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 실수로 만난 운명, 이웃집 Crazy Cat Lady가 되다
캣타워 꼭대기에서 늘어지게 낮잠 자기.
아무도 모를 구석에 하루 종일 숨어 있기.
졸린데 건드리면 이빨 드러내며 공격하기.
까끌한 스크래치 보드에 등 비비기.
책상에서 이메일 보낼 때 키보드를 밟고 지나가기.
어깨에 올라와 사랑한다고 까르르 애교 부리기.
가장자리에 놓인 물건 발로 살살 밀어서 떨어뜨리기.
외출하고 돌아와도 보는 둥 마는 둥 하기…
우리 집 오렌지 고양이가 제일 잘하는 것들이다.
다소 소심하고 신경질적인 이 고양이의 이름은 ‘미소’.
노르스름한 색깔이 마치 뽀얀 미소숲 같아서,
또 환하게 웃는 미소처럼 예뻐 보여서 그렇게 지었다
2023년을 이틀 남겨둔 겨울날,
큰딸과 함께 고양이를 입양하고자 온라인을 뒤지다가
집에서 40분 거리의 동물 보호 센터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한참을 걸려 도착한 곳에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
알고 보니 내가 전혀 엉뚱한 지점을 네비에 찍은 것.
시간은 늦었고 다시 가기엔 멀어서,
혹시나 싶어 다시 검색해 보니 가까운 곳에
Monmouth County SPCA 구조센터가 있었다.
문 닫기 30분 전,
깨끗하고 잘 관리된 센터에서 기본 서류 작성을 마치고 나니
자원봉사자가 몇 마리의 고양이들을 보여주었다.
새까만 깜장 고양이, 알록달록 고등어 고양이,
말끔한 턱시도 고양이…
구구절절 사연 많은 아기 고양이들의 구조 이야기를 들으며 지나가던 중,
자기 몸보다 두 배나 큰 콘을 쓰고서 케이지 앞으로 몸을 비비며 “야옹” 하는 작은 오렌지 고양이...
마치 ‘나 좀 봐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어린 고양이의 배에는 전날 받은
중성화 수술 자국이 크게 남아 있었고,
귀와 눈의 치료도 아직 안 끝난 상태인 듯 보였다.
케이지 문이 열리자마자
녀석은 곧장 딸의 손을 딛고 어깨 위로 올라갔다.
배에 난 수술 자국이 신경 쓰여 조심스러웠지만,
이 작은 고양이는 딸의 어깨에 어느새 자리를 잡고는
가르릉, 가르랑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었고
순간 우리는, 마치 왕에게 간택받은 처자들처럼
서로를 쳐다보며 감격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우리는 기꺼이 이 깜찍한 고양이의 집사가 되기로 했다.
미소는 물건을 쓰레기처럼 쌓아놓고 사는 집(hoarder house)에서 태어난 지 2주쯤 되었을 때 구조되었다고 했다.
커다란 케이지 안에는 20여 마리의 어른 고양이와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미소였다.
미소는 지금도 간식을 주면 냄새를 잘 못 맡아 헤맬 때가 많고,
고양이 허피스 바이러스 때문에 눈곱이 마를 날이 없다.
아마도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탓일 것이다.
구조 당시의 기사와 사진을 찾아봤을 때,
바싹 마르고 잔뜩 겁에 질린 듯한 미소 엄마와
꼬질꼬질한 얼굴로 그 옆에 딱 붙어있던 작은 미소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미소는 너무 어린 시절이라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조금은 안도가 되기도 했다.
종이박스에 담겨 집으로 오는 길,
생경한 박스 안에서 한참을 야옹거리며 긁어대던 미소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자는가 싶어 집에 도착해 슬며시 열어보니,
배를 하늘로 드러낸 채 누워
박스 위에 달린 털실 장난감을
네 발로 톡톡 치며 놀고 있었다.
짠한 과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천진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집에 와서 반려견 쿠키와의 만남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동안은 케이지를 따로 두고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도록 지켜봤다.
2주쯤 지나서야 겨우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무렵,
미소는 큰딸이 사는 아파트에 가서 딸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골골 송(purring)’을 한다는 것도
미소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 소리가 얼마나 편안하고 만족감을 주는지,
반려견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게
나에게 홀딱 빠져있는 사람과 연애하는 기분이라면,
고양이를 키우는 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밀당 고수 나쁜 남자와
연애하는 기분이랄까.
평생 몰랐던 고양이에 대해 알아가며
“Miso_the_OrangeCat”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만들더니
이젠 온 동네 고양이들 밤길 걱정까지
혼자 도맡아 하는 신세가 됐다.
잘못 찍은 네비가 우리에게 데려다준 미소.
오늘도 딸이 보내준 미소 영상을 편집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혼자 좋아서 셀프 하트 누르고
보고 또 보고 신나 하는 나는,
이렇게 점점 못 말리는
이웃집 Crazy Cat Lady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