이었고 핵 인싸였다. 1학기 수시 - 고3 1학기에 대학에 합격하는 제도- 에 붙고 나서 고3 가을에 나는 학교에서 보내주는 중국 비즈니스연수를 다녀왔다. 1학기 수시에 붙은 학생들만 같이 모여서 가는 연수였는데, 원하는 사람들만 갔지만 80%의 비용을 학교에서 내주었기 때문에 사정상 못 가는 사람 빼고는 거의 전부다 같이 중국 상해를 다녀왔다. 1학기 수시 제도는 한 과에 1~2명 많아야 5명 미만으로 뽑았다. 그래서 나는 입학도 하기 전에 전 학과의 적어도 1~2명은 알고 있었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는 걸어 다니는 "안녕 머신"이 되었다. 아는 사람을 하도 마주쳐 3미터도 못 가서 계속 인사를 한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리고 한 과에 1,2명 알던 친구들이 또 친구를 사귀어 소개를 시켜주고 또 그 친구들이 소개를 시켜주고를 반복하다 보니, 정말 나는 거의 모든 과의 사람들과 교류가 있었다. 학교가 작은 것도 아니었다. 4년제였고 캠퍼스도 끝에서 끝까지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의 사이즈인 학교였다. 노는 거 좋아했던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1년 내내 열심히 놀게 되었다. 과마다 미팅을 잡아서 우리 과 애들에게 미팅을 시켜주기 바빴다. 심지어 나는 다른 학교에 간 친구들의 학교에도 자주 놀러 갔었다. 정말 노느라 바쁘다는 게 딱 맞는 표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학교에서, 그리고 친구들에게 파티걸이 되어버렸다. 공부는 멀리하는 놀기만 좋아하는 애. 심지어 생일 파티도 술집을 통째로 빌려서 하기도 했다. 그만큼 놀기 좋아하고 친구가 많았다.
1학년 1학기에 F가 3개가 떴다. 학사경고였다. 그리고 정신을 못 차리고 2학기때도 그렇게 되었다. 나는 이대로 다니다가는 제적을 당할 것 같았다. 학교를 똑바로 다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휴학을 하고 나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내주시면 나는 뻔히 정신을 못 차릴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휴학을 하고 열심히 1년 동안 학비를 벌었다. 심지어 투잡도 하면서 열심히 벌었다. 그래서 다시 2학년을 복학했을 때 나는 학비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었다. 동기들은 3학년이 되어있었고, 남자동기들은 군대에 가 있었다. 이제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불타 올랐다. 복학생이었던 나는 후배들과 수업을 들으면서 더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하지만 동기들과 선배들의 시선은 늘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애로 낙인찍혀 있었다.
2학년 1학기부터 학비가 아까워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뭐든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펑크 났던 학점을 메꿔야 했다. 24학점 꽉꽉 채워서 듣기 시작했다. 그때 들을 수 있는 최대 학점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도서관으로 가서 다른 자격증 공부들을 시작했다. 봉사활동도 하고 여러 가지 교내 동아리도 들었다. 그냥 학교 내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었다. 학비가 아까웠다. 지금 내가 학교에서 하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는 더 많은 돈을 주고 강의를 따로 듣게 되거나, 액티비티를 하더라도 더 비싼 가격에 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포츠 마사지, 스쿠버 다이빙 같은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사체과 수업도 같이 들었다. 교양수업 중에서도 1학점 짜리였지만 혼자서라도 들었다. 그래도 사회체육학과에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중간고사를 보게 되었고 나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상위권을 유지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는 국어국문을 사랑했고 내가 오고 싶어서 선택한 전공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과는 비인기 학과라 수능점수를 억지로 맞춰서 오는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지방대였던 터라 다들 공부도 많이 안 하는 분위기였다. 작은 노력으로 금세 나는 좋은 학점으로 상위권이 되었고 다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3개월 만에 나는 파티녀에서 도서관에서 사는 범생이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에는 선배들도 후배, 동기들도 다들 "너 도대체 도서관에서 뭐 해?"라고 물어봤다. 시험기간도 아닌데 도대체 뭘 하냐고 묻는 거였다. 분명 내가 공부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밤 10시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그렇게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내가 파티녀였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가 도서관에 있는 게 당연해졌고, 나는 원래 공부하는 애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얄팍하고, 무신경한 것인지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사실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다들 자기 갈길 바쁘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그 가벼운 타인의 시선에 얽매어 살고 있나.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들의 눈에서 내가 어떻게 비칠지 너무 많이 의식하면서 살았던 건 아닌지 싶었다. 사실은 그들은 내가 노니까 그냥 노는 애구나 했고, 공부를 하니까 공부를 하는 애구나 싶었을 거다. 나 혼자 '나는 맨날 놀았으니까', '사람들이 마냥 내가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건 내 많은 모습들 중 단편적인 모습일 뿐인데'라며 나 스스로를 판단하고 가뒀을 뿐이다. 남들은 사실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3개월이면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란 얼마나 쉽게 변하고 하찮은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토록 가볍고 쉽게 변하는 타인의 시선에 얽매어 그때그때 맞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난도 삶이겠는가.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하니까. 남들의 눈치, 시선에 그토록 취약 해져 버린 나 자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만 치중하게 된다면, 나 자신은 사라지고 결국 남이 원하는 나의 모습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대기업이라 칭하는 곳에서 잘 일하다 퇴사를 하고 나는 사업을 차렸었다. 사실 대기업이라는 분류로 나뉘었을 뿐이지 대기업의 자회사였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모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늘 있었다. 모기업의 직원들과 회식을 할 때면 스스로 그들과 비교하면서 쭈글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더 사업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직원에서 사장이 되는 일은 실로 짜릿했다. 사장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또 한 번은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을 다니는 지인이 있었는데, 자기는 퇴사하는 것이 무섭다고 했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000 기업의 누구'라는 타이틀을 벗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분명 일하는 것에 전혀 흥미도 없고, 승진에도 누락되고 있으며, 계속해나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되지만, 퇴사 후에 자신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에는 자기는 수식어가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하려면 줄줄이 긴 서사를 읊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000 기업의 누구라고 말하면, 아무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 타이틀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도 하고 싶고, 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내 두려워져 포기했다고 했다. 꼭 포기한 이유가 당연히 대기업 직원이 주는 타이틀 때문은 아닐 테지만, 남들의 시선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지 않다고 했다. '000 기업의 나'와 '그렇지 않은 나'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남에게 보이는 것들을 간신히 붙잡고 사느라 나 스스로 누구인지 찾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내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함이었나,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함이었나.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소위 '멋진 삶'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이기 위한 멋진 삶을 위해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정말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않았나.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 자체가 그 사람만의 진정한 아우라를 풍긴다. 그런 사람을 감히 누가 손가락질 하며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정말 쉽지 않은 것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원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그 모습으로 지금 살고 있는지 내 마음속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일생은 한 번 뿐이고, 고작 나부끼는 찰나의 순간 일 뿐인, 남들의 시선에 연연하기엔 인생이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 죽음에 다 닿았을 때 남들의 시선으로 인해 미처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후회하게 되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과연 어떤 나로 살고 싶은가. 늘 고심하며, 집중해야 한다. 아마도 우리의 삶은 내가 누구인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알아 가기 위한 여정이지 않나 싶다.
아침에 일어날 때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방향으로
나를 위해, 나 자신으로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