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이라는 시간 동안 교정의 아이들을 지켜보며 깨달은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부모의 뒷모습이 아이의 미래를 그리는 가장 선명한 밑그림이 된다는 점이다. 교사의 자녀가 교사가 되고, 공무원의 자녀가 다시 공무원의 길을 걷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부모가 걸어가는 삶의 궤적이 아이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문법으로 자리 잡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여섯 살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화려하거나 영웅적인 직업들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나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 혹은 정의를 구현하는 판사가 되겠다는 대답이 교실을 가득 채우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직업이란 대개 텔레비전 동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고 대단해 보이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해 만났던 여섯 살 현수는 조금 달랐다. 유난히 반듯하고 예쁜 몸가짐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아이는, 장래희망을 말하는 시간에 눈을 반짝이며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우리 엄마, 아빠처럼 한전에서 일하고 싶어요."
현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한국전력공사에 재직 중이셨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구체적인 기업의 이름이, 그것도 부모님의 직장을 그대로 이어받고 싶다는 고백이 나온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짧은 한마디를 통해 나는 현수네 집안의 저녁 풍경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부모가 퇴근 후 식탁에 앉아 자신의 일터를 어떻게 이야기했는지가 아이의 마음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부모가 직장 생활의 고단함만을 토로하거나 제 직업을 깎아내렸다면, 현수가 그 어린 나이에 부모와 같은 길을 걷겠노라 당당히 말할 수 있었을까.
현수에게 '한전'은 단순히 전기를 만드는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는 곳, 우리 가족의 삶을 지탱해 주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터전으로 각인되었음이 분명하다.
부모가 자신의 직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태도는 그 어떤 진로 교육보다 강력한 교육이 된다. 아이는 부모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자신의 일을 대하는 '마음의 결'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현수의 그 맑은 대답은 38년 교직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어른의 뒷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깊게 일깨워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