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럴 수도 있지 뭐

완벽한 사람은 없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by 양양이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어느 정도로 긍정적이냐면, 근거가 없어도 천하태평한 스타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안 했지만 왠지 시험을 잘 볼 것만 같았다. 결과는 그러지 못했지만 그냥 괜스레 그런 기분이었다. 무모할 정도로 그냥 무조건적으로 잘 될 것만 같았다. 결과는 상관없었다. 나는 늘 그저 세상 모든 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시험결과가 안 좋았어도 뭐 괜찮아 어차피 공부 안 했으니까 당연하지라던가, 어떤 작은 실수에도 연연하지 않고 아 괜찮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구나를 배웠잖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관대했던 만큼 남에게도 관대한 사람이었다. 스트레스라는걸 전혀 받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냥 언제 굴러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둥굴둥굴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처음 보면 분명 안 좋은 점이 있더라도, 내 눈엔 그 사람의 가장 좋은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단점을 굳이 보려 하지 않았다. 설령 단점이 보이더라도 이런 장점이 있는 사람이니까 좋아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알고보면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이 딱 맞다고 생각했다. 내 기준에서는 누구든지 좋은면은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쓰지 않아도 누군가를 칭찬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쉬웠다. 단점을 부정적인 면을 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누구든 단점은 있기 마련이고,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누구든지 실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긍정적이게 된 이유는 부모님의 영향이 아주 크다. 어려서 우리 집 형편은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딱히 내가 느끼질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알고보니 부모님의 희생 위에 이런 내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셨고 언제나 늘 나를 지지해 주고 믿어주셨다. 네가 선택한 일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 해 주셨었다. 친구들과 밤늦게 놀다 늦게 들어갔을 때도 "너 왜 이제 들어왔어"라고 화를 내며 꾸중하시기보다는 "엄마 아빠가 걱정돼서 기다렸잖아"라고 다정하게 말해주셨다. 그때 부모님께서 화를 내셨다면 나는 대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정함 앞에서는 미안한 감정이 먼저 앞섰다. 그래서 나는 삐뚤어지지 못했다. 나를 온전히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 항상 계셨기 때문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모님께 혼나 본적이 잘 없긴 하다. 인생에서 한두 번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덕에 나는 아주 티 없이 밝은 사람으로 자존감 높게 자랐다.


평소에는 이런 나를 대부분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다.친구가 많은 MBTI 극 E 외향형의 인싸 성격이었다. 그런데 이따금씩 나의 해맑음을 단점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너는 걱정을 고생을 안해봐서 몰라" 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들을 시작하더니 곧 나에게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살면서 부정적인 말들을 많이 들어본 적 없었던 나는 -사실 많이 들었지만, 그저 흘려 보낸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매우 놀랐고, 그 다음엔 나는 긍정적이니까 괜찮아 아무리 날 비난해 봐야 소용없지 라는 자만을 했고, 그 다음은 완전히 자존감이 곤두박질쳐서 저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그중에 가장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말은 "넌 안돼"라는 말이었다. "너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다 너를 위해서 나니까 해주는 말이야". 세상을 살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넌 안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는지 정말 의아했다.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북돋아 줘도 모자랄 판에 대놓고 안된다니.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이제껏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처음엔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얼마나 운이 좋게 살아온 것인가 싶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만 가득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넌 안돼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나에게 정말 잘해주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점점 조금씩 티 안 나게 나를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넌 안돼 라는 말을 정말 교묘한 표현으로 그리고 이골이 날 때까지 들어버린 나는. 결국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전이었다. 너무 이상해서 찾고 찾고 찾다가 알게 된 사람의 종류.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 자존감 도둑들이었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날 가두고 통제했다. 정말 친한 친구가 그랬고, 내가 가장 사랑하던 연인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점점 소심해지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그 어떤 선택과 일들에 대해 확신이 전혀 서지 않았다. 메뉴를 고를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심지어 보고 싶은 티브이프로그램 마저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다. 친구들도 가족들과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격렬하게 반응하고 거부했지만 끝이 없었다. 결국엔 그 사람들과 멀어지고 나서야 간신히 내 자리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멀어지는 여정도 너무나 멀고 험했다. 나는 자만했다. 아무리 너네가 나한테 부정적이게 행동해도 나는 끄떡없지 난 정말 긍정적인 사람인데 날 쓰러트리진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정말 큰 자만이었다.


살면서 꼭 나처럼 눈에 보이는 자존감 도둑이 아닐지라도, 은근한 자존감 도둑들이 많다. 그리고 그게 꼭 특정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SNS만 봐도 그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 상대적 박탈감이 들 수도 있고,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잣대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보다 돈을 더 중요시 여기는 전세계 유일무이한 나라이다. 모두가 성공에 미쳐있고,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일쑤다. 그 나이 때 꼭 어떤 것까지 이뤄내야 하고, 아직도 그걸 못 이뤘다면 낙오자라는 부정적인 시선들. 어처구니없게 100세시대를 살면서도 23살 때부터 자기는 무엇을 도전하기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파타 하다. 그래서 더욱 나만 뒤쳐졌을까 걱정하고, 실수를 할까 조마조마하고, 작은 단점을 커다랗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분명 잘한 일이 있을때도 스스로를 칭찬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또 엄격하다.


근데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 사람들의 생각대로 내가 살지 않았다고해서 낙오자도 실패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이대로도 괜찮다. 내가 나로 살아가겠다는데 그 누가 말리겠는가. 내가 나라서 괜찮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나라서 괜찮다. 이런 나라서 좋다. 이런 나라서 오히려 좋다. 스스로를 누구보다 따뜻하게 다독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너무 스스로를 타박하거나 몰아세우지 말자.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 괜찮아. 완벽한 사람은 없어 완벽해지지 않아도 돼

너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하잖아 그거면 된 거야 결과가 어떻든 괜찮아 실패도 도전해 본 사람만의 것이다라고 말이야.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게 말하면서 스스로에겐 잘 그러질 못한다. 언젠가 살면서 한번쯤 자존감이 떨어지는 날이 오면 거울을 보고 말해주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사람이야. 다시 한번 잘 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나는 그저 나로 살기로 했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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