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된다.
나는 멘탈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언제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겼다. 나의 사회생활 철칙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적을 만들어봐야 내 손해니, 항상 좋게 좋게 책잡히지 않으려 노력하고, 사람들을 살폈다. 처음엔 굉장히 센스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알아 챌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줬고 나는 "넌 참 착하다", "넌 진국이야"이런 소리를 종종 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원하는 것 같아서 이런 말들이 기분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곧 알게 되었다.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회사를 다니고 3년 정도는 정말 열심히 다녔다. 승진도 바로바로 할 수 있었고, 인사 평가도 좋았다. 회사에 무엇이라도 기여하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적극성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를 성과로 연결시키려 노력했다. 나의 리더는 이런 적극성을 높이 사주었다. 그러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주임을 넘어 선임, 그리고 파트장이 될 차례였다. 하지만 그때 당시 회사에는 선배들이 너무 많았다. 다들 파트장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었다. 누구나 승진하고 싶어 했지만, 파트장 자리는 한정적이었다. 승진에 선배 후배는 없었다. 순리라는 것은 없었고 철저히 능력제였다. 승진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부터 나의 다정스러운 동료들은 모두가 적이 되었다. 마치 토끼의 얼굴을 한 하이에나들 같았다.
내가 후배로서 잘했던, 센스 있었던 업무처리는 자신의 후배였을 때나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후배가 자신을 밟고 올라가려고 하는 순간 모두가 도끼눈을 치켜뜨고 서로를 주시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이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조금 달랐다. 또래가 많은 서비스직이었고, 스케줄 근무로 만날 사람이 직장동료들 뿐이라, 우리는 대학교 동기처럼 친하게 지냈다. 더 이상 회사동료라고 말하는 것이 무색했다. 그들은 나에게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회사라는 것을 이렇게 다니면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젊었고 스케줄 근무로 인해 일반 회사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우리는 다들 외로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친구였고, 좋은 선배였고, 좋은 후배였던, 사실은 가족이었던 사람들이 승진의 문턱 앞에서는 사정없어 서로를 찢어 발겼다. 정말 큰 충격이었고 깊은 상처가 되었다. 직접적으로 나에게 찾아와 "열심히 하지 말아라, 튀려고 하지 말아라, 넌 아직 차례가 아니다"라고 윽박지르는 선배들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알고 있었다. '승진하려는 건, 너의 욕심이다. 찌그러져 있어라'라는 의미라는 것을. 그때는 그저 속상하기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퍽 위협적이었나 싶다. 선배라고는 하지만 사실 연차도 얼마 차이 안 났다. 그런데도 이상한 건 나는 그들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바보같이 나의 커리어를 놓아버렸다. 그들 사이에 끼어 피 터지게 경쟁하고 싶지 않았다. 상처뿐이었고, 치졸했다. 그러곤 성장할 기회가 막히고 거의 7년 정도 회사를 더 다녔지만, 산 송장처럼 다녔다. 퇴사를 하고 가장 기뻤던 것은 한때 나의 가족 같았던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큰 적이었다.
자신의 밥그릇에 위협이 되는 순간 어차피 모두가 적이었다. 그런 일들은 회사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 밖에서는 오히려 더 적나라했다. 인스타그램을 한참 할 때도 그랬다. 로드 자전거를 타면서 팔로우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는데, 내가 팔로우 수가 자신보다 적으면 호의적이고, 자신보다 높으면 경계하고 이용하려고 했다. 취미로 운동을 같이 하는 사람들 뿐이었는데도 시기 질투는 끊임없었다. 오히려 회사가 아니니 더 노골적이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순간 끌어 내리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나를 깍아 내리고, 그들은 나를 밟고 그 위에 서고 싶어 했다.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굉장히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아닌지 구별하기ㄱ가 매우 어려웠다.
지금은 다행히도 이런 사람들은 전부 걸러졌고, 나를 온전히 지지해 주는 사람들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어차피 사방이 모두가 적이다. 내가 잘 나갈수록 성공할수록 그렇다. 누구든 자신에게 위협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또 숨겨 두었던 칼날을 언제 꺼내 들지 모른다. 그래서 영원한 관계는 이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진심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 위치에 따라 관계는 끊임없이 바뀐다. 대등한 수평적인 관계였다가도, 권력적인 수직관계가 될 수 있고, 오늘은 친구였다가, 내일은 적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사랑하는 연인에게서도, 피를 나눈 형제자매에게서도 이런 일들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세상에 나를 온전히 지지해 줄 사람은 부모님 뿐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이뤄내고 싶다면 그저 혼자 가야 한다. 어차피 사방이 적임을 알고 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길은 매우 다를 것이다. 험난하고 고달프고 억울 해질 것이다. 내가 어딘가로 나아갈 때 휘청거림부터 달라질 것이다. 내가 휘청거리지 않고, 샛길로 빠지지 않고, 가던 길에 무너져 주저앉지 않으려면 누구도 적이 될 수 있음을 알고 가야 한다. 그래야 방향과 속도를 잃지 않고, 또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