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의 중독된 사람들
이전에도 계속 그랬긴 했지만, 백수가 된 지 5개월 차가 된 지금나는 SNS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하릴없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내내 붙잡고 있다.이전 사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직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크게 번아웃이 온 나는 몇 달째 집에서 꼼짝 않고 SNS만 지겹도록 보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작위로 보이는 릴스, 숏츠 그 1분 남짓의 짧은 영상에 중독되어 버린 것인지
볼 필요도 없는데 주구장창 의미 없이 멍청하게 그것들만 보았다. 시간은 정말 속절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30분 후에는 그만 보고 할 일 해야지, 마음먹었지만 순식간에 몇 시간이 흘러 버린다. 백수의 일상은 하염없이 무의미하게 시간을 좀먹었다.
처음엔 다시 일어날 에너지가 없었다. 모든 나의 에너지를 일에 다 써버려서 장렬히 전사한것 같았다.
하루 4,5시간 정도만 자고 그 외 시간은 전부 다 일하는 시간으로 썼다.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고 하물며, 경조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때는 그게 책임감이고, 나의 의무고, 이것만 견디면 더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몇 년을 그렇게 하다 보니, 더 이상 침대 위에서 일어날 힘조차 나질 않았다.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 처음 3개월은 침대 위에만 누워있었다. 잠도 하루에 14시간씩 잤다. 자고 또 잤는대도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에너지를 얻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나는 SNS에 빠져있다. 꼭 보고 싶어서 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습관처럼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동안에 친구들, 지인들은 열심히 살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은 다들 열심히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행히도 나의 장점은 나 스스로를 누구와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봤자 불행해진다는 것을 어릴 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방 안에 갇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보고, 더불어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속속들이 보게 되었다. 누군가와 비교하진 않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번뜩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다른 누구의 인생을 평가하듯이 그들도 내 인생을 평가하겠지라고.
여느 댓글들만 봐도, 이래도 불편, 저래도 불편해하는 프로 불편러들이 너무 많았다. 자신의 삶과 생각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남의 인생을 판단하고 재단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공항에서 11년정도 근무를 하면서, 코로나가 찾아왔고 공항이 거의 셧다운이 되는 일이 있었다. 반백수가 되었었던 나는 로드사이클을 타기 시작했었는데 그때 팔로우 수가 크게 늘었다. 내 인스타그램의 팔로우는 겨우 아는 지인들로 몇십 명 정도가 전부였었는데, 로드사이클을 타면서 2000명을 훌쩍 넘게 되었다. 그때 느끼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좋아해 주고 팔로우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위험에 노출된 기분이었다. 내 인스타그램은 알고리즘을 탔고, 주변에 로드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은 점점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곤 얼마지나지 않아 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실물이 별로네, 성격이 어떻다는 둥, 이상한 무리에 끼어 있다는 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던 삶이 구설에 둥둥 떠다녔다. 굳이 말로 직접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충분히 알수 있었다. 고작 2000명 팔로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런 일들을 겪는데 연예인들은 어떻게 사는 건가 싶기도 했다.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라는 책에서는 호모사피엔스는 뒷담화 하는 특성이 있어서 무리 지어 다녔고, 그래서 생존에 유리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본 것 같기도 하다. 뒷담화라는 건 정말 좋지 않은 인간의 특성이지만, 사람이 뭉치면 남 이야기를 하는 게 오랜 역사이기도 하긴 한 거다. 사람들은 가십과 이슈라면 궁금해 참지를 못하니까.
SNS는 그래서 사람들의 많은 욕구를 해소시켜 줬을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삶을 공유하고 싶고 그런 것들이 문화가 되어버렸으니까. 너무나 쉽게 남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종종 나는 1년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지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도 내 눈앞에 놓인 것처럼 쉽게 볼 수 있었다. SNS는 사람들 간 삶의 간격을 좁혀주었다. 좁혀주고 좁혀주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포스팅을 그만두었다. 어떤 걸 하나 올리려고 해도 많이 생각해야 했다. 나와 다른 어떤 사람은 분명 내 포스팅을 불편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 어떤 것도 쉽게 올릴 수 없었다.
나는 내방 침대 위에 나를 가두었지만 내 정신마저 SNS에 갇혀버렸다. 남들을 특히나 의식하고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인스타 스토리에 뭐 하나만 올려도 DM이 득달같이 날아왔다. 친구들에 오는 좋은 메시지가 있는가 하면, 낯선 이에게 평가받는 메시지도 같이 있었다. 나는 턱턱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나의 행적을 감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사업을 해본지라 SNS의 순기능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다.
홍보하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최고의 플랫폼이니까. 수많은 정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지고, 그 속에서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무작위 정보 속에서 그리고 1분 남짓한 영상들을 수십 번씩 스크롤을 내리며 우리는 생각이라는 걸 안 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저 나랑 다르고 불편하면 주저 없이 비판하고, 네 편 내 편 갈라치기하고 갈등을 야기시키는 그런 행위들이 과연 정신에 건강할까 싶다. 우리는 사실 알고는 있지만 쉽게 끊을 수 없는 자극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핸드폰을 들어 무수한 자극 속에서 깨어나고, 잠이 들기 전 침대 위에서 또다시 무수한 자극 속에 나를 던진다. 그렇게 한 5개월 동안 SNS에 중독되고 나서, 나는 드라마도 잘 보지 못하게 되었다. 드라마도 너무 답답해 넘기면서 중요한 부분만 띄엄띄엄 보기 시작했고, 긴 영상은 속도를 2.0 정도의 배속으로 보기 시작했다. 참을성이 없어지고, 책을 읽지 못할 만큼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그러기엔 사실상 쉽지 않다. SNS를 넘어서 이제 AI 시대가 되면 우리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창작활동도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사고를 하지 않게 된다면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큰 능력을 잃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예전 24살 때 피지섬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제 막 스마트폰이 나올 때였다. 사람들은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갈아타기 시작했고, 그건 나에게 충분한 쇼크였다. 한번 스크롤로 지나간 콘텐츠를 되돌릴 수가 없고, 하루에 셀 수도 없는 정보들이 쏟아지고, 컴퓨터를 켜야만 할 수 있었던 메신저들은 핸드폰으로 넘어와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정보 폭풍우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래서 나는 사실 도망쳤다. 피지섬에 있을 때 인터넷 보급이 느렸고, 나는 2G 폰을 썼었다. 그때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SNS 없이 사는 방법을 사실 아직 모르겠다. 이미 너무 크게 오랫동안 내 삶에 파고들어 있기 때문에,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조금은 그래도 의식적으로나마 느리게 사는 게 어떨까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을 집기보다 다이어리를 쓰면서 일정을 체크한다던지, 차라리 무언가 보고 싶으면 책을 읽던지 말이다. 가끔은 아날로그였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때는 모두가 같이 느린 속도로 걸었고, 생각했다. 남의 인생을 빤히 드려다 보지도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확실한 안전 거리라는게 있었다.
어느 유럽에서 이런 속담도 있지 않은가.
내 이웃의 집을 들여다볼 때는 무언가 도움이 필요한지 확인할 때만 이라고.
가끔은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푸르고 울창한 나무들을 보면서 자연과 함께 느리게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