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졸업식, 그 낯선 배신의 기억

by 바래

시골 유치원의 정겨운 풍경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던 아이가 있었다. 귀한 아들로 태어나 온 집안의 애지중지하는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득현이. 녀석은 예쁜 얼굴과는 딴판으로,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천방지축에 고집불통이었다.


그 아이와 함께한 2년이라는 시간은 인내와 애정의 줄다리기였다. 칭찬과 격려, 때로는 따끔한 주의와 적절한 보상까지, 교사로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교육적 처방을 쏟아부었다. 다행히 아이는 조금씩 변해갔다. 서툴렀던 행동들이 정돈되고, 유치원 공동체의 질서를 익혀가며 제법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변화가 아이의 성장이자 나의 보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믿음은 졸업식 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보통 아이들은 졸업식이라는 특별한 날, 부모님 앞에서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날의 득현이는 2년 전 입학하던 그날보다 더한 천방지축으로 돌아가 있었다. 통제 불능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아이는 슬쩍슬쩍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 영악한 시선에는 묘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우리 엄마가 옆에 있는데, 선생님이 이제 어쩔 거야? 날 야단칠 수 없잖아.’

교사인 나를 비웃듯, 혹은 시험하듯 금지된 행동들을 보란 듯이 이어가던 그 아이의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로 생경했다. 38년 교직 인생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풍경이었다. 공들여 쌓아온 교육의 탑이 어머니라는 존재의 등장과 함께 단숨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허탈함에 빠졌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 문득 그날의 득현이를 다시 떠올려 본다. 당시의 나는 결혼도 하기 전이었고, 아이를 낳아 길러본 적 없는 젊은 교사였다. 그때의 나는 아이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교사라는 직분이 허락하는 정해진 규격 만큼의 사랑만을 내어주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의 행동이 학기초의 모습으로 되돌아 갔던 건, 어쩌면 녀석의 마음을 온전히 얻지 못했던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 교사의 훈육은 그저 잠시 지켜야 할 서툰 규칙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아이의 엇나간 행동을 탓하기 전에, 그 어린 영혼이 갈구했던 진정한 교감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헤아렸어야 했다는 것을. 그날의 당혹스러웠던 기억은 이제 미움이 아닌, 더 깊은 사랑을 배우지 못했던 젊은 날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애틋한 성찰로 남았다.

작가의 이전글19. 조카라는 우주, 그리고 교사라는 계절의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