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고 샤워를 하다가 문득 지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생 때 어린이 합창단 단원 생활을 2년 간 했다. 합창단을 하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찬양을 하였다. 신이 주신 달란트를 주말을 반납하면서까지 열심히 활용하였다.
집에서는 활발한 내가, 합창단 연습을 하러 갈 때는 다소 조용해졌다. 그냥 왔다가 가는 사람처럼 막 어울리지도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위축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즐겁게 찬양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향했던 그 길이 점점 어둡고 외로운 길처럼 느껴졌다.
6학년이 되자 내 또래 아이들은 기세등등해졌다. 후배들을 거느리겠다는 어깨가 하늘을 뚫을 것처럼 한참 솟은 아이도 있었다. 그중에서 키와 덩치가 가장 컸던 아이와의 일화가 생각났다. 합창단을 5학년 때부터 시작했는데, 여름에 항상 전국 지사에서 모여 다 같이 합창을 한다. 공연을 대기하는 중에, 그 아이의 시비로 인해 싸움이 났다. 결국 그 아이는 나를 세게 밀쳤고, 나는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다른 어린이 합창단 사람들도 보는 곳에서 뒤로 넘어진 나는 매우 이런 상황이 부끄러웠다. 나를 밀친 아이는 구경 난 듯이 나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때 같은 합창단원이었던 형제가 양옆에서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왼손과 오른손 각각 형제들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나보다 한 살 어렸던 남자아이는 대신 화를 내어주었다. 왜 밀치냐고 말이다. 나보다 어린 동생이 한 살 누나인 사람에게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는데, 그 순간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더 세게 이야기하지 못한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오빠와 동생에게 너무 고마웠다. 덜 부끄럽게 해 줘서. 일으켜줘서.
사람이 외로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손길이다. 한 사람만 있어도 외로움은 훨훨 날아가버릴 것이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그때의 생각이 난 것을 보니 엄청 고마웠나 보다.
또래인 아이가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나에 대해 수근수근대고 대놓고 괴롭힐 때, 나도 그 아이처럼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절대로 힘이 약해서나 바보 같아서가 아닌,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다. 저 아이의 수준은 거기까지구나 싶었다. 감정싸움에 절대 감정으로 휘둘리지 말라는 엄마의 교훈이 떠올라서 조금 더 어른스러운 방법으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성장하였다.
학교에서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면,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알리라고 배운다. 내가 합창단 선생님들께 말씀드리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어쩌면 근본적인 일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의 상황은 해결할 수 있지만, 거머리처럼 끈질긴 일은 점점 심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외로운 사투를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 그렇게 담대함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