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차피 자기 기준 대로만 살아간다.
운전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제목부터 자신에게 확 와닿는 말. 특히나 고속도로에서 잘 느끼는 감정인데, 고속도로는 신호가 없다. 그래서 차가 막히지 않는다면, 빠르게 갈 수도 천천히 갈 수도 있는 최저 속도부터 최고 속도가 정해져 있다. 일반 도로에서 보다 제한 속도가 훨씬 높다. 평균적으로 시속 100km 정도 된다. 평상시 도로에서는 시속 50km 정도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것보다 느리게 가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는 말이 달라진다. 사실 그러면 안 되지만, 제한 속도가 100km라고 해도 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도로가 뻥 뚫려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린다. 그래서 느끼게 되는 감정인데, 내 기준에서 나보다 너무 빨리 달리면 소위 "미친 X 아니야? 너무 위험한데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또 나보다 너무 느리게 가면 거북이처럼 답답하게 느껴진다. "너무 느려 답답해 아 좀 비켜봐, 이러니까 도로가 막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실 다들 이렇게 생각 할 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인지라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고속도로는 최대한 빨리빨리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욕 할 일이 많이 없어도, 도로 위에서 만큼은 나도 모르게 욱! 하고 튀어나올 때가 있다.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생각이 들 때 그렇다.
그런데 내가 운전을 하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조수석에 타고 갈 때는 여유가 생긴다. 내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그저 보이는 대로 생각할 뿐이었다. 칼치기(이리저리 차를 위험하게 피하면서 주행하는 사람)로 엄청 빠르게 가는 사람이 나타나면 운전자가 갑자기 화가 나는데, 그때 나는 "저 사람 집에 누가 아픈 사람이 생겼나 봐, 가족 중 누가 위급 하신가 보지라고 생각하자"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너무 느리게 가는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 지금 졸린가 보다, 많이 피곤한가 봐" 라던지, "내비게이션 보고 있나 보다 길 헷갈릴 수도 있잖아", 아니면 "초보자 일지도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면서 운전자를 위로(?)하려 했다. 운전을 하지 않는 나는 당사자가 아니었다. 그저 제 3자 입장이 되어 운전자를 이해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운전자 당사자가 되면 되려 화가 난다. "너 지금 저 사람 편드는 거야?" 라며 싸우기가 더 쉬웠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한 격이 된 적이 많았다. 같은 차를 타고 있어도 운전자냐, 조수석에 앉아 있냐에 따라서도 의견 차이가 생겼다. 자신의 상황이 다른 것이었다. 가장 솔직하고 직관적이게 감정이 드러날 때가 바로 운전할 때가 아닌가 싶었다.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기준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준과 상황은 그렇게 큰 고려 사항이 아니다. 누군가 빠르게 혹은 느리게 운전하는 사람을 보면 오로지 내 상황과 기준이 중요해진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늘 항상 정속 주행을 하는 사람이었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정속주행을 하면 빨리 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답답한 놈이 될 때도 있고, 빨리 가고 있을 때는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미친놈, 답답한 놈 둘 다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놓인 그대로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어 한다. 상황과 위치에 따라 내 기준이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 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미친놈, 답답한 놈이 될 수있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것, 느낀 것에 따라 반응한다. 그렇게 되면 기준이 모호해진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기준에 그렇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어떤 것도 맞다, 틀리다 말할 수 없다. 내 기준으로 내 길만 묵묵히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가끔은 남에게 위협이 될 정도, 교통체증이 일어날 정도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잘 생각해 보면 된다. 그것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자신에 대해 객관화가 되지 않고 자신의 기준을 정당화시키면 사회에 융합되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법이라 울타리가 생긴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법 안에서 정당하게 살아가기만 한다면, 조금 빨리 가고, 조금 늦게 가고는 자신만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사회화된 센스가 있다면 조금 인생이 살긴 편할 것이다. 조금의 눈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차선, 추월차선에서 너무 내가 느리게 가고 있는 건 아닌지, 2차선, 3차선에서 남들을 피해 막 빨리 달리고 있는지만 객관적으로 잘 생각하면 된다. 뒤차가 조금 빨리 가고 싶어 하면 차선을 피해 주는 것 그런 작은 사회화된 센스 말이다. 이런 센스를 가지고 있으면 일을 할 때 어디서나 예쁨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앞사람이 조금 답답하게 간다고 쌍나이트를 계속 깜빡이는 사람이거나, 클랙슨을 빵빵 울리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삶에서도 잠시 기다려주는 아량도 함께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인생에서 자신이 잘 가고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싶다면, 도로 위에 운전할 때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도로 위 운전센스가 바로 삶에 대한 자신의 센스 일 수도 있다. 운전은 매우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안전하게 운전하는데라고 생각해도, 옆에 사람을 태워보면 안다. 운전을 자신이 안 하고 있을 때 운전자의 숙련도에 따라 조수석의 앉은 사람은 불안도 안정도 크게 느낀다. 가끔은 혼자 자신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동료의 조언을 들어 보는 것도 괜찮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기로 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떤 운전자가 될 지 그 기준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선택임을 잊지 말자.
당신은 삶이라는 도로 위에서 어떻게 운전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