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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먼저 시작한 꿈

마흔여섯, 미국에서 간호학생이 되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디자인을 전공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가 전업주부로

살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아이들을 돌보며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큰아이가 곧 대학에 진학할 시기가 되자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아이는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령화 시대, 어디에나 필요한 의료계가 어떨까 싶어

몇 달 동안 간호사라는 직업을 조사했고,

꽤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정보들을 모아 제안했는데

아이는 단칼에 거절했다.


“싫어, 엄마.”


파워포인트까지 만들어 자료 준비 한 엄마의 정성을 봐서,

고민해 보겠다는 말이라도 해 주면 좋겠는데,

아이는 영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그럼 엄마가 해볼까?."


일 시작할 때 추진력 하나는 끝내준다는

옛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2019년 1월, 나는 내가 사는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의 Allied Health Pre-professional 전공으로 등록하였다.

나중에 Nursing, Radiology, Dental Hygiene 같은 전공으로 이어지기 위한 선수과목을 이수하는 코스였다.


무작정 시작한 첫 학기,

Biology와 Health Issue 과목을 듣는데,

책을 펼쳐도 그림과 글이 따로 노는 듯 보였고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온 단어들로 가득한 과학 용어들은 마치 외계어처럼 생소했다.


그래도 매일 수업 전, 학교에 미리 가서 예습하고

수업이 끝난 후엔 노트를 정리하며 복습을 하고,

그림을 그려서 오리고 붙여, 표를 만들어가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이렇게 루틴을 만들어서 차곡차곡하다 보니

좀처럼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내 머릿속 녹슨 톱니바퀴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간호학과 선수과목 공부를 시작했을 당시,

내 나이는 46세였다.

당시 생물 과목을 가르치시던 교수님은 박사 학위까지 마치셨는데도 35세.


사실 간호 공부를 결심했을 때에는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아마도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나이를 잊고 살았나 보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보니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듯 보였다.

대놓고 묻진 않아도 칙칙한 피부색이 나이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나는 항상 볼터치와 립스틱을 바르고 최대한 젊어 보이게 후드티에 청바지만 입고 다녔다.


그나마 동양 아줌마라 젊어 보여 다행이라 해야 하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간호 본과에 들어가니,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젊은 친구들이 넘쳐났다.

그 안에서 다시 작아지고 소심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공부는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고,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팠다.

노안이 갑자기 심해지면서 눈이 침침해져

책을 읽는 것도 집중이 잘 안 되었다.

나보다 한참 젊은 엄마들이 아이 키우며 공부하며

바쁜 와중에도 그 빡빡한 간호학 공부를 열심히

해내는 모습을 보며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코로나로 인해 집 안과 주변 환경이 모두 흔들리던 시기.


나는 점점 더 후회와 남 탓 속에 빠져들어 머리가 복잡했다.


왜 나는 이렇게 늦었을까.

왜 나는 운이 없었을까.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 못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산책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행도 내가 선택했고, 좋은 직장도 내가 그만뒀고,

옆에서 배 두드리며 걷고 있는 이 사람도...

결국 내가 고른 거네.'


그제야 비로소 지금의 나는 누구 탓도 아닌,

나 스스로가 만든 선택의 결과라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날 처음으로 진심으로 인정하게 된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의 나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10년 뒤, 20년 뒤의 내가

지금처럼 후회와 아쉬움에 머무르지 않도록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루, 일주일, 한 달씩 계획을 세우고

그날그날을 성실히 채워가다 보니,

마흔아홉의 나이에 비록 작은 커뮤니티 칼리지이지만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곧바로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간호사로 취직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 아이에게 권하려던 간호사의 길을

내가 걷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좋다.


간호사가 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직업을 선택하는 건지 몰라도

나에게는 나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한 걸음씩 채워온 시간들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고,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긍정과 감사로 채워주었다.


늦었다고만 생각했던 그 길 위에서

나는 지금,

선물 같은 내 인생의 두 번째 봄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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