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차단하는 몰입의 시간
최근에 잘 사용하던 무선 이어폰을 잃어버렸다. 나는 갤럭시 유저라 버즈프로 3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이 노이즈 캔슬링이 아주 기가 막히게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기술이 나왔을 때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몇 년 전에 회사를 다닐 때였다. 후배는 에어팟을 새로 사서 신이 나있었다. 내 귀에 에어팟을 꽂아주며 말했다.
"선배님 노이즈 캔슬링 아세요? 노이즈 캔슬링 체험 해보셨나요?"
내 귀에 꽂힌 에어팟에 노이즈 캔슬링을 경험 한 순간. 난 고요한 우주,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띵- 하고 연결음이 살짝 들린 후 바로 고요해지는 주변. 정말 신세계를 경험한 듯했다. 이건 정말 체험이라는 말이 딱 와닿았다.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도 충격적이었지만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술도 가히 혁신적이었다.
처음에는 "와 신기하다 진짜 소음이 하나도 안 들리네?" 정도였다. 이걸 어디에 쓰지? 위험한 거 아닐까 생각도 했다. 길을 걷다 외부 소음이 안 들리면 차가 오는 소리도 못 듣고, 어디서 닥쳐올지 모르는 외부의 소리마저 차단되는 것 아닌가 지레 걱정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무선이어폰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기능이 되었다. 그 기술은 점점 발달해 내가 외부소리를 듣고 싶으면 이어폰을 빼지 않고도 바로 들을 수 있는 ON, OFF 기능마저 탑재해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버즈 프로 3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9천 원짜리 저렴한 이어폰을 쓰고 있었는데, 노이즈 캔슬링이 되고 안되고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한지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역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확실히 티가 났다. 카페에 가서 글을 쓰자면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어딜 가나 들리는 소음은 내 집중력을 저하시켜 버렸다. 그래서 또 못 참고 소니 헤드셋 구입했다. 이어폰 보다 더 확실한 차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역시 기술은 날로 더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딜 가나 편안히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술은 꼭 이어폰이나 헤드셋에만 장착할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불 필요한 소음들로부터 나를 차단해야 하는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 곳곳에 분포되어 있었다.
나는 줄곧 어릴 때 하고 싶은 것이 문뜩 떠오르면 너무 신이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들떠서 말하곤 했는데, "너무 좋은 생각이다 응원할게 잘해봐!"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게 너 쉬운 줄 알아? 잘 생각해 봐 그거 쉽지 않아 다들 망한다고 하잖아 그거 안될걸"이라고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멘털이 약했던 과거에는 그런 말들에 쉽게 상처도 받고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럴 때 내 마음의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술이 탑재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겠다는 것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차단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간으로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것이 가족이 되었을 때는 더욱 심했다. 부모님들은 잘 다져진 좋은 길로만 자식들이 가길 원하시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무언가 하고자 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내 도전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의도이든 간에 - 걱정돼서 하는 말, 질투해서 하는 말, 무시해서 하는 말 등등 - 여러 가지 반응이 뒤 따라오기 때문에 사실 도전에 대해 다 이룬 후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불필요한 잡음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필요한 부정적인 영향을 잘 차단하는 사람들이 성공하기에 유리하다는 책들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사람인지라 그것이 때때로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되진 않는다. 29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던 나는 가족들의 만류에 중국유학을 포기했었던 일이 있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후회하고 또 후회가 되었다. 그때 내가 중국에 갔다면 좀 더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 집안 분위기가 그때 너무 좋지 않아서 갈 수가 없었다. 집에서는 나는 좀 별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자꾸만 무엇인가 일을 벌이는 사람이었다. 그저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농사를 지었던 부모님은 늘 내가 그저 안정적으로 살기만을 바라셨다. 그리고 더 억울했었던 것은 중국유학을 포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은 다시 안정되었다. 내가 안정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그때 모든 주위를 차단하고 떠났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때때로 내가 주변을 차단하지 못했던 일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가끔은 마이웨이로 그냥 내 갈길을 꿋꿋이 가는 것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그때 중국 유학을 갔으면 조금 이기적인 딸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후회하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시선, 만류, 걱정, 시기와 질투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룹 사회를 사는 인간이기에 정말 주변 환경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은 적지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그것들을 다 차단할 수 있는 노이즈 캔슬링 모드가 내 마음속에서 ON, OFF가 자유자재로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길이 나에겐 좋지 않은 길일 수 있다. 반면에 다들 가지 말라는 길이 내 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확신이 들었을 때 내가 품은 꿈이 있다면, 그 결과까지 내가 스스로 책임질 확신이 있다면 그대로 노이즈 캔슬링 모드를 작동시켰으면 한다. 주변 소음을 차단하고 오로지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외침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선 이어폰의 기술이 점점 진화했듯이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면 내 주변의 부정적인 영향을 차단하는 내 기술도 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원하는 게 생길 때마다 내 마음속에 노이즈 캔슬링을 켜볼까 한다.
나는 내 갈길만 간다. 너네가 아무리 떠들어도 주변의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그저 너네는 나에게 소음일 뿐이다.라고 말이다.
이제 내 헤드셋을 보면 이 글이 생각 날 것 같다.
에라 다 모르겠다. 못 먹어도 그냥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