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2학년, 여덟 살 소녀였던 나의 우주는 차가운 교실 바닥에서 한 번 무너져 내린 적이 있다. 선생님의 질문에 용기 있게 손을 들어 정답을 맞혔음에도 불구하고,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삶의 언어인 '사투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날카로운 거절의 말을 들어야 했다. "아니야, 넌 틀렸어." 그 짧은 부정의 말은 정답을 맞힌 기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문득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서늘한 낙인이 되었다. 인생이라는 커다란 퍼즐의 한 구석에 잘못 끼워진 조각처럼, 그 기억의 파편은 '나는 틀렸을지도 몰라'라는 자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래서 나는 교사가 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내 마음 깊은 곳에 하나의 철칙을 새겼다. '나의 말 한마디, 나의 행동 하나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받는 일은 절대로 만들지 말자.'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때 그 선생님 때문에 참 속상했어"라는 서글픈 문장 하나조차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 교실 안에서만큼은 아이들의 어떤 이야기도 길을 잃지 않게 하겠노라는 서슬 퍼런 자기 검열과도 같은 다짐이었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눈을 맞출 때, 나는 마음속에 커다란 빈 도화지 한 장을 펼쳐둔다. 내가 어떤 질문을 던지든, 그 끝에 돌아올 아이들의 대답에는 정해진 답도, 틀린 오답도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이들은 영민하다. 교사의 눈빛 하나, 입매의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자신의 말이 환영받고 있는지 아니면 평가당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어떤 엉뚱한 대답을 내놓아도 먼저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 웃음은 "네가 입을 열어 네 생각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어"라는 무언의 응원이었다.
이러한 수용의 철학은 유치원을 넘어 전문대학교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을 때도 변함없었다. "혹시 내 대답이 틀려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가로막지 않도록, 나는 언제나 그들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심리적 안전지대'를 마련해 주었다.
유치원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는 더욱 세밀한 사랑의 기술을 발휘하려고 노력했다. 질문과 상관없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를 경우는 항상 일어났다. 나는 결코 "아니야"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와, 그것도 정말 좋은 생각구나! 혹시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도 있을까?"라며 아이의 존재를 먼저 긍정해 주었다. 설령 주제에서 훌쩍 벗어난 자신의 경험 이야기를 할 때면(유아들은 자기중심적 특성이 있어서 이런 경우가 많다,) 다정하게 그 아이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 말을 건넸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단다. 이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비난이나 교정이 아닌 '권유와 부탁'의 형식으로 건네는 나의 말들은 아이들에게 거절의 상처가 아닌, '다시 생각할 기회'라는 선물이 된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정답의 감옥'에서 벗어나 '생각의 광장'으로 나온다. 틀릴까 봐 조마조마해하는 마음 대신, 내 생각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설레는 마음으로 손을 번쩍 드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38년 교직 인생의 보람을 느꼈다.
나의 교실을 거쳐 간 수많은 아이가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인생 퍼즐 속에 내가 남긴 조각이 있다면, 그것은 날카로운 상처의 파편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와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는 단단한 자존감의 조각이기를 소망한다.
38년, 긴 여정의 끝에서 돌아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건넨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네가 어떤 말을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침묵 어린 약속이었으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이 모여 비로소 나의 교사 인생도 수려하게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아이들의 마음속에 심어둔 그 수많은 긍정의 씨앗들이 각자의 빛깔대로 아름답게 꽃피우기를 먼발치에서 기쁘게 지켜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