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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시, 리스본

오월에 만난 리스본

우여곡절 끝에 철도 파업 중에도

포르투에서 리스본까지 내려오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바다를 옆에 두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못다 본 리스본 관광지를 부랴부랴 검색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교통편만 대충 스크린샷 해두고 부딪쳐 보기로 했다.


북적이는 바이샤 지구에 잡은 숙소는

겉모습은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문을 열자 푸근한 커튼과 나무 가구,

작은 발코니가 있는 아늑한 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풀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본격적인 리스본 여행에 나섰다.


오월의 리스본은 오후 햇살이 따사롭고

산들바람은 시원했다.


언덕 위로 가면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낯선 도시의 골목을 오르며

화려한 색감의 세월이 스며든 벽들이 시선을 끌었다.


길모퉁이에서 마주친 고양이 한 마리는

나를 빼꼼히 바라보다 냅다 사라졌고,

골목을 가로질러 창밖에 널린 빨래들을 보며

괜히 그 집 식구 수를 세어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상 조르제 성으로 올라가는길

상 조르제 성으로 향하는 언덕길은 예상보다 가팔랐지만

도착 후 만난 풍경은 과연 리스본 최고의 장면이었다.


층층이 내려앉은 주홍빛 지붕들, 그 옆에 흐르는 푸른 테주강,

하늘을 수놓은 흰 구름들…

사진으로는 도저히 다 담기지 않는, 이상의 풍경이었다.


성곽 가장자리의 돌 의자에 앉아 눈을 감으니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싸 안는다.

좋은 날씨, 좋은 풍경 그 모든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 조르제 성 위에서 바라본 리스본 시내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해 질 무렵, 미라두로 다 세뇨라 도 몬테 전망대로 향했다.

구글 지도가 안내한 골목길은

그래피티가 가득한 가파른 계단이었다.


숨이 차오를 때쯤 도착한 전망대에서는

쨍한 하늘 아래 외롭게 해가 지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다소 밋밋했지만

고즈넉한 석양의 풍경도 또한 나쁘지 않았다.


내려올 때는 계단 대신 큰길을 따라

버스가 지나는 안전한 길로 돌아왔다.


한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피자 가게에서

네모난 피자 한 조각과 맥주로 저녁을 해결했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서

먹어보지도 않은 이탈리아 피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포르투갈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리스본의 명물 트램 28번을 타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다.

정류장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약 30분여를 기다린 끝에 운 좋게 앞쪽 창가에 앉을 수 있었다.


사람들을 가득 실은 낡은 트램이 좁고 가파른 리스본의 언덕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리스본 명물 28번 트램

덜컹이며 철로를 달리는 트램소리,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좁은 골목과 오래된 간판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익숙하게 책을 읽는 등굣길 아이까지...

처음 시내 구경 나온 아이처럼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종점에 내려 우버를 타고 잠시 벨렘 지구에도 들렀다.

세월이 느껴지는 벨렘탑과

현대적인 느낌의 발견기념비를 보러 가는 길,

‘여기서 낚시하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귀여운

타일 장식과 낚시꾼이 눈길을 끈다.

낚시꾼과 낚시터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 빵집, 파스테이스 드 벨렘에서 맛본

갓 구운 에그타르트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진한 커피와 함께하니

여행의 마지막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몇 년 전 처음 혼자 여행했던 스위스에서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만 본다는 사실이 아쉬웠고,

그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었다.

하지만 이번에 혼자 찾은 포르투갈에서는

그런 감정이 별로 들지 않았다.


도시 곳곳의 작고 예쁜 골목들을

걸음 내키는 대로 따라 걷다가,

장난감 기차 같은 트램도 한번 타보고

멋진 풍경을 보며 내가 가진 것들을 감사하고

인생에 기억될만한 에그타르트를 맛볼 수 있었던 시간.


내 인생의 오월의 시작에서

혼자 훌쩍 떠나 만난 봄날의 리스본.

전망대에서 만난 붉은 지붕들의 물결,

트램을 따라 달리며 스치던 햇살과 산들바람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기억하고 싶은 봄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보라색 꽃이 아름다운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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