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멸망 이후 인류애

저작권과 사랑 상관관계

by 혜성

세계는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건 핵전쟁이었다.

인구가 줄자 국력도 약해지고, 약소국들은 강대국들의 입김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내가 죽을 것 같으니 너도 죽어라."

결국, 그런 식의 전쟁이 터지고야 말았다.

찬란했던 현대문명은,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꺼졌다.


그로부터 65년 후.

나는 한 섬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해적들이 섬을 습격했고,

나는 그들에게 붙잡혀 노예 신분으로 배에서 2년간 노역을 해야 했다.


“후, 빠져나오긴 했는데 여긴 어디야…”

앞날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해적들이 저렇게 판치는 걸 보면 육지도 말할 필요 없겠지.'
탈출하는 것만 생각했지, 그 이후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때, 총성이 울렸다.

‘탕-탕-

황급히 머리를 숙여 쓰레기 더미 속으로 몸을 숨겼다.

'…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심장은 쿵쾅대고, 머리는 채찍질당하듯 가열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구형 리볼버 하나. 총알은 세 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장전을 마쳤다.

그 순간,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눈동자 없이 흰자위만 가득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병에 걸렸거나 약에 취한 듯한 모습이었다.


‘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사람인데, 나도 사람인데… 이걸 쏘는 게 맞는 걸까?’

총구는 이미 그를 향해 있었다.
총은 대답할 준비를 마쳤고, 남은 건 내가 던질 질문뿐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총성, 그리고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제발…’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외치며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이, 수!”

눈이 이상하던 남자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현! 나 여기 있어! 상황은?”
“정리됐어. 장로님이 오셨거든. 눈도 안 보이는데 조심 좀 하지?”

나는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며 인기척을 줄였다.
그 순간, '현'이라 불린 남자가 정확히 내 쪽을 바라보았다.

“총 내려놔라.”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뒤통수에 느껴진 차갑고 무거운 감촉.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건 방금 내게 답을 하려 한 것과 같은 총이었다.

“연, 그냥 여차하면 쏴버려. “

현이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저… 저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건 네가 판단할 일이 아니지. 얌전히 따라와.”


총은 빼앗겼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걸음을 재촉하며 5분쯤 걸었을까,
앞에 여러 명의 무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쟨 뭐야? 아까 죽인 슬래터들이랑 같은 놈이야?”

“자기 말로는 아니래도, 총까지 겨누고 있던 게 수상해서 데려왔습니다, 장로님.”
“흐음, 그런 놈들은 내가 잘 알지.”

장로라 불린 이는 내 볼을 부술 듯이 움켜쥐며 날 살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구한 지대에서는 처음 보는 놈인데, 슬래터 놈들도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슬래터였으면 반드시 쏴버리고 생각하는 놈들인데 수를 보고도 총을 안 쐈다고?"

"저는 진짜 방금 여기 도착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

"총은 왜 안 쐈지? 일단 쏘는 게 당연하잖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몰라?"

"저도 사람인데, 사람을 쏘는 것이 조금 불편했단 말입니다.....

저는 동물한테밖에 총을 쏴본 적이 없어요."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실소를 참지 못하며 웃기 시작하였다.


"사람에게 총을 쏘는 것이 불편해? 하하, 뭐랄까, 낡아빠져 버린 농담 같군."

그러더니 장로는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얘 총 뺏고 데려가자.”

그들은 내 옷을 뒤지고, 뒤통수를 잡아끌며 어딘가로 향했다.


2시간 후, 무너져 내린 듯한 거대한 빌딩 앞.

“장로님 오셨어요? 이번엔 또 뭡니까?”
“새로 들어온 떠돌이 같아. 내가 확인해 볼까 해서.”
“요즘 정상인 놈 거의 없는데… 괜한 고생하시는 거 아녜요?”
“모르는 놈이라고 당장 죽일 순 없잖아?”

이 말들은 마치, 내 존엄을 짓밟는 발자국 같았다.
하지만 빌딩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와

사람 사는 냄새가 퍼져 가슴에 따뜻하게 자리 잡았다.


“와서 앉아봐.”

장로는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네… 저, 죽이지 말아 주세요.
진짜 아무것도 안 했고, 오늘 처음 온 거라서…”
“그 얘긴 들었고, 다른 얘기를 해보자.”
“어떤 얘기요?”
“네가 여기서 살아도 되는 놈인지,
인간인지, 인간 탈 쓴 짐승인지.”
“……그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믿으시겠습니까.”
“일단, 네가 살아온 이야기부터 해봐.”

이제 그는 심판관이었다. 신보다 두려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저는…”

심장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뛰고, 식은땀은 탈수 증세처럼 흘렀다.

머리는 핑핑 돌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런데 아까 사람을 죽이는 게 불편하다고 했지?
뭐가 그렇게 불편한지 말해봐.”

기억은 하얗게 지워진 듯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지금 느껴지는 감정 그대로 말했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게 어렵습니다.

해적에게서 탈출할 때도 누구 하나 다치게 하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이 오면 항상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그 사람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존재일 텐데,

내가 사람인 것처럼, 그도 살고 싶은 사람일 텐데.

그런 소중한 걸 파괴하면

마치 나 자신에게 상처를 내는 것 같았습니다.

두서없지만, 이건 진심입니다.”

장로는 눈을 감고 몇 분간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뜨더니 말했다.


"흐음, 예전에는 인류애라고 불릴만한 것이 있었지.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말이야."

"인류애라는 것이 뭐죠?'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이 만든 세상을 존중하고, 그런 것을 사랑하며

나 자신에게도 사랑을 느끼는 것들이 분명 있었지. 지금은 뭐 바보 정도겠지만 말이야."

"그런 세상이 있었다는 게 잘 안 믿기네요."

"예전에는 저작권법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걸 아나? 그건 한 사람이 만든 창조물을 훼손하거나

빼앗거나, 그 사람의 재산뿐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 마저 존중해 주자는 법이 있었지.

그림이나 책, 영화 같은 것 말이야. 영화는 뭔지 모르려나? 하여간, 서로가 서로의 창작물을

지켜주고 존중함으로써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법이 있었네."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죠?"

"너의 마음이 그것과 닮아 있다는 말이네,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말이야."

라고 하며 장로는 총을 내게 한 자루 건네주었다.


"안에는 총알이 들어있어, 사실 나는 너를 죽일지 살릴지 정하지 못했어,

네가 원한다면 그 총으로 나를 쏘고 도망가도 괜찮겠지."

라며 다시금 장난스럽게 웃는 장로였다.


나는 총을 받아 들며 속으로 '이건 무슨 상황이지? 나를 시험하는 것인가?

내가 진짜 쏘면 어쩌려고? 진짜 쏘고 도망가야 하나?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쉽게

어떻게 쏴... ' 같은 생각을 짧은 시간 동안 머리가 녹아내릴 정도로 하고 있을 무렵

내 눈에 보인 것은 나의 눈을 비추는 작은 거울이었다.

나는 그 순간 노리쇠를 당겨 결심을 하고, 공이에 힘을 주며 질문을 내뱉었다.

거기에 화답한 것은 하나의 총알뿐.


나는 나를 비추던 거울을 쐈고, 사람으로 남을지, 본능으로 남을지에 대한 대답을 하였다.

'난 이런 세상일지라도 사람으로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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