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의 여름, 13번의 겨울 - 우리 집 강아지 쿠키 이야기
우리 집 반려견 쿠키.
과자 쿠키(Cookie)가 아니라 말티푸 쿠키(Kookie)이다.
항상 조금은 기죽은 듯한 표정이라,
잘해 주는데도 늘 마음 한쪽에 미안함을 갖게 했던.
그래도 건강하고 발랄하게 살던 쿠키는
열 살 즈음에 심장 판막 이상을 진단받고부터
가끔씩 경련이 왔고, 산책을 오래 하면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일이 생기곤 했다.
작은아이를 대학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날,
쿠키가 웬일로 밥을 먹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닭고기 당근 죽도
몇 숟가락 겨우 먹고는 누워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응급 병원에서 장시간의 검사.
탈수증세가 있어 피를 뽑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폐에 물이 차 있어 흉강천자(thoracentesis)를 해야 했고,
호흡을 돕기 위해 고용량의 라식스(Lasix)를 투여해야 한다고...
간과 신장에도 이미 이상이 진행된 상태였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
작은 몸 여기저기에 시퍼런 멍과 바늘 자국,
지쳐 있는 쿠키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한편에 깔린 이불 위에 내려놓으니
비척비척 배변 패드로 걸어가서 오줌을 싸고는
기운이 없는지 그대로 패드에 주저앉아 버렸다.
“지지야 지지. 여기 누우면 안 돼”
따뜻한 타월로 몸을 닦아 주고 앞으로 매는 가방에 넣었다.
“쿠키야, 엄마랑 산책 가자.”
낯익은 그 한마디에 쿠키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비 내리는 오후,
우산을 쓰고 쿠키를 안고 함께 늘 걷던 길을 걸었다.
시간이 갈수록 내 팔에 점점 더 기대어 오는 작은 머리의 무게에 눈물이 났다.
돌아와 다시 이불 위에 뉘이고 옆에서
쿠키가 좋아할 만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언니 어딨 나?”라고 묻자 언니라는 말에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이 반짝 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깊어지는 듯 보였다.
뒷다리를 끌며 간신히 배변패드까지 가서 다시 오줌을 누고는,
온몸을 웅크린 채 소리까지 내며 끙끙 앓기 시작했다.
화상통화로 이 상황을 보고 딸들이 말한다.
“이제 보내 줘야 해. 엄마”
나는 밥만 좀 더 먹으면 꼬리 흔들며 일어날 것 같아서
하루만 더, 조금만 더 붙잡았지만,
눈앞의 쿠키는 이미 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듯 보였다.
밤 11시, 결국 쿠키를 안고 차로 40분 거리의
24시간 응급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양옆이 숲인지 밭이였는지 모를 캄캄한 시골길.
품에 안은 쿠키의 몸은 점점 힘을 잃어가는데,
손에 닿은 쿠키의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다.
마치 생명과 이별의 경계 사이를 달리는 듯,
매 박동마다 붙잡고 싶은 시간이 내 손에서 흘러나갔다.
병원에 도착해서 상황설명을 하니
힘겹게 숨 쉬는 쿠키를 보고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수속을 시작했다.
작은 방에서 담요로 포근하게 감싸 안고
아이들과 마지막 화상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후, 수의사가 조용히 들어와 약물을 주입하자,
쿠키의 머리가 이내 힘없이 내 품에 떨어졌다.
손끝에서 느껴지던 작은 심장이 멈추는 순간,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복받침에 목놓아 울어버렸다.
미처 다 주지 못한 사랑이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았기 때문 이리라.
집으로 돌아오니
창가의 피아노 의자, 침대 아래 매트, 소파 팔걸이...
집안 여기저기 쿠키의 빈자리가 한없이 허전하다.
냉장고 속 아직 많이 남은 닭고기 죽,
거실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집,
주인 잃은 장난감들
있어야 할 소리가 사라진 고요함.
생각해 보니, 나는 이 집에서 쿠키 없이 살아본 적이 없었다.
더 많이 산책시켜 줄걸,
더 자주 쓰다듬어 줄걸,
많이 아프기 전에 조금 더 일찍 보내줄걸…
후회는 끝도 없이 밀려왔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딸은
환자가 흉강천자와 라식스를 받게 되어
쿠키 생각에 일하다가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아마 평생, 그럴 때마다 쿠키가 떠오를 것이다.
쿠키를 떠나보내며,
가족과 친구들이 서로의 마음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겪어보는 깊은 슬픔 속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또 한 번 배운다.
아무리 사랑해도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삶이겠지만,
그래서 오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자주 “사랑한다”라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한다.
14번의 여름과 13번의 겨울을 함께하며
쿠키가 주고 간 조건 없는 사랑의 기억들.
그 기억으로 우리는 앞으로도 살아가고,
그 사랑으로 다시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