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지심은 남과의 비교에서부터 온다.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심지어 스스로 남들과의 비교로 자격지심이 폭발해 주눅 들어 있었을 때도 많았다.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고, 남들보다 뒤처질까 노심초사하며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중학생 때부터 줄곧 붙어 다니던 베스트 프렌드, 줄여서 베프 친구 3명이 있었는데, 21살이 되고 나서 한 명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렸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 남아있던 두 명의 친구도 이민 간 친구가 있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때는 워킹홀리데이나 국비지원 어학연수가 유행이었다. 졸업하기 전 다들 해외로 떠나는 것이 필수 코스로 느껴지던 때다. 나는 사실 영어를 잘 못했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4학년 2학기를 시작할 때쯤이었다. 친구들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곧 돌아올 시기가 되었다. 셋이 동시에 캐나다에 있을 일도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친구들은 가까운 뉴욕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미국 여행도 한번 해보자 라는 취지였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뉴욕 여행을 위해서 알바를 더 할 것인지, 대학 마지막 학기를 동기들이랑 진하게 추억을 만들 것인지 말이다.
일단 뒤늦게 복수전공을 선택한 바람에 마지막 학기까지 나는 전공필수 과목을 수두룩하게 들어야 했고, 4학년 과대도 겸임하고 있었다. 중학교에서 국어과 방과 후 강사로 아르바이트도 줄 곧 해왔지만 뉴욕 여행을 위해 시간을 더 내서 따로 알바를 해야 했고, 졸업논문 준비로도 바빴다. 심지어 남는 시간에 한자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었다. - 국어국문학과라 한자자격증이 없으면 졸업이 불가능했다. - 아 생각해 보니, 외국인 학생 한국어 공부 튜터 봉사활동도 하고 있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그때 동기들한테 "너 캡모자 진짜 좋아하나 보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매일 거울 볼 새도 없이 피곤에 찌들어 캡모자만 꾹 눌러쓰고 다녔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그제야 진짜 사회가 시작된다는 것을. 그래서 꼭 대학 때만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욕심을 냈었던 것 같다. 더구나 마지막 학기라 동기들이랑 좋은 추억을 더 만들고 싶었다. 그때 학교 위치가 충남 아산이라 자취를 했었는데, 밤 10시가 다 돼서 자취방에 들어가면 룸메이트들이 기다려주고 있었다.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말이다. 그래서 그때 나는 뉴욕을 포기했다. 베프 친구들에게는 잘 설명했다.
"나 아르바이트를 더 하기엔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마지막 학기 동기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
친구들은 바로 이해해 주었고 나를 뒤로한 채 셋이서 뉴욕여행을 떠났다. 시시때때로 내 생각이 난다며 영상과 사진들을 뉴욕에서 보내왔다. 타임스퀘어에서 영상통화도 했다. 그때 사실 나는 뉴욕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했다. 사실은 너무 부러웠다. 섹스 엔 더시티를 보고 자란 우리에게는 뉴욕은 꿈이었다. 하지만 또 뉴욕에 갔다면 대학의 마무리를 잘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정된 시간에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뉴욕에 갔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친구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곤 친구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1년간 캐나다에서 있었던 일들과 뉴욕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로운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귀국한 친구들은 고작 1년이었지만 많이 변해있었다. 내가 모르는 북미 문화와 일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친구집에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입을 뗄 수도 없었다. 신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친구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네 양양이 아는 얘기 좀 해라 친구를 벙어리로 만들고 있니" 라며. 난 확 민망해졌다. 무슨 이야긴지도 모르는 이야기에 그냥 알아듣는 척 끄덕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땐 어려서 친구도 민망했는지 "엄마 무슨 소리야 얘도 다 아는 얘기야 그렇지?"라고 말했다. 우린 서로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친구들이었다. 나는 나와는 이제 다르게 변한 친구들과 거리가 느껴졌다. 제일 친한 친구와 이제는 대화조차 안 되는 수준으로 벌어져 버렸다니. 나와는 더 이상 "같은 레벨"이 아니라고 느껴졌었다.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 자격지심을 느껴야 했던 그때 참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보면 별거 아닌 일인 것 같지만 그땐 어려서 더 그렇게 생각되었다. 다른 문화를 아는 것도 스펙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친구들을 보니 나와는 다른 무리로 느껴졌다. 굉장히 좀스럽지만 그땐 어떻게든 내 자존감을 붙잡고 싶어서 나는 쟤네들보다 한자를 훨씬 더 잘 아는데!라고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음은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어학연수랑은 별개로 생각하더라도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대학교 4년 내내 영어공부를 안 한 건 나였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는 커녕 영어에 관심도 없었다.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막상 친구들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취준생이 되었고, 취업이 쉽지 않았다. 영어를 못하는 내가 갈 수 있는 기업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그렇게 영어에 대한 나의 자격지심이 시작되었다.
인생에서 어려번 자격지심을 느꼈던 순간들은 많았지만, 그때 당시 엄청 크게 다가왔던 질문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대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동네에서 지나다니다 보면 우연히 친구들을 많이 마주쳤다. 아무 악의도 없었다 다들. 그냥 궁금해서 물었을 뿐인 "너 대학 어디로 갔어?" 이 질문에 나는 늘 쭈뼛쭈뼛 말을 못 했다. 그냥 멋쩍게 하하 웃었다. 바보 같았다. 공부에 소질 없었던 나는 일찌감치 내 수준을 파악했고, 지금은 없는 1학기 수시라는 입시 제도를 통해 충남아산에 있는 지방대를 갔다. 수능은 보지 않았다. 고3 1학기를 마칠 때쯤 내신성적으로만 대학에 붙는 그런 제도였다. 모의고사에 자신이 없었다. 주변친구들은 진작에 말렸었다. 평택이라도 경기도권을 쓰지 그러냐고, 난 그때 대학 간판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건 단 6개월 만에 자격지심으로 돌변해 있었다. 같이 공부를 안 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고, 소위 이름 있는 좋은 대학에 진학해 있었다. 그때 날아온 충격이 적지 않다.
그리고 두 번째 자격지심으로 돌아왔던 질문은 바로 취준생이었던 그때 "너 어디 취직했어?"였다. 간판 있는 학교, 간판 있는 기업에 취업해야만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는 상관이 없었다. 회사 이름이 중요하고, 연봉이 중요했다. 그때는 서슴지 않고 다들 물었다 "그래서 거기는 연봉이 얼마야?" 그때도 취업난은 대단했다. 다들 당연히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꿈꿨었던 방송작가도 막 포기했었던 터라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나도 어학연수를 떠났다. 어학연수에 이유가 꼭 자격지심만은 아니었지만, 나만 영어를 못한다는 생각이 크게 한몫했다.
그래서 당시 어학연수를 가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일단 아무 회사나 들어가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1년 정도를 다녀야겠다 생각했던 회사였는데, 5개월 정도 다녔을 때 회사에 문제가 있었다. 당장 하루도 회사를 나가고 싶지 않았던 어떤 계기가 있었다. 나는 매우 급하게 한 달 안에 떠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어학연수 비용을 다 모으지 못한 상태였다. 캐나다와 미국은 너무 비쌌다. 호주는 한국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게 된 곳은 피지섬이었다. 그때 국비지원 100%라는 문구가 날 매혹시켰다. 필리핀은 한국인과 유흥이 너무 많았고, 초보자 연수에 한참 영국식 영어를 구사한다는 태평양 피지섬과, 유럽의 몰타가 떠오르고 있었다. 신혼여행지로만 알려져 있던 피지. 나는 당장 피지로 떠나게 되었다.
급하게 선택한 나라였지만 좋은 점이 많았다. 피지는 아름다웠고, 개발이 더딘 곳이었다. 자연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오리족 외형의 원주민 사람들이 살았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타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곳이기도 했다. 옷에 구멍이나도 맨발로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길에는 열대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돈 주고 과일을 사 먹지 않아도 되어서 거지까지 행복한 나라라는 말도 있었다. 굉장히 삶의 속도가 느렸고 다들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문명의 발달이 느렸던 피지는 현대 문명사회 속에서도 한참 동안이나 자신들이 뚱뚱하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대중매체가 들어오면서부터, 그러니까 먼 나라의 사람들과 자신들의 생김새를 비교하면서부터 뚱뚱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들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불행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몇십 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토록 행복한 나라 피지. 나는 그곳에서 진정한 자유와 여유를 배웠다.
그런데 반년만에 피지에 닥친 대홍수로 인해 강제 귀국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단 반년만에 그 각박하고 치열했던 한국의 삶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한국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카페에 갔다. 나는 카페에 어떤 예쁜 여자를 발견하고 계속 시선이 가서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친구한테 말했다
"저 여자 진짜 예쁘지 않아?"
친구에게서 곧 되돌아온 말은
"아니야 저 여자보다 네가 더 예뻐".
나는 이 말을 들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나 스스로에게도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인 20대 초중반 여자들이 우리가 흔히 하는 서로 위로나 공감할 때 쓰는 평범한 말이었다. 내가 줄곧 한국에 있었으면 이상하게 생각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먼저 나서서 저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분명. 하지만 난 피지에서 방금 한국에 왔기 때문에 그 이질감이 굉장했다. 그 여자가 예쁘다는 것도 사실은 듣는 이에게는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당연히 평가로 들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나의 의도는 평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탄사였다. 예를 들면 예쁜 꽃이나 풍경을 보면 진짜 예쁘지 않아?라고 하는 것처럼. 나는 그저 그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친구에서 돌아온 것은 평가였다. 내가 저 예쁜 여자를 보고 의례 질투나 부러움을 느낄까 봐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그런 선의의 거짓말 같은 것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나는 당연히 친구도 그냥 "와 정말 예쁘다."라고 공감만 해 줄 줄 알았던 것이다. 친구의 대답으로 인해 이미 난 그 예쁜 여자를 질투하거나 부러워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도 이 말이 이렇게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난생처음이었다. 아마도 그게 이질적으로 들렸던 이유는 내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속에서는 비교한다 라는 정의가 이미 사라진 것 같았다. 피지에는 아무도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 타인과의 비교도 거의 없다. 타인과 나를 비교까지 하려면, 나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해야 하고 상대방도 판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에너지 자체를 이해 못 하는 곳이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남을 평가하는데 익숙한 걸까. 심지어 스스로 남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 친구의 마음이 상처를 받을까 위로로서의 평가도 해준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당연히 감탄사가 아니라, 평가를 해서 나온 결과 값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쁘다" (입력) -> 질투나 부러움일 것이다 (판단)-> "네가 더 예뻐"라는 위로. 이런 것이 기본 세팅인 것이다. 나는 전혀 질투나 부러움에 한말이 아니었음에도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처음으로 타인에 대한 평가나 비판이 얼마나 이질적인 것인지, 그게 얼마나 우리 사회 속에 파고들어 가 있는 것인지 알게 되는 계기였다.
딱 반년만 다른 곳에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것이 얼마나 안 좋은 것인지 깨달아 버린 후 자연스럽게 비교하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스스로 비교를 안 하니 남에게는 더더욱 안 하게 되었다.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마인드 자체가 바뀌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사실 나도 한국사회에 다시 물들어 가끔 비교나 판단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날려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그것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다. 나는 나의 삶이 있고, 너는 너의 삶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남들과 비교를 하기 때문에 자격지심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고, 그것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각자 자신 인생의 속도와 방향이 있을 텐데, 그건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우린 사실 그 기준이 너무 다른 타인과 나를 스스로 비교를 하는 것이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생각을 하니, 비교의 대상이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나의 인생을 스스로 존중하자. 그럼 타인의 인생도 저절로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된다. 나랑 똑같은 인생을 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배에서 타고 난 형제자매도 각자 다 다르다. 그 사람은 결코 내가 아니다. 그리고 나도 결코 그 사람이 될 수 없다. 우린 애초에 비슷할 수도 없다.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의 존재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너무 깊이 매몰되지 말고 스스로에게 좀 더 집중했으면 한다. 삶이 불행하게 느껴진다면, 타인과 나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은 아닌지 한 번씩 생각해 보자. 누구와도 나를 바꿀 순 없다.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행복은 그리 멀리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