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독립인가, 나의 독립인가
큰아이는 처음에 내가 간호사가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때,
단호하게 싫다고 했었다.
하지만 내가 뒤늦게 간호대학에 들어가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름의 리서치를 하더니, 마음을 바꿔 간호대학에 지원했다.
집 근처에도 대학은 있었지만,
아이는 스스로의 길을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러 고민 끝에, 차로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피츠버그 대학으로 진학했다.
내가 졸업반일 때, 아이는 신입생이었다.
같은 길을 먼저 걷는 선배로서, 또 엄마로서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응급실을 거쳐
외래 수술센터에서 일하는 3년 차 간호사가 되었고
아이는 좋은 성적으로 4년의 학업을 마쳤다.
그리고는 졸업도 하기 전에,
피츠버그에서 다시 두 시간을 더 가야 하는
클리블랜드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첫 직장을 정했다.
신입 간호사가 쉽게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다.
엄마 마음 같아선, 집 근처에서
가족들의 도움도 받으며 시작하면 좋겠는데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분명해 보였다.
어쩌겠는가.
그저 지켜보다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 때
그때 달려가 도와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딸이 클리블랜드로 이사하던 날,
나는 짐을 나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이 집에서 혼자 살 수 있을까?’
‘이 동네에서 하루하루를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에 뛰어든 딸은
병원 출근을 앞두고, 혼자 사는 공간을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고 있었다.
출근까지는 아직 2주가 남아 있었지만
아이는 먼저 이사해 새 집에 익숙해지고 싶다 했고,
우리는 텅 빈 집에 아이를 남겨두고 뉴저지로 돌아와야 했다.
일주일 뒤,
나는 아이에게 줄 중고차를 몰고 다시 클리블랜드로 향했다.
그사이 배달된 침대와 책상을 조립해 주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봤다.
근교 아시안 타운도 함께 둘러보며
아이에게 낯선 곳에서도 기댈 수 있는 작은 익숙함을 하나라도 더 남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동차 등록을 위해 찾은 BMV에서
우리를 향해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눈빛을 보내던 직원,
그리고 일주일 동안 피부로 느꼈던
동양인을 찾기 힘든 이 동네의 낯선 분위기 때문일까
아이의 표정은
전보다 조금 더 무거워져 있었다.
병원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아파트.
안전을 생각해 고른 위치였지만,
운전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이를 보며
‘좀 더 가까운데 집을 얻을걸… 내 품에 있을 때, 운전을 좀 더 시킬걸...’
늦은 후회가 마음을 스쳤다.
떠나기 전날 늦은 오후.
저녁을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
아이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엄마, 나 혹시 여기서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여기에 살 자신이 없어졌단다.
친구들이 오하이오 시골 구석에서 뭐 하냐며 놀린다는 말과 함께.
그 순간,
‘그러니까 엄마가 집 근처로 오라고 했잖아!’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말을 꼴딱 삼키고
아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간호사로서, 엄마로서의 모든 확신을 담아 이야기했다.
“시간 낭비 절대 아니야.
네가 들어간 병원, 특히 그 중환자실은
신입 간호사가 들어가기 정말 어려운 곳이야.
그곳에서 1년만 잘 배워도,
그다음엔 네가 원하는 어디든 갈 수 있어.”
내 말이 조금은 힘이 되었던 걸까.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와도 돼.
이사 또 해줄게. 걱정 마.”
이렇게 아이의 마음속에
작은 ‘백업 버튼’도 하나 달아주었다.
다음 날 아침.
함께 식사를 마치고 떠날 채비를 하고 돌아보니
아이의 거실이 유난히 휑하고 넓게 느껴졌다.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돼?’
아이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하나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언제든 집에 오고 싶을 때, 이걸로 비행기 표 사서 와.
버블티, 커피 말고… 비행기 표 Only!”
버블티, 커피는 안된다는 말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아이는 웃음을 빵 터뜨렸다.
“진짜야?”
묻는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일 년에 몇 번이나 오겠냐.'
이제 막 첫걸음을 떼는 아이에게
이런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맙고, 또 기뻤다.
딸아이의 앞날이
아직은 울퉁불퉁 걷기 힘든 돌밭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폭신폭신한 꽃길이 되어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펜실베이니아 턴파이크를 달린다.
어쩌면 내 아이가 꽃길을 걷게 되는 그때가
나도 진짜 독립을 하게 되는 날일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