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생긴 Newark Liberty Airport의
인력 부족 문제로
비행기 결항과 지연이 유난히 많았던 5 월,
나는 “51번째 생일은 한 번뿐”이라는 마음으로
51세의 나에게 생일 선물 하나를 건넸다.
혼자 떠나는 포르투갈 여행.
날이 가까워질수록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커졌지만
비행기에 올라 곧 날아갈 날개를 마주한 순간,
그 감정이 설렘인지 떨림인지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두 시간의 지연, 일곱 시간의 비행,
그리고 네 시간의 버스를 더해
포르투갈 북부 포르투에 도착했다.
원래는 기차를 탈 예정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철도 파업으로 인해
계획보다 네 시간 늦은 오후 여섯 시 무렵 시내에 닿을 수 있었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나니
온몸이 녹아내릴 듯 피곤했다.
그대로 호텔로 돌아 가려다 시계를 보니 해 지기 20분 전.
지도를 켜보니 노을을 볼 수 있는 폰테 루이스 1세 다리까지 도보로 15분.
‘내일도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과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몰라’라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다리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낯선 포르투의 골목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섬세하고 아름다운 다리와 석양에 물든 언덕이 눈앞에 펼쳐졌다.
잠을 못 자서일까, 피곤해서일까,
꼭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리를 건너며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이 터졌다.
적당한 구름을 품은 하늘은
굽이치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저 멀리 끝자락을
화려한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다리 끝에 있는 모루 정원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들,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버스킹 음악까지.
마치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포르투갈에 머무는 동안
나는 포르투에서 세 번, 리스본에서 한 번,
총 네 번의 노을을 마주했다.
처음 떠날 땐 노을을 그렇게 매일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첫날의 강렬했던 경험이 매일 저녁
나를 다시 다리로, 정원으로 불러내었다.
같은 마음으로 노을을 보러 온 옆 사람들과 나눈 짧은 인사,
노을을 품은 공기 속에 흐르던 음악,
강 끝에 따사롭게 내려앉은 햇살이
하늘에 적당히 드리워진 구름과 함께 온 하늘을 장식했다.
그리고 문득,
나의 인생의 노을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스무 살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와서
일하며 공부하고, 남편을 만나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15년을 살았다.
특별히 풍족하지도,
죽을 만큼 힘들지도 않았던 시간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시댁과의 갈등,
남편에게의 서운함, 아이들에게의 미안함이 있었고,
아이들이 자라 갈수록
나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그렇게 나를 찾고자 마흔 중반에 간호사 공부를 시작했고,
쉰을 한 해 앞두고 미국에서 간호사가 되었다.
서툴고 흔들리던 날들을 지나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노을들을 만나며
이제야 비로소,
내 마음 한 구석에 구름처럼 드리워져 있던 삶의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저녁 하늘에서는
노을의 진짜 깊이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삶에도 흐린 날,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
행복한 날, 밝은 날들을 더 밝게 비추고 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인생도 노을처럼,
적당한 구름이 있어야 더 아름답게 물드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